※ 문화 해설(解說)은 기사 특성상 '베리 굿 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화뉴스] 대학 입학을 앞둔 릴리(다코타 패닝 분)는 절친한 친구 제리(엘리자베스 올슨 분)와 함께 해변에 놀러갔다 무뚝뚝한 청년 데이빗(보이드 홀브룩 분)과 조우합니다. 둘 모두 데이빗에 관심을 보이지만 데이빗이 적극적으로 접근한 릴리가 그와 사귀게 됩니다.

대조적 성격의 단짝 친구

나오미 포너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베리 굿 걸'은 뉴욕을 배경으로 첫사랑을 경험하며 소녀가 성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청춘 로맨스 영화입니다. 단짝 친구 릴리와 제리가 서두에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 수단인 철도와 자전거는 청춘 영화에서 전형적인 설정입니다. 수영복을 입지 않고 알몸으로 바다 속에 뛰어드는 과정에서 제리가 먼저 옷을 벗고 릴리가 망설이다 뒤따르는 전개는 제리의 적극적 성격과 릴리의 신중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릴리와 제리의 성격 차이는 두 가정의 분위기 차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릴리의 아버지는 의사이며 어머니는 규율을 강조합니다. 릴리의 부모는 서로 대화가 부족한 듯 보입니다. 릴리도 고민을 부모에게 털어놓지 않으며 자랐기에 신중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외도를 어머니가 눈치 채면서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됩니다.

반면 제리의 부모는 쾌활하며 개방적입니다. 제리도 부모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제리의 활달한 성격은 부모와 집안 분위기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두 가정의 분위기는 밤만 되면 어두컴컴해지는 릴리의 집과 밤에도 밝게 붉을 밝히는 제리의 집의 조명의 차이가 대변합니다. 다코타 패닝과 엘리자베스 올슨의 배우로서의 이미지 차이도 릴리와 제리의 캐릭터 차이에 반영됩니다.

삼각관계

외도하다 가출한 아버지로 인해 가정이 흔들려 고통 받는 릴리는 데이빗과의 사랑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동시에 릴리는 곤란해집니다. 데이빗을 좋아하는 제리에게 진실을 밝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밀은 화를 부르는 법. 삼각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릴리는 첫 경험까지 치른 둘의 관계를 제리에게 말하지 않은 가운데 아버지를 갑작스레 여읜 제리를 데이빗에게 만나보라고 합니다. 홧김에 데이빗은 제리를 만나러 갑니다. 제리는 데이빗과 섹스를 했다고 릴리에게 털어놓습니다. 제리의 고백에 릴리가 아연해하는 장면부터 '베리 굿 걸'의 전개는 빨라집니다.

선의가 최악의 결과를 낳다

여성 감독이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영화답게 '베리 굿 걸'은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입니다. 아직 진정한 사랑과 섹스를 경험하지 못한 청춘 여성의 호기심과 갈등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진부해지기 쉬운 소재를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전개해 매력적입니다.

주인공 릴리(Lilly)는 '백합'을 의미하는 'Lily'와 발음이 유사합니다. 백합의 꽃말이 '순결', '변함없는 사랑'으로 릴리가 데이빗과 만나 첫 경험을 치르는 것을 감안하면 의도적인 작명으로 보입니다. 1994년생 다코타 패닝이 성인 여배우가 되었음을 상징하는 첫 섹스 장면이 묘사되지만 직접적 노출은 없습니다.

수입사 측에서 서두에서 원제를 삭제하고 한글 개봉 명 '베리 굿 걸'만을 삽입했지만 원제는 단수형 'Very Good Girl'이 아닌 복수형 'Very Good Girls'입니다. 릴리뿐만 아니라 제리도 심성이 착한 좋은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선의를 지닌 행위가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야기할 수 있으며 차라리 솔직한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뼈저린 교훈을 제리가 성인을 앞두고 얻게 됩니다. 즉 릴리와 제리는 착한 여자이지만 선의와 상황에 의해 나쁜 여자가 되었다는 역설적인 제목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릴리는 파리로 떠나는 데이빗과 결별하게 됩니다. 릴리와 데이빗의 이별의 키스를 우연히 목격한 제리가 둘의 숨겨진 관계를 알게 되면서 릴리와 제리의 우정도 금이 갑니다.

강박적 해피엔딩

릴리가 남자친구와 동침했음을 아버지에게 털어놓는 장면은 가장 인상적입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속내를 단 한 번도 털어놓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삼각관계를 경험하며 릴리가 외도를 했던 아버지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넥타이와 정장 차림에 가까워 갑갑했던 아버지는 이 장면에서만큼은 캐주얼로 등장해 편안함을 강조해 딸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친구가 됩니다.

결말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알고 보니 데이빗이 제리와 섹스하지 않았고 이 사실을 릴리가 알게 되어 제리와의 우정을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할리우드적이며 진부한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마저 느껴집니다.

릴리와 제리의 금간 우정이 손쉽게 봉합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오히려 릴리가 제리와의 우정을 회복하지 못한 채 대학 입학을 위해 뉴욕을 떠나며 소녀 시절에 종지부를 찍고 성인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씁쓸한 결말이 현실적이며 강렬한 잔상을 남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엔딩 크레딧 이후에는 영상 없이 릴리와 제리가 대화를 나누는 짧은 음성이 제시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캐스팅입니다. 엘리자베스 올슨은 '캡틴 아메리카 원터 솔저'의 엔딩 크레딧 후 추가 장면에 스칼렛 위치로 출연한 바 있으며 내년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동일한 배역으로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한편 릴리의 아버지로 분한 클라크 그렉은 '어벤져스'를 비롯한 마블의 슈퍼 히어로 영화에 콜슨 요원으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어벤져스 에이즈 오브 울트론'에 두 배우가 함께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글] 아띠에터 이용선 artietor@mhns.co.kr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운영자. 영화+야구+건담의 전문 필자로 활약.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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