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화뉴스]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영광이다. 작년부터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름이 거론된 것도 이미 들어서, 그다지 놀랍지가 않다. 우리 연극인 내에서는 '블랙리스트'를 공공연히 알고 있었고, 이제 물증이 나온 상태다. 그러던지 말든지, 연극만 잘 올리면 좋겠다."

 
지난 10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 자료를 분석한 결과 청와대와 문화부가 예술위원회 심사 및 심사위원 선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일보는 12일 "청와대가 지난해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해야 할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보냈다는 주장과 자료가 11일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는 12일 현재 해명자료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한편, 2015년 5월 1일 594명의 문화예술인이 발표한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참여 예술인 명단인 일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려진 극단 고래의 이해성 대표가 작·연출을 맡은 연극 '고래햄릿'의 프레스리허설이 12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나루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렸다. 이 선언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지목된 사항으로, 배우 송강호, 김혜수, 박해일과 박찬욱, 김지운 감독 등이 포함되어 있다.
 
   
▲ 연극 '고래햄릿'의 프레스리허설이 12일 열린 가운데, 정원조 배우가 '햄릿'을 연기하고 있다.
 
'고래햄릿'은 극단 고래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해성 작·연출은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도 그 안에서 극단 고래만의 색을 내기 위해 고심했다"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복수가 아닌, 이 세상에 대한 제대로 된 심판이다. 그 심판은 달리 말해 '검열'의 방식도, 너와 나를 가르는 좌익과 우익의 편협성도 아닌 바로 대의를 갖고 바라본 세상이다. 그러므로 이해성의 '유령(선왕)'은 절대 복수를 부르짖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연극은 12일부터 16일까지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20일부터 23일까지는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특히 대학로 공연은 '권리장전(權利長戰) 2016 - 검열각하' 프로젝트의 하나로 열린다. 이 프로젝트는 21개 극단, 300여 명의 연극인이 참여해 22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해 이달 말까지 매주 다양한 공연을 통해 검열 이슈에 대한 '발언 창구'가 되고 있다. 프레스리허설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참석한 이해성 작·연출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 연극 '고래햄릿'의 이해성 작·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프레스리허설을 마쳤는데, 소감을 말해 달라.
ㄴ 새로운 공연을 새로운 공간에서 올리면 두려움 반 설렘 반이다. 본 공연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연습인데 관객분들이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극단 고래의 작품 '빨간시', '살' 등을 보면 등장인물들의 '욕망'이라는 화두를 보여준다. '욕망'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ㄴ 약간의 오해가 있다. 욕망이나 고통을 극단 고래 작품에서 많이 다루는 편이다. 하지만 욕망을 '악'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욕망은 이 세상이 굴러가고 흘러가는 주동력이라고 본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누구나 욕망이 있는데, 그 욕망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어떠한 일을 추진하거나 생명을 키워나가는 힘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다른 생명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는데도 욕망이 쓰인다고 본다. 그중 보통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욕망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각자의 '욕망'이 각자의 '정의'에도 부합할 수 있다고 보는가?
ㄴ 서로의 가치관이나 나라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그 욕망이 정의에 서 있는지, 불의에 서 있는지는 50대 50이라고 본다. 사회적 기준선은 약속 때문에 정해져 있을 것인데, 그 기준선에서 정의인지 불의인지는 스스로 알 것이라고 본다. 이것도 정확하게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각자 옳은 정의를 고수하면서 산다. 큰 틀에서 서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각자 정의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두 개의 정의가 평행을 달릴 수 있다'를 전제로, 이것이 아름답게 조화되는 방법은 없을까?
ㄴ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같다. '호레이쇼'의 대사 중에 "똑같지 않아"며, "날카롭게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가 있다. 시대에 따라 상처를 받고, 나를 짓누르는 힘이 세지는 것을 느낀다면, 여러 경우에서 그 지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기존의 가치가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지점은 앞서 말한 대로 본인이 다 알고 있다고 본다.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바라보고 그 기준을 잡는 태도가 나의 태도와 달라지기 때문에 조화가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 두 가지 정의가 평행선을 달린다는 게 위험한 것 같다. "나는 정의고, 너는 불의야"라는 양비론에 빠진다면, 위험한 사회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 '햄릿'(위, 정원조)이 '클로디어스'(아래, 김동완)를 죽이려 한다.
 
