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엽 연출 ⓒ 신일섭 기자
 
[문화뉴스]책 속의 역사가 아닌, 연출가 본인 가족의 3대(代)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살펴보는 연극이 있다. 그 주인공은 김재엽(41) 연출이 쓴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다. 

이 작품은 지난 2013년 연극계의 웬만한 상을 휩쓴 작품이다. 지난해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상을 받고,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연극 베스트3 선정된 작품이다.

김재엽 연출은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분 '페르소나'로 극작가로 데뷔, 2003년부터 극단 드림플레이의 대표를 맡고 있고, 2008년부터 세종대 교수로 재직중에 있으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배수의 고도','서바이벌 캘린더','풍찬노숙','장석조네 사람들','육혈표 강도'.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등이 있다.

   
▲ 2014 SPAF 알리바이 연대기, 리허설 중 한 장면 ⓒ 신일섭 기자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의 줄거리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포병장교로 용감히 싸운 아버지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4주간 군사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막내아들의 훈련소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김재엽 연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며 아버지의 눈물의 의미를 밝혀내면서 개인의 삶 속에 드러난 대한민국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가족사를 연극으로 승화시킨 김 연출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한 편의 연극 볼 수 있는 연극이다. 이런 진지한 공연의 매진행렬 이유가? 
ㄴ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라 역사적으로는 무거울 수 있지만, 개인의 일상에 있어서는 자기 삶에 와 닿는 부분이라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을 수 있다. 책의 역사와, 일상의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개인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계속 인기를 끄는 것 같다.

역사가 우리 삶 속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관객이 연극을 보러오는 것 같다. 연극이 예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것보다는 동시대의 우리들의 이야기를, 우리 가족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연극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관객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 좋아하는 것 같다.

2013년 초연을 한 작품이 계속 재공연 된다. 이번 서울국제공연에술제(이하 SPAF)에서는 다른 점은? 
ㄴ 작년 가을에 2주간의 짧은 공연을 하고, 올해 초 국립극장에서 재공연을 했다. 차이는 완성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연출의 본인과 본인 가족의 이야기다. 극으로 만들며 부끄러운 점은 없없나?
ㄴ 있었다. 연극을 10여 년 동안 했다. 작품마다 작가의 이야기가 담기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쓴 작품은 몇 없다. 작품을 준비하며 연출이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 가장 진실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극중 인물이기도한 나의 아버지가 소천하신지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아버지에 대한 입장을 객관화시킬 수 있겠더라. 실제로 자료도 찾아보고, 형제와 친지를 인터뷰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주제는 나 자신에 대한 자아성찰이다.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이 자기 이야기 일 때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 비론 한 연출의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그것이 관객과 떨어지지 않은 동시대 이야기이기 때문에 호소력이 강한 것이다.

극단 드림플레이의 대표로서 10여 년 동안 이끌어 왔다. 앞으로 방향이 궁금하다 
ㄴ 드림플레이는 '테제21'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이끌고 있다. 드라마 중심이 아니라, 예술과 연극의 틀을 버리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로 가고 있다. 차기작으로 11월에 김수영 시인의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이 지금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 강신일이 이 작품에서 나 자신이 캐릭터로 나왔던 것처럼, '강신일 배우'라는 캐릭터로 나온다. 작품을 김수영 시인에 대한 전기문처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당시 했던 고민을 오늘날의 우리와 예술가의 모습과 같이 비춰 보고 돌아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테제21'은 지금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이야기도 그렇고, 관객과 예술가는 동시대를 살고 있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연극이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밥 먹고 술 먹으면서 나오는 주제들로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숨 쉴 때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법인가?
ㄴ 그렇다. 서양의 연극의 대가들이 하는 작품들은 나보다 잘하는 분들이 많으니 별로 관심이 없다(웃음).

김수영 시인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보면 야경꾼들에게 벌금 내는 것에는 분개하나 , 정작 분개해야 할 일에는 분개하지 않는가? 하는 장면이 있다. 요즘 세금이 늘어나고 있는 중에 의미가 크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은 어디서 보는가?
ㄴ 극장 밖에 일을 극장 안에 와서 풀어내는 것이니, 특별한 것은 없다. 관객이 극장에 올 때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들어온다. 그들의 삶에 있는 텍스트를 가지고 와서 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의 텍스트와 만나서 서로 텍스트들끼리 부딪히는 콘텍스트 현상이 일어난다.

