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으랏차차, 세우다!'의 '개, 돼지'는 어떤 작품일까?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최정윤 프로젝트의 '개, 돼지'가 '으랏차차, 세우다!' 공모전 당선작으로 선정돼 세우아트센터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났다.

   
 

단국대학교 동기들로 모인 '최정윤 프로젝트'는 2015년 겨울, 수원 국제연극제 참여를 위해 처음 공연을 올린 팀이다. 처음엔 단순히 많은 금액의 지원금만 보고 만들어진 프로젝트였지만 스물넷 젊은 세 명의 연출이 모이자 놀랄 만큼 참신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한 명당 1,300원씩 내고 포차에서 안주를 시키며 결성했다는 '최정윤 프로젝트'는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란 이야기에 걸맞게 각각 수십 년의 시간 차를 두고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시대의 흐름이 변할지언정 본질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짚어낸다.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것 아니여?' 라며 관객에게 도발적인 멘트를 날리는 연극 '개, 돼지'는 각 작품을 개별적으로 잘라 붙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대를 오가며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느껴지게끔 한다. 이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억압한 이들을 다룬 '국풍81', 소화하기 어려운 주제인 '성폭행 사건'과 '온라인 댓글'을 믹스해 현실을 비판하는 '터치, 다운'. '여자가 아니라 사람이다'라며 아직도 유효한 주제를 목놓아 외치는 나혜석의 이야기를 다룬 '경희'는 제각기 블랙 코미디라는 큰 틀에선 함께면서 동시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크게 외친다.

또 패기가 느껴지는 참신한 연출들과 달리 젊은 배우들은 대학생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김빈, 서상원, 안애린, 장남수, 전병일, 최예진 6명의 배우는 세 가지 이야기가 쉴 틈 없이 뒤섞이며 오가는 '개, 돼지' 속에서 각 캐릭터의 흐름을 잃지 않고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중장년의 대통령 비서실장 '허문도' 역을 소화한 김빈, 15세 소년과 30대 여성을 오가는 최예진, 신파 톤의 과장된 연기 속에서도 '여성의 말'을 다하는 안애린의 모습이 빛난다.

무거운 사회적 문제에 도전장을 던진 이들의 패기가 아직 사회를 모르기에 가능한 젊은 날의 치기일지, 앞으로 좋은 공연을 만들어갈 천재들의 통찰력일지 궁금했다. 막 첫 공연을 올린 2일 오후, 최정윤 프로젝트의 최현아, 정다솔, 윤찬 연출과 6명의 배우를 만났다.

   
▲ 좌측부터 정다솔, 윤찬, 최현아 연출.

첫 공연을 올린 소감이 궁금하다.

ㄴ 장남수: 저는 아직 학생 신분인데 대학로에서 공연할 수 있어 너무 고맙고, 첫공 잘 마무리해서 남은 공연도 보완해서 잘 올리는 게 목표다.

ㄴ 서상원: 저도 대학로 공연을 하게 됐는데 늘 비싼 등록금 내고 공연하다 돈 받고 공연하니 행복하다(웃음)

ㄴ 김빈: 막내를 맡은 김빈이다. 돈을 받는다고 하니까 학교에서 공연하던 것보다 좀 더 부담감이 든다. 관객의 재미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오늘은 무척 떨었지만 남은 공연 잘 소화해 '개, 돼지' 잘 이어가겠다.

ㄴ 최현아: 최정윤 프로젝트의 '최'를 맡고 있다. 연출과 극작을 맡고 있다. 저는 공연하기 전에 배우보다 더 떠는 편인데 오늘은 특히 심했다. 내일도, 모레도 떨릴 것 같다.

ㄴ 윤찬: 최정윤 프로젝트의 '윤'을 맡고 있다. 극작, 연출, 조명 등을 맡았다. 대학로에서 저희 이름 걸고 올린 첫 공연이라 긴장도 했는데 아쉬움과 만족감이 공존한다. 잊지 못할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다.

ㄴ 정다솔: 최정윤 프로젝트의 '정'을 맡고 있다. '으랏차차, 세우다!'에 지원서를 넣은 사람이다(웃음). 정말 황홀하고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

ㄴ 전병일: 너무 즐겁게 공연했던 것 같다. 감사하다.

