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인 연희전문, 보성전문 시절부터 현재까지 '승률 50%', 맞수 중 맞수!

▲ 연세대와 고려대가 만날 때마다 두 맞수는 명승부를 펼쳤다. 양 교의 쉴 틈 없는 응원전은 이러한 명승부를 뒷받침하는 원동력이 됐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지금은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명문대학교'는 모든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명문대학교는 장래를 보장할 수 있는 보증수표가 될 수 있고,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엄청나게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를 나왔다는 것은 '좋은 직장'과도 연결될 수 있기에 그만큼 교육열이 높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왜 한국사회는 교육에 열을 올렸는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 조상들은 학문을 숭상했고, 지배 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에서 치르는 과거에 합격해야 했으므로, 과거에 급제하느냐 못하느냐는 인생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계급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아무나 과거를 볼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사화는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신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지배 계급인 사(士) 계급은 양반으로 나뉘어 양반의 자제들만이 과거의 응시할 수 있었다. 다만, 평민들의 자제는 기술직/전문직에 한해 국가고시를 거쳐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관직, 즉 벼슬길에 올라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계급은 양반에 국한되었으며, 평민들은 물론 극히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자(庶子)도 과거 응시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는 특권층인 양반 계급에만 열린 인재 등용문이었다.

그러나 조선이 망하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특권 계급이었던 양반은 완전히 무너지고, 신분 제도 또한 무너져 한국인들은 갑자기 신분상 평등하게 되었다. 비록 한국인에게는 가뭄에 콩 나듯 관직이 주어졌지만, 관직은 곧 벼슬이고 출세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신분제 철폐는 신분상승의 기회를 열어 준 셈이다. 그런데 적어도 고등 교육을 받은 자에게만 관직이 주어지니, 배우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교육 열풍이 불어닥쳐 가난한 농민들도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출신 성분이야 어떻든 머리 좋고 많이 배우면 출세할 수 있는 열린 기회의 사회가 되자 교육만이 신분 상승과 부를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고, 지금까지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뜨거운 교육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야구 읽어주는 남자, 야구 보여주는 남자 서른한 번째 이야기는 바로 '명문 사학'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중 유난히 강력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정기전에 대해 논해보도록 하겠다.

명문대학교 축제의 교본, 연세대/고려대 정기전

한국 스포츠의 태동과 그 시기를 같이했던 양 교의 첫 대결은 1925년에 전(全) 조선 정구대회 전문부 제1회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최초의 정구대전은 1회전에서의 조우였을 뿐만 아니라, 경기를 할 수 있는 인원 숫자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던 탓으로 과연 양교 자신이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된다. 따라서 양 교의 실질적인 첫 대결은 1927년 11월 2일, 경성운동장(옛 동대문 운동장)에서 거행된 제8회 전(全) 조선 축구대회 준결승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어 같은 달 12일부터 개막된 제2회 전문학교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양교 최초의 패권다툼이 벌어진 이래, 1942년까지 28차례의 조선 축구 정상을 겨루는 접전을 벌여 14승 14패의 무승부를 기록했다.

▲ 정기전이 열릴 때마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어김 없이 이 자리에 나선다. 김연아가 그러했고, 손연재도 그러했다. 고려대 주최로 열린 이번 정기전에서는 프로골퍼 전인지(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가 시타를 했다. 사진ⓒ김현희 기자

이 축구 대전에 더하여 1929년부터는 YMCA주최 제5회 중등학교 농구 선수권대회에 전문부전이 창시되어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 전신)가 첫 패권을 장악했고, 이듬해에는 처녀 출전한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전신)가 왕좌에 오름으로써 이듬해인 1931년부터 치열한 양교의 설욕전이 펼쳐졌다. 이후 1942년까지 양 교 농구는 56차례나 맞붙었는데, 누구 하나 지는 법 없이 28승 28패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백중세를 기록했다고 한다.

