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해설(解說)은 기사 특성상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화뉴스] 빈센트 반 고흐(바리 아츠마 분)의 유산인 그림을 보유한 조카 빌렘(예로엔 크라베 분)은 압박감에 시달리다 못해 모두 매각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조건이 제시되지 않자 고민이 깊어집니다. 빌렘은 빈센트의 힘겨웠던 삶을 반추합니다.

19세기와 20세기 교차 편집

핌 반 호브 감독의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은 살아생전에는 냉대만 받았지만 사망 뒤 전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19세기 중반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화가로서의 삶을 묘사합니다.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생략하고 빈센트가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19세기 후반과 조카 빌렘의 노년기인 20세기 중반을 대비시키는 교차 편집은 '대부 2'에서 아버지 비토 콜레오네와 아들 마이클 콜레오네의 삶을 교차 편집했던 연출과 유사합니다. 빈센트의 광기와 빌렘의 스트레스는 클라이맥스에서 교차 편집됩니다. 서두에 삽입된 자막이 밝히듯 허구가 가미되었지만 빌렘이 빈센트의 그림을 당장이라도 팔아치울 것처럼 암시해 과연 숱한 걸작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증과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빈센트가 살았던 증기기관차의 시대였던 19세기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기 위해 빌렘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고속철도 신칸센, 자동차, 영사기, 영화관, 카메라, 라이터 등 20세기를 상징하는 문명의 산물들이 부각됩니다. 빌렘의 등장 장면에 삽입되는 배경 음악으로 재즈가 선택된 것 또한 시대적 배경을 상징합니다.

걸작의 탄생 과정

'반 고흐 위대한 유산'에서는 숙부 빈센트와 조카 빌렘의 2대의 삶과 인연은 물론 주변 인물로서 빈센트의 아버지와 빌렘의 손녀도 등장합니다. 즉 반 고흐 가문의 도합 5대의 가족사가 훤히 드러납니다. 빌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중반 이후에 제시되어 그 전까지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빈센트와 빌렘의 연결고리인 테오(안 크라브 분)의 비중이 조연 중에서는 가장 큽니다. 테오는, 평생 인정해주는 이가 드물었던 빈센트의 동생이자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빌렘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빈센트 반 고흐의 걸작들의 제작 동기 및 탄생 과정입니다. '슬픔', '감자 먹는 사람들', '씨 뿌리는 사람', '카페에서, 르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해바라기',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자화상' 등 반 고흐의 걸작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해 스크린을 채웁니다. 추상화를 배격해 현실을 소재로 하면서도 모사에 반기를 들었으며 개성을 강조하고 열정적 화풍을 견지했던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그의 가난했던 삶과 마찬가지로 매춘부, 농부 등 힘없는 민중이었습니다.

반 고흐는 시대와 불화를 빚어 평생 그림이 팔리지 않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2,000여 점의 그림을 쉴 새 없이 다작했던 '성실한 천재'였습니다. 폴 고갱, 툴루즈 로트렉, 에밀 베르나르 등 당대의 화가들과의 관계도 묘사됩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 각지를 전전하다 3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반 고흐의 죽음에 대해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은 일반에 널리 알려진 자살설이 아닌 타살설을 제기합니다. 자신의 가슴을 권총으로 쏜 것이 아니라 동네 불량배들과의 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해된 뒤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태생적 한계 두드러져

당초 극장 개봉용 영화가 아니라 TV 드라마로 출발했기에 '반 고흐 위대한 유산'은 아쉬운 점이 적지 아니 엿보입니다. TV 드라마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뽀얀 영상의 톤처럼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러워 반 고흐의 열정과 광기에서 비롯된 강렬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반 고흐 위대한 유산'만 보면 반 고흐의 정신 질환은 심각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이해해주지 않은 것처럼 묘사됩니다. 자화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외모보다 반 고흐가 훨씬 미남으로 묘사된 것도 그의 힘겨웠던 작품 활동에 대한 몰입을 방해합니다. 오히려 미성년자도 무난히 관람할 수 있는 교육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가깝습니다.

반 고흐가 사망하기까지 인기가 없었지만 빌렘이 작품을 내놓으려 할 때는 이미 세계적인 유명세를 자랑하는 것으로 대비됩니다. 하지만 사망 이후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가 유명해지고 작품이 고가로 뛴 것인지 설명이 없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아울러 형 빈센트의 사망 이후 반 년 만에 뒤따른 테오의 사망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도 전혀 제시하지 않는 것도 약점입니다. 결말에서 자막을 삽입하는 만큼 자막이라도 활용해 설명했다면 관객이 궁금증을 안고 극장을 나서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글] 아띠에터 이용선 tomino@mhns.co.kr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운영자. 영화+야구+건담의 전문 필자로 활약.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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