ㄴ 최예진: 올해 여름이 매우 더웠다. 어느날 하루 만에 가을이 왔던 적이 있는데, 오늘 공연을 올리려니 그 생각이 들더라. 너무 덥고 힘든 여름 끝에 하루 만에 온 가을 같은 공연(웃음). 지금까지 고생하고 땀 흘린 게 관객을 만나 빛을 발하겠구나 싶어 빨리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ㄴ 안애린: 저 또한 대학로 공연은 처음인데 올해 초부터 같이 고생했던 작품인데 학교가 아닌 대학로에서 동료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점이 무척 남다른 느낌이다. 첫공이라 너무 아쉽고 긴장도 했는데 남은 공연은 많이 즐겨보려 한다.

   
▲ 샌더스키, 김치전 역을 맡은 장남수 배우.

문화뉴스 독자들을 위해 작품 소개 간단히 부탁드린다.

ㄴ 최예진: '개, 돼지'란 작품은 저마다 다른 배경을 둔 세 가지 이야기가 모인 옴니버스 연극이다. 조선 최초 서양화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나혜석을 다룬 '경희', 미국에서 일어났던 대학 풋볼팀 감독의 성폭행 사건 '터치, 다운', 5.18 민주화 운동을 무마시키기 위한 대규모 축제 '국풍81'. 세상의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로 생각을 해봤다. 잘못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 잘못을 말하려는 사람의 입을 막으려는 사람, 모든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올랐다. '우리 공연만의 강점'을 꼽자면?

ㄴ 전병일: 저희의 강점을 말하자면 세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먹는 느낌이다(웃음). 파인트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

ㄴ 윤찬: 정말 할 거냐고 물어봤는데 진짜 했다(웃음).

꿈이 있다면? 본인들의 공연이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나?

ㄴ 정다솔: 이 공연을 본다고 관객들이 나가서 바로 운동을 하고, 그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공연을 보고 마음이 조금이라도 뜨거워져서 무언가 더 알아가 보려고 시도만 한다면 저희는 그걸로 충분하다.

   
▲ 맥컬리, 기자, 김태훈 역을 맡은 서상원 배우.

포스터가 상당히 파격적이다. 헤드라인인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아야지' 같은 멘트는 너무 노골적이란 인상이 있는데 어떤 의도에서인지.

ㄴ 윤찬: 일단 '개, 돼지'라는 제목을 지은 연유를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다. 저희가 2015년 11월에 연출 세 명이 모여서 연극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각자 하나씩 맡아서 연출하기로. 그래서 어떤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할지 이야기하던 중 영화 '내부자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 나온 대사가 저희가 당시 생각하던 주제랑 잘 맞아서 '개, 돼지'라는 표현을 가져왔다. 그러나 저희는 '사람답게 살아야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왜 우릴 개, 돼지로 보지? 우린 사람답게 살고 있는데.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라고. 포스터나 팜플렛, 공연 중 대사에까지 '개, 돼지'란 말을 많이 넣어서 관객에게 자극을 좀 더 주고 싶었다.

상당히 시의성이 짙은 작품이다. '최정윤 프로젝트'의 가까운 시일 내의 계획이 있는지.

ㄴ 최현아: 이번엔 하고 싶은 이야기, 사회적인 이야기를 해봤으니 다른 방향은 어떨까 해서 하반기에 준비해서 내년 상반기에 뮤지컬을 한 번 만들어보려고 한다. 이런 방식은 아니어도 같이 소재를 모으고 제작해서 '최정윤 프로젝트'의 뮤지컬을 올리고 싶다.

   
▲ 해리, 허문도 역을 맡은 김빈 배우.

무대가 독특한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개방된 무대에서 배우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나, 무대를 나가는 순간 배우의 연기가 딱 멈추는 모습을 보면 의도가 있어 보인다.

ㄴ 정다솔: 저희가 세 가지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시대에도 계몽의 움직임이 있었고, 지금도, 20년 뒤에도. 이걸 각자 다른 배우가 아닌 6명의 배우가 배역을 나뉘어서 한다. 이 이유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누군가는 외칠 것이고, 누군가는 막을 것이고, 누군가는 방관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도 이것이 순환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무대 뒤를 가리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소품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무대 위에 올라갈 때 어떤 사람도 될 수 있다는 점을 관객에게 노출하고 싶었다. 무대 구역과 아닌 곳의 경계를 확실히 한 점도 무대라는 공간, 사건 안에 들어오는 명확한 모습을 더 깔끔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비슷한 사건들이 많을 텐데 굳이 세 가지 소재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ㄴ 윤찬: 저희가 모여서 '뭘 쓰지?' 라고 고민할 때 온라인에서 나온 이야기가 그런 것이 많았다. 연예인 관련 이슈, 사건 등을 보면 '이거 다른 사건 묻으려고 터트린 거다'라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자극적인 사건에 사람들도, 저희도 눈이 가더라. 그러나 그런 자극적인 데에만 눈길이 쏠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계몽'이란 단어를 떠올려봤다. 자극적인 것만 보지 말고 좀 더 파헤쳐보고 넓게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야기를 찾았다. 최현아 연출의 '터치, 다운', 정다솔 연출의 '경희', 제 '국풍81'은 그렇게 해서 찾아진 소재였다.