관객은 극장 밖에 있는 삶과 아무런 상관없는 공연을 보고 있을 만큼 현실 세계가 녹록하지 않다. 내 개인적인 문제들을 같이 솔직하게 들어내는 것이 극이고 극장이라고 생각한다.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가 작품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준비하기에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극장 밖의 세계가 더 드라마틱하고 더 스펙타클하다(웃음). 그런 이야기들을 빼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가 힘든 것 같다.

당신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하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급진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다 
ㄴ 나이가 40이지만 난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젊은 연극을 하고 싶다. 젊을 때에만 젊은 연극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작품을 통해 비판과 풍자를 하지만,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에는 그런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을 하며 스스로 솔직해 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제일 먼저 세상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며 비판하기 전에, 내 삶이 먼저 뒷받침되고 솔직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수영 시인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를 스스로 솔직하게 내려놓으면서 급진적이라 일컫는 이야기들을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설적인 것일수록 만드는 사람일수록 솔직해지고 부끄러움을 더 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세상에 말하는 것이 더 진실해 질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들어내지 않는다. 연극 대사처럼 "너무 앞에서 있지 말고, 뒤에도 있지 말라. 딱 중간에 서라"라는 대사가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중간에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그런 가면을 벗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같다. 그런 면에서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라는 작품의 명을 봤을 때부터 참 감명을 받았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20대 사람들에게 작품이 영향을 줄 수 있을까?
ㄴ 세상과 정면 대결한다는 것이. 젊은이들이 타인의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내 문제는 내 탓이고, 취업도 내 탓이고, 타인의 잘못은 네 탓이다"라고 한다면 사회에는 언제나 약자는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제기를 못 한다.

그럴려면 최소한에 공동체에 대한 커뮤니티 경험이,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같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아무도 자신을 도와 줄 수 없을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라도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 이것이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인데, 요즘은 어릴 때부터 개인화되어있고, 사회가 그런 것을 강조하니 살아남기 위해 개인이 스스로 살아남으라고 시킨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지치게 되고, 서로 모여 이야기를 할 때 사회적인 이야기나 진지한 이야기의 주제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사회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곧 자신의 삶과 직관 되는 문제인데, 너무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사회에서도 그런 논의를 할 장을 열어 주지 않는 면도 있다. 요즘 20대들이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개인의 프로필과 스펙만을 준비하는 면을 보며 안타깝다. 지금 후배들에게는 문화적인 경험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내년에 이제 교수직도 잠깐 내려놓고, 나름의 안식년을 가진다고 알고 있다. 계획은? 
ㄴ 창작을 한다는 것은 끈임 없이 무엇인가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지,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경험들을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제는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중단을 하고, 나를 새로 채우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느꼈다. 통일도 했고, 앞서가는 실험을 하는 나라고, 문화가 앞서 간다고 생각하기에 보는 것을 통함 경험을 쌓고 싶다.

그리고 배부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두 돌이 채 안된 아이와 아내와 함께 가족끼리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독일어도 틈틈이 공부해서 독일어 책을 읽을 수준까지 준비하고 있다. 전반적인 문화와 사회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여행이 좀 필요한 것 같다. 독일에서 많은 문화적인 경험을 쌓고 싶다.

문화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ㄴ 자기 자신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 공감하는 능력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문화와 예술의 의미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힘들고 불안정할수록 문화적인 체험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아프고 괴롭고 고달플 때 문화를 찾으시라.

연극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지는 줄 알면서도 가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패배자들의 이야기다. 언 듯 보이게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니다. 꾸준하게 가고 있다. 연기 예술인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꿈으로 그칠지 몰라도 계속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연극예술 영화 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김재엽 연출에게 연극이란?
ㄴ 나에게 연극 외에는 다른 삶이 없다. 연극 준비하면서 놀고, 연극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가르치고 있다. 때로는 쉬고 싶고, 지루할 수 있는데 연극이 이미 나의 삶의 방식이 되었으니 별로 특별히 예술 한다는 생각은 이제는 안 든다. 연극은 내 생활이다.

연극을 앞으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계속 가기 위해 일 년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 보려고 한다. 데뷔 이후 한 번도 작품을 쉬어본 적이 없다. 피로감이 정말 많이 쌓여있는 상태다. 그래서 1년간의 휴식이 나에게는 굉장히 큰마음 가짐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다녀온다면 그때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뉴스 신일섭 기자 invuni1u@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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