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규약 해석에서부터 각 관계자들 자문 끝에 '드래프트 참가 자격 부여'

   
▲ 필자와 신진호는 2009년, 화랑대기 고교야구가 한창이던 부산 구덕구장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에도 신진호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지난 18일, 오후 6시가 막 넘어갈 무렵, 필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한 직후 곧바로 전화를 받은 필자는 수화기 너머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형, 이제 됐어요. 이겼습니다."

이겼다면서 감격스러운 목소리를 들려 준 주인공은 바로 전 캔자스시티 로열스 포수 신진호(25)였다. 이미 본지에서 '야구를 하고 싶어 해도 규약 때문에 발목이 잡힌'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보도한 바 있었던 바로 그 신진호였다. 그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전달한 지 약 석 달 만에 그가 야구 인생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법정 소송까지 가는 어려운 과정 속에서 법원이 신진호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짧지만 길었던 90일. 다시 야구를 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전전했던 그의 뒷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필자를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KBO 규약집을 다시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한 일, 그리고 재판까지 이르러 2차 신인지명 회의 4일 전에 극적으로 지명 대상자에 포함되었던 사실까지, 오직 본지에서만 볼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했다. 야구 읽어주는 남자, 야구 보여주는 남자 15번째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낟.

관련기사 → [톡톡베이스볼] 한 야구 유망주의 외침, "형, 저 정말 야구하고 싶어요"

안타까웠던 첫 만남, 그리고 다시 해 보자는 '손길'

신진호. 2009년 시즌까지 화순고등학교 야구부에서 4번 타자 겸 주장을 맡았던 선수였다. 타자로서의 재능도 빼어났지만, 당시 프로 스카우트 팀이 주목했던 것은 '포수로서의 신진호의 잠재력'이었다. 2루 송구 능력이나 경기를 읽는 수준이 또래들에 비해 월등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최지만(LA 에인절스)과 함께 2009 고교 포수 랭킹 1, 2위를 다툴 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나 신진호에 관심이 있던 이는 국내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태평양을 건너 온 복수의 메이저리그 관계자들도 신진호를 보러 국내에 오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진호에 가장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던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 진출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신진호와 필자의 인연은 바로 이때부터 이어졌다. 미국 진출 선언 이후 부산에서 열린 화랑대기 고교야구에서 만난 신진호는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고, 학부모회장으로 부산까지 아들을 따라온 아버지 신만식 씨도 캔자스시트에서 내밀었던 계약 조건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며, 어디에서든 다치지 않고 아들이 최고의 선수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실제로 당시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계약금 세금 면제, 숙소 제공, 모교(화순고)에 야구 용품 제공, 재미교포 극동 스카우트를 최대 7년간 신진호와 같이 있게 해 주는 등 다소 파격적인 계약 조건을 내민 바 있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야구에 대한 재능'은 줬어도, 순탄한 길로 갈 수 있는 '행운'까지 부여하지 않았다. 잦은 부상은 필연적으로 출전 기회 제한이라는 페널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사이에 그도 힘든 20대를 보내야 했다. 타지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펼쳐야 했던 그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바로 귀국이냐, 도전이냐의 문제였다.

"그냥 미련 없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픈 데 없이 몸 만들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야구하기 싫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나이는 먹어가는데, 후배들은 매년 올라오고 있고. 그러다 보니, 출장 시간도 적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속 미국에서 야구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신진호의 회상이다. 결국, 그는 지난 2014년 4월을 끝으로 미국 생활을 청산했다. 구단에 방출을 요청한 그는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로열스 역시 그의 뜻을 존중하여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선사했다. 귀국을 결심한 만큼, 남은 것은 2년 뒤 다가올 신인지명 회의에 대상자로 참가하는 일뿐이었다.

몸만들기도 순조로웠다. 무엇보다도 세한대 이동석 감독과 동국대 이건열 감독/김동현 코치의 도움이 컸다. 세 이 모두 신진호의 화순고 재학 시절, 감독으로 재직했던 이들이었다(주 : 신진호가 1학년이었을 때에는 이동석 감독이, 2학년이었을 때에는 이건열 감독이 화순고에 몸을 담았고, 3학년 때에는 김동현 감독이 화순고 사령탑을 역임한 바 있다). 몸 만들 곳을 찾던 그에게 '옛 스승'들은 기꺼이 그에게 훈련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몸 상태가 최상인 만큼, 앞서 국내로 복귀한 선수들만큼 지명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운명의 신'은 또 다시 신진호에게 시련을 안겨줬다. "형, 오늘 시간 좀 되세요?"라는 신진호의 전화가 걸려 온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한국 야구 위원회(이하 KBO)가 그의 드래프트 신청서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KBO가 문제 삼았던 부분은 그의 신분이었다.

   
▲ 미국에서 돌아 온 이후 다시 만났던 신진호. 지난해 2월 화순에서 만났을 때의 모습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진호는 자신의 앞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사진ⓒ김현희 기자

"(KBO에) 드래프트 신청하러 갔기에, KBO에서 MLB에 신분조회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숨) 제가 임의탈퇴 신분이라서 보류권이 풀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방출을 요청했는데, 구단이 MLB 사무국에 방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던 겁니다. 황당했죠. 규약에 나와 있는 유예기간 2년은 방출일로부터 적용되니까, 저는 2년 뒤에 나오랍니다. '그럼 야구 하지 말라는 이야기냐?'라고 물으니까 가만있더군요."