'검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자기검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같다. 선왕은 '햄릿'에게 복수가 아닌 심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인가?
ㄴ 스스로 더 날카롭게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힘이 필요하다. 불의로 빠져버린 거짓된 내 안의 욕망,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욕망을 발견해, 그것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도려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햄릿'이 마지막에 '클로디어스'를 찌르지 못하는 것은 정의 판단의 유보가 아니라, 욕망의 일종인 복수심을 극복해내는 과정이라고 봤다. 역사가 암흑의 세계에 빠진 이유는 분노에 가까운 욕망인 '복수' 때문이다. 본능의 욕망을 극복하고, 사회적 합의의 판단을 통해 '햄릿'이 그러한 지점을 극복하고, 고양된 지점으로 가는 게 있다고 본다.
 
'햄릿'은 중간에 복수심에 시달린다. 동시에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그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았다. 신, 선배, 아버지가 말했든 간에 '심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올바른 길을 찾으라는 메타포다. 그러나 그대로 살지 못하고, 욕망에 휘둘린다. 복수심도 그중에 하나다. '햄릿'은 온 사방을 폐허로 만들고 난 이후에, '오필리어'의 죽음을 통해 냉소주의를 발견한다. 그리고 다시 복수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마치 '햄릿'의 성장으로 보인다. 그렇게 고양된 한순간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욕정에 휘말리고 사라져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다. 
 
작품을 보면 '햄릿'이 'Girls Do Not Need A Prince(여자는 왕자를 원하지 않는다)' 문구를 소개하고, '오필리어'가 '햄릿'이 원해서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됐나?
ㄴ '메갈리아4'의 티셔츠 문구 같은 경우는 내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다. 작품을 쓰면서, '어떤 쪽으로 가치 기준을 둬서 만들어야겠다'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문학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동시대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것이 정의고, 불의다'라는 내 가치보다 이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메타포가 대사 행간에 들어있다.
 
   
 
 
2015년 5월 1일 594명의 문화예술인이 발표한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참여 예술인 명단인 일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본인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영광이다. (웃음) 작년부터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름이 거론된 것도 이미 들어서, 그다지 놀랍지가 않다. 우리 연극인 내에서는 '블랙리스트'를 공공연히 알고 있었고, 이제 물증이 나온 상태다. 그러던지 말든지, 연극만 잘 올리면 좋겠다.
 
이 작품도 '권리장전(權利長戰) 2016 - 검열각하' 공연에 포함되어 연우소극장에서도 올라간다. 이 작품을 '검열'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니고, 이 사회에서 '검열'이 이뤄지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햄릿'을 통해 실어보고 싶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옳고 틀린 것인지, 개개인의 사유가 일어나고 싶은 마음에 작품을 하게 됐다. 내 가치 기준이 들어있는 것은 없다고 본다.
 
작품을 보면 극장의 공공성과 예술 표현의 자유가 부딪치는 장면이 나온다. 검열의 사회적 합의 기준선은 어떻게 보나?
ㄴ 우리가 검열 사태를 거치면서, 언어 선택이 많이 왜곡된다. 이것은 공공성과 예술성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개념 인식의 차이다. 공공성의 규정을 통해 '일부가 싫어하니 예술을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면, 정말 잘못된 개념이다. 예술은 소수든 다수든, 어떤 사람의 주장이든 간에 논란을 만들어 그 사회적 논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합의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 논란을 막는 것이 이 사회를 망치는 것이다.
 
국가가 규정한 공공성을 통해 "맞냐 아니냐"가 아니다. 공공성은 관객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국민은 어떤 예술이라도 향유할 권리가 있다. 그 판단은 시민인 관객을 하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해온 것들이다. '이 작품은 포르노다. 문학적이다. 정치적이다'하는 모든 것을 국민이 하는 것이다. 정부가 하니까 하지 말라는 것은 틀려먹은 것이다. 예술에 대한 개념이 틀린 것이다.
 
극단 고래는 연습 전에 '108배'를 한다. 왜 하는가?
ㄴ 그래서 '108 고래'라고 하는데. 명상하는 것으로, 내가 가진 연극 메소드 중 하나다. 종교적 의미는 하나도 없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적당한 텐션을 가장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연극 메소드다. 정말 좋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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