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해설(解說)은 기사 특성상 '마인드스케이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화뉴스] 기억을 파고들어 범죄 수사에 기여하는 '기억 수사관' 존(마크 스트롱 분)은 아내의 자살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생계가 곤란하던 존은 16세 소녀 애나(타이사 파미가 분)가 식사를 하지 않는 이유를 규명할 것을 의뢰받습니다. 애나는 어린 시절과 기숙학교 시절의 충격적 사건들을 존에게 보여줍니다.

이미 봐왔던 요소들

호르헤 도라도 감독의 '마인드스케이프'는 타인의 지난 기억(Mindscape)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을 제시합니다. 타인의 잠재의식을 첨단 기기와 특별한 능력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설정은 '인셉션'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기억 수사관의 수사 자료는 거짓말탐지기보다 신뢰도가 높다는 흥미로운 설정을 제시합니다. 정부가 기억 수사관 제도를 운영하는 설정은 '엑스맨' 시리즈에서 정부 소속이던 돌연변이들을 연상시킵니다.

상처받은 미성년자 의뢰인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와중에 전문가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두 사람이 신뢰를 쌓아가는 전개는 '식스 센스'를 닮았습니다. 이성인 두 주인공이 미묘한 호감을 품게 되며 여주인공이 주인공을 속인 팜므 파탈임이 밝혀지는 전개는 '현기증'을 비롯한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전형적 공식입니다. 하지만 여주인공이 성인이 아니라 미성년자라는 점에서는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합니다. 피해자인 듯한 순진한 인물이 알고 보니 치밀한 범죄 행각을 주도했음이 드러나는 결말은 '프라이멀 피어'와 비슷합니다.

   
 

두드러지는 약점

'마인드스케이프'는 클리셰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기억의 조작'은 기억을 소재로 한 거의 모든 할리우드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설정입니다. 숱한 영화들에서 익숙한 요소들을 짜깁기한데다 결말 또한 다른 영화들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애나가 모두 꾸민 일이라는 결말은 일찌감치 예측할 수 있습니다. 어정쩡한 해피 엔딩도 영화에 대한 여운을 방해합니다. 결말에서 애나는 존을 배려하지만 차라리 존이 확실하게 파멸하는 편이 강렬함의 측면에서는 보다 나았을 것입니다. 스릴러는 장르적으로 비극에 상대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면 엄청난 설득력이 요구되지만 '마인드스케이프'는 그렇지 못합니다.

관객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단서인 이모티콘을 명색이 수사관인 존이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은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립니다. 스릴러에서는 기본적으로 감독과 각본가가 설정한 범죄자가 영화가 종료되기 전까지 탐정 역할의 주인공보다 영리해야 하며 주인공은 관객보다 영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인드스케이프'는 너무나 쉬운 단서를 수사관인 주인공이 간과합니다.

   
 

존이 뒤늦게 이모티콘이 단서임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애나의 졸업 앨범을 뒤지는데 한국계로 보이는 소녀의 이름이 'Park, Kim'인 것도 어색합니다. 한글 이름으로 바꾸면 '김박', 혹은 '박김'인 셈인데 각본가 혹은 소품 담당 스태프가 한국인의 이름에 대해 일천한 지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호러와 고어의 요소를 일부 지니고 있지만 정도가 강하지는 않습니다. 붉은 장미를 앞세워 베라 파미가의 21세 연하 여동생 타이사 파미가가 분한 애나의 유혈, 열정, 사랑, 섹시함을 강조하지만 강렬함이나 새로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마크 스트롱의 검증된 연기와 독특한 캐릭터를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물입니다. 클리셰를 뛰어넘는 독창적이며 중층적인 각본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마인드스케이프'의 최대 약점입니다.

   
 

[글] 아띠에터 이용선 tomino@mhns.co.kr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운영자. 영화+야구+건담의 전문 필자로 활약.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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