이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필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극동 코디네이터를 통하여 사실 확인에 들어간 바 있었다. 확인 결과, 신진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MLB 사무국에 방출 요청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신진호로부터 이야기를 전달받은 로열스 구단이 그제야 움직였던 것이었다. 즉, 신진호가 로열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시점은 2014년 4월이지만, '조건 없이 방출된 시점'은 2016년 4월이었던 것이다. KBO에서는 이 점을 들어 2016년 4월부터 '해외파 유예기간 2년'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신진호는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첫 번째로 따져 봤던 것은 KBO 규약 전문이었다. 정말 KBO의 주장대로 규약에 '해외에서 돌아온 선수는 방출일로부터 2년간 신인지명 회의에 참가할 수 있다.'라는 표현이 존재하는지가 중요했다. 찾아 본 결과, 신진호를 비롯한 해외 유턴파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KBO 규약 제107조'에는 KBO의 설명과는 100% 일치하지만은 않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충분히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히 있었다.

KBO 규약집 제107조(외국 진출 선수에 대한 특례)에는 '당해 선수 계약이 종료한 날로부터 2년'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즉, KBO의 설명에서와 같이 '방출일자'라는 명확한 표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석이나 기타 부칙에 본 내용이 추가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규약 전체를 놓고 '방출'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KBO의 설명과는 달리, '방출'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본 규약대로라면, '계약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만료되어 구단으로부터 급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계약 종료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KBO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전달한 바 있다.

"신진호는 2016년 4월 이전까지 임의탈퇴 신분이었다. 임의탈퇴는 전 소속 구단이 보류권을 풀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임의탈퇴 일자를 계약 종료일로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신진호뿐만이 아니었다. 신진호 선수와 동일한 문제로 드래프트 신청을 해 온 선수들에게도 동일하게 '방출일로부터 2년'을 적용시켜왔다. 물론 신진호 선수처럼 2년이 지나고 나서야 본인의 방출 여부를 인지한 경우는 없었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즉, KBO에서는 신진호의 임의탈퇴 신분을 들어 그가 '2016년 4월까지 캔자스시티 로열스 선수였다.'라고 본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규약에 명시된 문구' 자체만 놓고 보면, 다분히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계약의 종료일이 '급료를 받지 않아 실질적으로 계약이 소멸된 시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진호는 캔자스시티에서 퇴단한 이후 그 어떠한 금전적인 혜택을 받지 않았으며, 이러한 사실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재무 이사(선수 급료 담당)가 공문을 발송해 줌으로써 입증되기도 했다.

계약 종료 시점에 대한 '엇갈린 의견', 그리고 이어진 소송

그러나 KBO에서는 신인 지명 회의 서류 접수 마감 직전까지 위와 같은 의견을 고수해 왔다. 결국, 이에 대해 신진호의 부친, 신만식 씨도 생업을 잠시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와 아들의 선수 생활 유지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러 방향을 통하여 아들을 살려보고자 했지만, 결국 결론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이에 KBO도 신진호의 신인지명회의 참가 신청서를 '임시로' 접수받은 이후 결론이 날 경우 이를 수용할 것인지, 반려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신진호도 '일반인 신인지명 대상자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리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서울 지방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KBO로서는 법정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지명 대상자를 확정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어떻게든 8월 22일 지명일 이전까지 판결이 나와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8일, 서울 지방 법원은 신진호의 2017 신인 2차 지명 회의 참가 자격이 있음을 인정했다.

   
▲ KBO 홈페이지에도 등재되어 있는 2016 KBO 규약집. 서울 지방 법원은 이에 대해 방출/임의탈퇴 여부에 관계없이, '계약 실효일'도 계약 종료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 이후 신진호가 보내온 판결문은 대부분 필자가 예상했던 사항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판부에서는 ① KBO 규약 제107조 1항은 '선수계약이 종료'한 경우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유형을 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 ② 선수계약의 종료 여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선수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더 이상 선수계약에 따른 구속을 받지 않고 계약을 종료시킬 의사로 그러한 합의를 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또한, ① 신진호가 임의탈퇴 명단에 공시됨에 따라 훈련 참가, 경기 출전, 급여 지급 등과 같이 선수계약과 관련된 채권자 및 캔자스시티의 일체의 권리/의무는 모두 소멸하였다는 점, ② 신진호와 캔자스시티가 임의탈퇴라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으나, 기존의 선수계약을 종료시킬 의사로 위와 같은 합의를 했다고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초 '문화뉴스'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계약 종료'에 대한 문구는 법정에서 '실효일'로도 해석할 수 있음을 입증해 준 셈이다. 만약에 KBO가 규약상 '방출일로부터 2년'이라고 명시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 있었다.

신진호로서는 정말 어렵게 신인지명회의 참가 자격을 얻게 된 셈이다. 판결 직후 필자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는 그는 "이제부터 진짜 이 악 물고 해야지요. 어느 구단에 지명되건,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께 효도할 겁니다."라며 짧고도 길었던 90여 일간의 여정에 대해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들의 선수 생활 유지를 위해 생업까지 뒤로하고 전국 각지를 누볐던 신만식 씨(신진호 부친)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신진호가 왜 아버지를 '대통령'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조금은 험난했지만, 어쨌든 다시 국내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걷게 된 신진호. 물론 그가 오는 22일 진행되는 신인 지명 회의에 지명을 받아야 프로에 입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겠지만, 어떤 길을 가건 이제까지 겪었던 시련을 잊지 않고 프로야구에서 실력/인성 모두 1류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