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예전에 부러진 화살을 만든 지 얼마 안 된 정지영 감독을 만났더랬다.

나는 그에게 정치적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오히려 감독은 나에게 물었다.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를 말해보라고. 나는 선뜻 골라내기가 어려웠다.

감독은 말을 이었다.

"만약에 내가 로맨스 영화를 만든다고 칩시다. 선남선녀가 나오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으로 끝나는 영화. 이 영화는 정치적이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이 영화는 남녀 간의 사랑 외의 다른 종류의 사랑을 제외할 뿐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옹호하는 정치적 영화입니다" 

하나하나 따지면 오히려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히려 반문해야 한다고 했다. 왜 수많은 정치적 영화 중에서 내가 만드는 정치적 영화만 정치적 영화로 색깔을 입혀 부르는지.

요즘 연예인이든 시민이든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면 너무 정치적이다는 얘기를 듣는다. 신해철의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죽음도 그가 정치적이었다는 이유로 폄하되고, 김제동, 김미화 등 많은 연예인들의 방송활동이 제한된다.

이승환 씨의 페이스북에는 제발 노래만 하라는 팬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그들의 정치적인 행보에 민감할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그동안 기득권 세력을 지지하는 침묵의 정치적 행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반하는 행동은 굉장히 특별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불편하다거나 부정적이라는 핑계를 대며 아무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지금 유지되는 큰 흐름에 결국 정치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최근에 애플 CEO 팀 쿡이 커밍아웃을 했다. 그간 사생활이라며 공식적으로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지 않은 자신의 침묵의 정치적 태도를 반성하며 더 이상 그러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였다. 성공한 게이로서 다른 성 소수자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정치로 선택을 바꾼 것이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할리우드의 많은 스타들이 동물보호를 외치고, 제3국의 아이를 도우며 성금을 선뜻 내놓는 것도 기존 서구 문명이 약탈한 소외한 문화권에 대한 지지의 정치적 행보다. 단순히 착한 이미지를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그들의 신념과 믿음에 대한 실천이고, 그 행동으로 그들은 소외된 약자를 돕는 정치적 위치를 확보한다.

당신이 무심코 올리는 문화예술에 대한 리뷰도, 음식점에 대한 평가도 모두가 당신의 정치적 입장과 위치를 나타낸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당신의 소비에도 정치적 선택이 담긴다. 고전적으로 정치는 국가나 사회에서 성취하기 위해 모든 행동이나 활동을 포괄하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서는 정치가 개인과 모든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확장되었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정치적이다는 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결국 전쟁 이후 우리는 숫자로만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예술은 아직도 오락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만다.

비틀스의 존 레넌, 오드리 헵번, 마돈나, 앤젤리나 졸리 등 수많은 문화예술 종사자가 정치와 긴밀히 움직여왔다. 그들은 그래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그들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생명을 얻는다. 왜 그들은 찬양하고 한국의 스타는 비난하는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가. 그들의 정치적 행동을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이런 기형적 성장 사회를 방관하며 침묵으로 정치적 동조를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글] 아띠에터 박으뜸나리 artietor@mhns.co.kr

서울대 디자인학부, 한예종 조형예술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팟캐스트 '상수약국'(http://m.podbbang.com/ch/6432)에서 문화·예술의 다양한 해석 소화를 돕는 독한약 처방 전문 약사 '독사'다. 독서토론 '리딩홀'을 운영한다.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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