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진 '햄릿'에 대한 오해 혹은 고정관념에 대하여

   
▲ 지난 7월 12일부터 8월 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한국 연극계 거장들의 연극 '햄릿' ⓒ 신시컴퍼니

[문화뉴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올해엔 유난히도 많은 '햄릿'들이 쏟아져 나왔다. 셰익스피어의 무수한 작품들 중 희곡 '햄릿'은 올해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무대화 작업을 거친 작품 중 하나다.

지난 4월 서울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연기상을 수상한 극단 백수광부의 '햄릿아비', 지난 7월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이자 한국 연극계 거장들이 열연으로 채웠던 연극 '햄릿', 어린 해골과 광대 요릭의 이야기를 추가해 각색한 연극 '햄릿 - 더 플레이', 햄릿과 줄리엣의 모티브를 가져와 새로운 비극적 인물을 탄생시킨 연극 '함익'. 그리고 지난 14일에 막을 내린 타이거 릴리스와 덴마크 리퍼블리크 씨어터의 음악극 '햄릿'까지.

이외에도 변주된 '햄릿'들이 무수히 쏟아지는 가운데, 원작 '햄릿'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자리 잡은 '햄릿'. 익숙함에 매몰돼 간과하기 쉬웠던 이 작품에 대한 오해 혹은 고정관념들 세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 지난 8월 2일부터 10월 16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 연극 '햄릿 - 더 플레이' ⓒ 문화뉴스 DB

1. 햄릿은 우유부단하다?
우유부단함의 대명사, 고뇌하는 인간의 표상으로 불리는 햄릿. 돌아가신 아버지의 복수를 갚고자 하는 햄릿은 고독한 독백 속에서 클로디어스에 대한 분노와 거트루드에 대한 원망만 되뇐 채 끝까지 특별한 복수를 완성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혹자들은 말한다. 햄릿은 절대 우유부단한 인물이 아니라고 말이다. 연극을 통해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자 했던 신중한 결단력, 영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클로디어스의 칙서 내용을 알게 되자 배신자인 두 친구 로젠크라츠, 길든스턴을 곧바로 죽게 만드는 명석함과 신속함.

그리고 또 한 장면, 햄릿의 우유부단함을 가장 짙게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 오히려 햄릿의 치밀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클로디어스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가운데 햄릿은 충분히 그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회개 기도를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클로디어스가 천국에 갈 수도 있기 때문에 햄릿은 그가 악행을 저지르고 있을 때 죽이리라 다짐한다. 이 부분은 현세에서 뿐 아니라, 사후 세계에서까지도 클로디어스의 고통이 지속되길 바라는 햄릿의 지독하고도 치밀한 계산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라 볼 수 있다.

 

   
▲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 연극 '함익' ⓒ 세종문화회관

2. 햄릿이 만난 혼령은 진짜?
햄릿의 복수와 고뇌는 혼령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죽은 선왕이라고 얘기하는 혼령은 햄릿에게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반드시 이 죽음에 대해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등의 얘기를 전한다.

복수의 실마리를 제공한 이 존재가 실은 햄릿의 정신 속에서 창조된 존재일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언급한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햄릿은 극중 내내 어머니 거트루드를 향해 정숙하지 못한 여인, 곧 음탕한 여인이라 비난한다. 프로이트는 어머니를 향한 햄릿의 욕망이 거꾸로 표현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욕망을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혼령은 어쩌면 원한에 사무친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욕망이 부른 자신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공연된 타이거 릴리스 & 덴마크 리퍼블리크 씨어터의 음악극 '햄릿' ⓒ LG아트센터

3. '햄릿'은 원작이 따로 있다?
덴마크 헬싱괴르(Helsingor)의 크론보르 성(Kronborg Castle)은 햄릿이 살던 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 북쪽 건물 입구 근처에는 셰익스피어의 흉상이 있는데, 이 흉상 아래의 소개 글에는 "셰익스피어는 덴마크 설화에 나오는 암렛(Amleth) 왕자의 이름의 마지막 글자 'H'를 앞으로 옮겨 햄릿(Hamlet)을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1601년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햄릿'은 사실 원화(原話)가 있었다는 것이다. 1514년 덴마크 역사가인 삭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의 설화집 '덴마크사'에는 햄릿의 원화로 보이는 암렛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리고 이미 1589년에는 런던에서 햄릿극이 상연됐다는 것이다. 작자는 키드로 추정되며, 작품은 보통 '원(原)햄릿'이라 불렀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두 달 남짓 남은 2016년, 여전히 '햄릿'의 무대화 소식은 끊임없다. 막 폐막한 '함익'과 '햄릿 - 더 플레이', 음악극 '햄릿'에 이어, 오는 20일에 개막하는 극단 고래의 '고래햄릿', 31일 2016 종로구우수연극전에서 다시 선보여지는 '햄릿아비', 다음 달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셰익스피어 인 발레 1 - 크레이지 햄릿' 등.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작품 '햄릿'의 비결이자, 앞으로도 계속 생명력을 가진 작품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있다. '햄릿'에 대한 불변의 절대적 해석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햄릿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여러 창작자들로 하여금 햄릿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재창작하고 싶다는 욕구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원작을 보다 충실하게, 더불어 고정관념에서는 벗어나서 읽는 것이 햄릿을 계속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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