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장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배우들을 말한다. 이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처럼 주목받는 조연배우들이다. 문화뉴스의 [대한민국 탑 아트스틸러]는 대중적인 주류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큰 인정을 받으며 My way'를 걷고 있는, 우리 문화예술계를 빛내고 있는 소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문화뉴스] 축구팬, 특히 K리그 팬들에게 임유철 감독의 영화 '비상'(2006년)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상'은 기업이 운영하는 구단이 아닌 시민이 주인인 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야기를 다뤘다. 특히, 대기업이 운영하는 구단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 환경 속에서도 2005년 K리그 준우승을 달성한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누적 관객 4만 명을 동원하면서, 스포츠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임유철 감독은 축구 다큐멘터리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6일 개봉한 이번 작품은 국내 최초 지역 아동센터 유소년 축구팀 '희망 FC'의 이야기를 통해 '꿈'을 향한 열정만큼은 프로선수 못지 않은 아이들의 도전과 성장기를 과연 어떻게 담아냈을지 주목받고 있다.

임유철 감독은 "누구나 태어남 그 자체로 찬란함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마음은 여러 가지 스포츠 종목 모두가 똑같을 것인데 유독 축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임유철 감독이 이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통해 아이들에게, 축구 팬들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임유철 감독을 직접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지난 10월 24일 왕십리 CGV에서 열린 '누구에게나 찬란한' 언론 시사회에 참여한 임유철 '누구에게나 찬란한' 감독(좌측 아래), 김태근 '희망 FC' 감독(우측 아래), 그리고 '희망 FC' 선수들

2006년 '비상' 개봉 후 오랜만에 '누구에게나 찬란한'으로 관객 앞에 작품을 선보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ㄴ '비상'을 원래는 메이저 제작사인 '튜브 픽처스'에서 제작을 했는데 (2006년 독일) 월드컵 기간에 개봉을 못 하면서 개봉이 불투명해졌다. 여기에 '비상' 제작 비용 2억 5천만 원 중 제 개인 돈인 1억 5천만 원을 제외한 1억 원을 구하기 위해 다른 영화사들을 돌아다녔다. 그때만 하더라도 다큐멘터리, 특히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이전 망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극장에서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 개봉을 거절당했다. 그러다 어떤 제작사에 들어가서 후반 제작비 1억을 받고 영화를 개봉하는데 조건을 걸었다.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들어갔던 1억 5천을 주면 영화에 대한 모든 권리를 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그 영화 연출자의 권리만 받았다. 결국, 영화가 그 해 연말에 흥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성과보수를 받지 못했다. 그것이 빚이 됐고, 그 빚을 갚느라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못하고 돈이 되는 일은 뭐든 지 다 했다. 그러느라고 다음 작품에 대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두 번째 극장에서 내거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또 스포츠 다큐멘터리, 그것도 축구 다큐멘터리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ㄴ 나뿐 아니라, 어떤 분야의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면 그 분야의 많은 사람과 보는 시야가 생기게 된다. '비상' 이후에 축구를 정말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축구는 따로 보지 않아도 '딱 보면 이것은 이야기가되겠구나!'라는 장점이 있게 됐다. 하지만 다음에도 무조건 축구를 해야겠다고 이 소재를 찾은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프로젝트는 어떤 한국 사회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문제를 약 천여 명의 사람이 응원과 참여를 해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생각하다 나오게 됐다. 프로젝트를 생각할 무렵 마침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을 시기였다. 그래서 기존의 언론이 아니라 새로운 개인들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시기여서 '이러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알게 된 감독이 '희망 FC'의 창단 감독인 박철우 감독이었다. 박철우 감독은 보육원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먹이고, 재우고, 입히면서, 훌륭하게 축구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을 이미 증명했기 때문에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박철우 감독의 팀이 상설팀이 아닌 임시팀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상설화시켜야겠다고 뛰어다니게 되었다.

본격적인 축구부 창설을 위해 임유철 감독은 박철우 감독과 함께 지역자치단체를 설득해 나서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들 스스로 팀을 만드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는데, 그게 여건상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팀을 만드는데 앞장을 서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결론적으로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축구 영화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참여를 통한 작은 이야기를 확실하게 완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다가 그것이 마침 축구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작품을 보면 황병훈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출중한 축구 실력을 지녔지만, 후보 선수에 머물렀고 게다가 왕따였다. 그랬던 선수가 커가는 인상적인 과정을 서브플롯으로 보여줬는데 이 선수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을 것 같다.