연희전문(이하 '연전')/보성전문(이하 '보전')의 전통을 이어받은 연세대/고려대 양 교의 정기 대항전의 역사는 1945년 12월 4일에 가진 제1회 연/보 OB 축구전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다. 그 후 같은 해 12월 21일, 22일 양 일간 YMCA 체육관에서 OB 농구전이 거행되었고, 다음해인 1946년 5월 23일 현역 간의 축구 대항전이, 10월 28일에는 역시 현역 간의 축구, 농구 두 종목의 대항전이 각각 열리면서 연고전/고연전으로 불리는 양교 대항전이 선을 보이게 된다.

축구, 농구 두 종목에서 시작한 정기전은 이후 1956년에 야구와 럭비가 추가되고 다음해 월 아이스하키가 대항전을 가지면서 현재와 같은 5종목의 대규모 대회로 발전하게 되었고, 1965년부터 이틀에 걸쳐 5종목의 경기가 일제히 벌어지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후 양교의 대결은 학내와 외부의 영향으로 여러 차례 유산되기도 했으나, 5개 부를 중심으로 화려했던 연전과 보전의 전통이 부끄럽지 않게 계속 국내 정상의 자리를 다투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젊음을 불태우는 장(場), 연세/고려 정기전

명문 사학의 스포츠 대결은 수능 대결과는 별도로 자못 큰 의미를 지닌다. 수능 대결에서는 고교 성적에 따라 입학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대학 서열순위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는 다르다. 악을 미워하고, 정정당당한 대결로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젊은이의 패기를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어우러져 정기전이 열리는 순간만큼은 세대차이도 없어지게 된다.

사실 양 교의 정기전은 한때나마 공중파로도 중계될 만큼 엄청난 관심을 끈 바 있다. 어찌 보면 양 교의 친선전일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해당 학생이 아닌 사람에게도 그 결과가 궁금해지는 점은 내심 놀라운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양 대학의 맞수 대결은 단순한 친선전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크다. 정기전을 통하여 당시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던 최동원, 임선동, 이상민, 문경은(이상 연세대), 선동열, 이상훈, 조성민, 김병철, 전희철(이상 고려대) 등이 등장하였고, 이후 우지원, 서장훈, 조상현/동현 형제, 방성윤, 안치용, 마해영. 박용택, 박주영 등이 이어 등장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래서 양 사학 라이벌전이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한국스포츠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프로야구만 봐도 양대 사학 출신들은 제법 많은 편이다.

▲ 경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선수들과 재학생이 어우러지는 장(場)이 된다. 사진ⓒ김현희 기자

다만, 이러한 명문 사학의 축제는 몇 가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자신들만의 엘리트즘에 빠져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그 하나요, 지나친 승부욕과 일부 학내의 불합리한 요소들로 인하여 그 선명했던 색깔이 퇴색해 가고 있다는 것이 그 둘이다. 그로 인하여 과거의 순수함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모교에 대한 애교심은 그릇된 이기심으로 변해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안티 정기전'에 대한 이야기도 거론됐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움직임보다는 축제의 연장선상에서 연세/고려대 정기전을 바라보자는 의견이 우세한 편이다. 따라서 양 교가 주최하고 있는 정기전은 일제에 대한 설움을 풀어 주었던 자긍심, 한국 스포츠의 선두주자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정기전의 명칭을 두고 '연고전이냐 고연전이냐?'를 두고 많은 논쟁거리를 낳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일 년 단위로 이를 번갈아 쓰기로 하면서 꽤 현명한 선택을 한 바 있다. 주최하는 학교 측에서 상대 학교를 존중한다는 배려로 자신의 학교 명칭을 뒤에 넣는 것도 꽤 인상적인 부분이다. 고려대학교 주최로 열린 2016년 정기전의 공식 명칭은 '연고전'이다.

깊은 역사를 자랑하며, 오랜 기간 맞수로 자리 잡았던 양 교의 대전의 승률은 거의 50%에 가깝다. 올해는 고려대학교가 야구와 축구 종목에서 승리하며, 2승 2무 1패의 성적으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고려대의 우승으로 양 학교의 정기전 역대 전적은 18승 10무 18패로 정확히 5할 승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당분간 맞수들의 5할 승률 게임은 깨어지지 않을 듯하다. 그것이 바로 정기전의 매력일 것이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