   
▲ 지미, 경희, 사회자 역을 맡은 최예진 배우.

최근 SNS에선 여성혐오, 성차별 등이 이슈가 되고 있다. 나혜석 화가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경희'를 보면 이러한 최근 흐름을 조금 피해갈 수도 있었을 텐데 과감히 소재를 밀어붙인 이유가 있는지.

ㄴ 정다솔: '경희'는 여성의 이기적인 외침으로 가면 안 된다고 배우들에게 이야기했다. 실제로 나혜석이 극에서 외치는 이야기는 좀 강하게 말하긴 하지만 과장하거나 거짓말은 없다. 그래서 저는 배우들에게 '우리는 여성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모르는 사실, 덮었던 사실을 열려고 처음 말을 꺼내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소재를 준비했던 시기에 비해 최근엔 '여성혐오', '남성혐오' 같은 식의 이야기가 너무 뜨거운 감자가 돼서 좀 걱정한 부분은 있다. 그렇지만 이 소재를 바꾸지 않을 이유는 이 소재를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나혜석이 외치는 이야기의 청자는 여성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으며, 공부하고 일어서야 한다'는 나혜석의 계몽적인 모습에 초점을 두고 보면 좋겠다. 잘 표현되지 않았다면 제 부족함 때문이다.

   
▲ 나혜석 역의 안애린 배우.

진지한 작품 톤이지만 웃음을 만들어내는 코드가 있다. 공동 연출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 이견이 있을 수 있었을 텐데.

ㄴ 윤찬: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싶은데 대부분의 웃음 코드는 '경희'에서 나온다. 과장된 제스춰라거나. 정다솔 연출의 공이 크다.

ㄴ 정다솔: 어떻게 극을 풀어나갈까 고민했는데 '신파극'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신파'에서 남자는 항상 강하고 여자는 항상 약하다. 그래서 나혜석의 이야기에 접목해보면 좋겠다 생각했다. 나혜석과 남편이 사랑하는 장면, 이혼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그걸 보고 웃었으면 했다. 과장된 제스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모습' 자체가 웃음거리가 됐으면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내쫓는 장면도 굉장히 심각한 장면이지만 관객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서 일부러 어떻게든 웃기려고 해서 남편이 방귀를 뀌게 하고. 그런 식으로 풀었다.

   
▲ 김우영, 권용 역을 맡은 전병일 배우.

옴니버스 이야기지만 각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나온다.

ㄴ 윤찬: 저희의 제작 과정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우선 저희가 각자 쓴 세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을 흐름에 맞춰 쪼갰다. 그러고 나서 이것들을 어떻게 조합하면 좋을까 해서 세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다.

ㄴ 정다솔: 퍼즐을 맞추듯이 했다.

ㄴ 윤찬: 그래서 각각 윤찬의 '국풍81', 정다솔의 '경희', 최현아의 '터치, 다운'이지만 셋을 하나로 모으면 '개, 돼지'라는 새로운 하나의 작품이 되게끔 했다. 예를 들어 '국풍81' 연습할 때는 제가 연출을 맡지만 다른 둘이 와서 함께 보면서 '개, 돼지'라는 전체 흐름에 맞춰 수정하거나 조율해갔다. 연습 기간도 길었고 그로 인해 작품이 풍부해졌다. 공동 연출을 셋 다 처음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해보니 각자의 스타일이 다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서로의 작품에 아이디어를 내줘서 작품들이 더 풍부하고 재밌어졌다. 처음엔 걱정했지만 이젠 다행이란 생각이다. 생각보다 잘 맞는다(웃음). 원래 5월에 끝날 뻔했는데 괜찮아서 계속 이어갈 것 같다(웃음).

[글]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사진] 으랏차차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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