ㄴ 병훈이 같은 경우는 영화에 나온 것 이상으로 통제가 안 됐다. (웃음) 병훈이가 패스만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포지션도 자기 마음대로였다. 공격수로 시작했는데 수비수로 내려갈 때도 잦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처음 입단 테스트 과정에선 1등을 했었다. 그것이 신기했다. 그 정도로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었고, 그 친구를 성장시킨 데는 2대 감독인 김태근 감독의 덕이 컸다. 우리가 축구뿐 아니라 왕따 문제도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학교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이뤄진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평등하다는 것은 빈부격차뿐 아니라, 왕따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축구로 인해서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 '희망 FC'의 공격수이자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황병훈

박철우 '희망 FC' 초대 감독은 구단과 교육관의 의견 차이로 인해 사퇴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박철우 감독의 추천으로 김태근 감독이 2대 감독에 임명된다. 김태근 감독은 '성공보다는 즐거움'을 중요시하는 감독이었고, 정말 아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감독을 실제로 만나고 나서 본 소감을 듣고 싶다.

ㄴ 다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주장을 한다. 김태근 감독은 한 번도 '저는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했습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 말을 몸으로 실천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말로만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을 너무나 많이 만났다. 지금도 그 아이들이 힘들게 축구를 하고 있는데,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을 했으면 좋겠다. 말 몇 마디만으로 사람들을 잠시 혹하게 하는 것은 짧은 시간이고 곧 가짜라는 것이 들통이 날 거다. 김태근 감독은 그런 사람과는 다른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김태근 감독과 임유철 감독은 촬영 종종 카메라 뒤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 아이들은 프로 축구 선수까지는 못 간다"가 주제였고, 그래서 "이 팀을 어떻게 만들어갔으면 하는 것이 좋겠냐"는 대화에 "이 팀은 아이들이 경기장에서 마음껏 뛰는 것이 더 중요한 팀이다. 그래서 이 팀을 공공재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꿈들을 펼쳐 보일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서로 의견을 말한 바 있다.

여기에 김태근 2대 감독에 가려져 악역처럼 그려진 박철우 감독에 대한 변을 남겼다. "사실 박철우 감독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실천도 하는 그런 분이었다. 영화 속에 비친 박철우 감독이 '호랑이 선생님'처럼 그려진 이유는 이미 오랫동안 축구가 꿈인 아이들이 좌절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프로선수로 키우려는 목표로 혹독한 훈련을 진행하지만, 그 속에는 아이들이 가난이라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고 희망차게 도약하길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있었다고 임유철 감독은 설명했다.

이번엔 약간 자극적인 질문을 해야겠다. 아이들이 가난하니까 속된 말로 "삥 뜯을려고 이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일부 안 좋은 시선이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 지 듣고 싶다.

ㄴ 아마 영화 뒷부분에 모금을 추진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지 모르겠다. 영화 자체는 그러한 점이 없다. 나는 영화감독이라고 으스댄 적도 없고, 카메라를 가지고 일하는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목적성을 보유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사실을 기반으로 균형감각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그냥 소비하는 것이 싫다. '안 만들어진 축구팀을 만들었으면 좋겠네!'라고 생각만 하고 말 거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찍고 사람들이 감동을 하고 잠시 모금을 하고 끝날 거면 이 영화를 만들면 안 된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 이후에도 '희망 FC'가 계속 지속할 수 있게 유지가 되어야 한다. 이 축구팀을 도와달라고 했던 이야기는 기부를 단순하게 사랑의 열매를 달고, 연말 되면 돈을 내고 하지만(그 행동도 물론 고마운 일이다) 그걸 좀 더 전문화해보자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기부를 통해 세상이 좋아지는 것을 같이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팀을 감독이 만들었고 노력한 사람들이 만들었으니 박수 쳐주세요'가 아니라 우리 모두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2012년에 촬영했을 당시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에 대한 근황도 궁금했다.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이 지금 훌륭하게 커가고 있다. 여기서 일부 아이들은 축구 선수는 되지는 않았지만, 바르게 자라고 있다. 몇몇 선수는 엘리트 반으로 넘어갔고, 김태근 감독이 이끄는 축구교실에 중학교 반으로 간 아이들도 있다"고 앞으로 더 훌륭하게 성장하길 감독은 진심으로 응원했다.

   
▲ 지난 10월 24일 왕십리 CGV에서 열린 '누구에게나 찬란한' 언론 시사회에 참여한 임유철 '누구에게나 찬란한' 감독(왼쪽)과 김태근 '희망 FC' 감독(오른쪽)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

ㄴ '이 영화는 모금하려고 만든 거네. 삥 뜯으려고 만들었네!' 욕하시면 그 욕 달게 받겠다. 영화는 관객과 만났을 때 완성이 된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 한 번 흘리고 나서 그냥 소비하는 것보다 그분들이 움직여서 다시 재생산이 된다면, 그래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런 영화를 또 만든다면, 그게 더 복 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임유철 감독이 인터뷰장을 떠나기 전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이번 작품에 배우 김남길이 내레이션을 하게 됐다고 물었을 때 그는 웃으면서 "김남길 배우가 재능 기부로 내레이션을 해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우리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 깊은 작품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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