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의 노래와 인생을 따라 함께 울고 웃는다

[문화뉴스] 지난 금요일, 거리에 가득한 할로윈 장식들을 뒤로하고 신사동 가로수길을 걷는데 어느 가게 앞에 줄지어 앉아 있는 소녀의 무리가 눈에 띄었다. 꽤 쌀쌀한 날씨에 단단히 무장하고 돗자리까지 준비한 그녀들이 무얼 하나 싶었는데, 다음날 그 곳에서 한 배우의 사인회가 있단다. 그와 눈을 맞추고 이름을 말하고 그의 필체로 사인 한 장을 받는 그 30초 남짓의 시간을 위해 이 밤을 지새울 예정이라니, 그녀들이 이 날씨에 괜찮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얼마나 좋으면 저럴 수 있을까 싶어 그 마음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팬으로서의 사랑은 연예인에 대한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포츠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짜릿하고 감격스러운 경험을 안겨주는 일이던가.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이 매해 우승하는 것으로 내 인생이 위너인 것처럼 느껴지고, 혹은 만년 꼴찌인 팀을 응원하며 마치 내 삶이 루저인 것만 같아 주눅이 들고, 그래도 그런 그들이 안쓰럽고 계속 응원하며, 조금 달라지는 모습에도 환호하게 되는 것. 그렇게 변화한 그들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서며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 아무리 힘들고 지치는 일상을 보냈다 하더라도 나 역시 상승하는 기운을 받는 듯 힘이 나는 것. 그렇게 어쩌면 과거 어느 순간에는 나와 전혀 관련 없었던 대상의 근황에 따라 웃고 울고, 그들이 나의 자랑이고 때로는 치부가 되는 관계가 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기꺼이 그러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을 한 마음으로 응집시킬까?

어떤 대상의 팬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연인과의 사랑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이 수많은 이유로 누군가의 팬이 된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가 다양하듯 말이다. 얼마전 운명을 달리한 故 신해철을 사랑했던 이들은 아마 각자 자신만의 이유를 가졌을 것이다. 우연히 듣게 되었던 그의 노래가 그저 좋았을 수도 있고, 그의 천재성에 감복했을 수도, 혹은 힘들었던 순간에 위로가 되어 준 그의 노래가 그를 좋아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 남들은 독설이라고 하나 소신이 있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의견을 시원히 내뱉어 주는 그로 인해 대리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수도 있겠다.

사랑하는 이가 행복한 것은 사랑하는 대상 그 자체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오는 자기만족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대상 자체가 제공하는 일차적 기쁨이 있다면, 어떠한 대상을 조건이나 대가 없이 그저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한 이차적 행복, 그리고 그런 마음을 함께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서 얻는 또 다른 행복이 존재한다. 그들이 추종하는 대상이 가수이든, 배우이든, 혹은 어느 스포츠팀이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처음 보는 이들도 금세 하나로 묶이게 할 만큼 돈독한 응집력을 갖게 한다. 이는 여타 다른 사회적 관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면이 있는데, 바로 그들을 모이도록 한 것이, 어떠한 이유도 계산도 없는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이 그들 간의 응집성을 더욱 커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각자의 입장에서 시작한 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어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면서, 비록 살을 붙이고 곁에 있는 친구나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살아가고 의미를 찾고, 때로는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제공해주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맹목적인 관심과 사랑이, '나의 우상이라면 어떤 잘못이든 감싸 안는 왜곡된 시선'으로 이어진다면, 혹은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편협해지는 것은 위험하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부분을 조금 경계한다면, 이토록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도, 그리고 그런 팬이 되는 것도 가히 매력적인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그 우상이 우리를 떠나게 되는 상황이 온다.

그것은 은퇴일 수도 있겠고, 얼마 전 그가 우리 곁을 떠났듯 예기치 못한 사고나 죽음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故신해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지만, 실은 그들의 슬픔과 그를 향한 애도 또한 아마 여러 갈래로 나뉘리라 여겨진다.

그의 오랜 팬으로 그의 데뷔와 지금까지의 모습을 쭉 지켜보고 함께해 온 이들의 슬픔, 나의 우상 혹은 그를 닮은 그의 음악을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것으로 인한 슬픔을 느끼는 이들이 있고, 동시대를 살아온 이에 대한 동질감 어린 마음으로, 나의 시대 역시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의 삶이 가지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그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암에 걸렸던 아내와 결혼에 골인해 함께 아픔을 이겨내고 지금도 그 아내밖에 모르는 로맨틱한 남편이자, 귀여운 두 아이의 아빠인 그. 스타라는 위치를 떠나 한 가정의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인 그의 부재가 아프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을 테고, 어쩌면 단순한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아닌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비록 완벽히 그 세대에 속한 것은 아닌 내게 그리 가깝게 느껴졌던 이는 아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 그는 뮤지션이나 한 남자로서를 떠나 한 인간으로 참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 같지만 속은 따뜻하고 감상적인 로맨티스트였고, 비틀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그만의 기준과 논리가 있었다. 그래서 '마왕'이라는 그 이름이 오그라들지 않고 알맞다는 느낌이 들었던 사람.

   
 

그가 진행했던 '음악도시'의 마지막 방송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신해철은 말했다. 매일 밤 12시 음악도시에 모이는 시민들인 너와 나, 우리는 사실 직업, 거주 지역, 성별, 주위환경 등 모든 것이 다르고 그다지 외형적인 공통점은 없다고. 하지만 어쩌면 아직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철학과를 다녔던 그가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제는 자신 있게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결론을 내린 그는, 음악도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청취자들 여러분이 바로 자신의 프라이드였다고 말했다. 이 도시에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었는데,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았냐는 말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뭐 그리 뭐 대단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듣고 따르고, 그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공유하고 이해해주는 이들과 함께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 혹은 내가 가진 것들과 나라는 존재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결국은 내 존재의 의미가 되는 것. 그런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과정들이 모여 행복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 깨달음을 들려주었던 그가, 언젠가 자신은 요절한 천재보다는 백발 노장의 거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그가 이따금 참 많이 그리울 것 같다.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필자 블로그 방문가기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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