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브로드웨이에 충격을 던진 작품이 한국에서도 그 날개를 펼쳤다.

얼마 전 공연 연장을 확정하며 11월 20일까지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되는 연극 '블랙버드'는 충격적인 설정을 토대로 해서 관객의 기억에서 쉽게 잊히기 힘든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레 관객의 마음에 의문을 만든다.

공상집단뚱딴지의 문삼화 연출이 연출을 맡은 연극 '블랙버드'는 배우 조재현이 연기하는 '레이'와 옥자현, 채수빈 두 여배우가 연기하는 '우나'가 등장하는 2인극이다. 콘테이너 박스에 만든 사무실에서 리얼타임으로 벌어지는 90분간의 대화를 통해 관객은 둘이 가진 각자의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옥자현과 채수빈은 서로 상당히 다른 느낌의 '우나'를 연기한다. '구르믈그린달빛'에 출연해 눈길을 끈 채수빈은 아직도 15년 전에서 시간이 멈춰진 듯한 느낌의 순수한 모습이 엿보인다면, 옥자현의 '우나'는 더 독하고, 괴로운 삶을 보내오며 감정이 응축된 느낌을 선보인다.

※본 기사는 연극 '블랙버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레이'는 소아성애를 가진 인물로 '우나'가 12살 때 성관계를 맺어 3년 8개월을 감옥에서 살다 나온 뒤 '피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우나'는 우연히 그를 발견해 15년 만에 다시 찾아와 만나게 되고, 이들은 목적도 의미도 알 수 없는 만남을 갖게 된다.

연극 '블랙버드'는 다분히 상징적인 작품이다.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벗어나 상황만이 놓이고, 관객은 둘의 대화를 통해 조금 전에 일어난 일, 과거에 일어난 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하게 된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사무실로 설정된 무대는 천장을 낮게 만드는 과감한 시도를 통해 둘의 이야기를 더욱더 좁은 사무실 안에 꽉 채우며 동시에 답답함을 끌어낸다.

무대의 좌우가 뚜렷이 구분된 것도 쉽게 보이는 상징이다. 새로운 삶을 사는 레이의 현재는 좌측의 정돈된 캐비넷에 있고(그가 경비임을 암시하는 듯한 것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반면 돼지우리 같은 쓰레기더미는 우측에 있다. 레이와 우나는 좌측과 우측을 계속 움직이며 쓰레기 더미 속 과거를 헤집어내서 후반부엔 사무실 자체를 어지럽히고, 키스한다.

극의 전개를 보면 우나는 레이에게 현재 상황을 꼬치꼬치 캐묻고, 과거와 연관 지어 그가 잊고 있던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레이는 우나로 인해 닫아두고 싶던 기억을 열어버리고, 두 사람이 가진 진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처음에는 우나에게 몰입하며 레이의 비겁함에 분노하게 되다가도 종국에는 확실한 사실 외에는 대체 그들의 이야기 중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생각하게 된다.

레이는 정말 소아성애자였을까? 지금도 그런 것일까? 레이는 왜 경비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을까? 아니 정말 거짓말이긴 한 걸까? 경비라면 왜 가족들이 그를 찾아왔을까? 당연히 늦을 수도 있을 텐데. 애초에 가족은 정말 실존하는 것일까? 전화를 한 사람도, 피터를 부른 사람도 그 여자아이라면?

조재현은 프레스콜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레이의 모습을 밝혔지만, 이미 관객의 시각에서 보이는 레이는 그 무엇도 진실일 수도, 아닐 수 있다.

마지막에 찾아온 레이의 딸(정확히는 친딸은 아니지만, 딸로 보이는)이 마치 12살의 우나를 떠올리게 하고, 레이는 또다시 두려움에 떨며 우나를 밀쳐내고 간다. 이는 오프닝 때 우나의 대사에서 레이의 회사가 마치 15년 전의 여관과 비슷해 보인다는 대사와 겹쳐진다. 이번의 일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든 관계를 맺게 되고, 그로 인해 좋고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레이가 충동적으로 펼친 몇 번의 날갯짓은 그와 우나, 그들의 가족과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친 커다란 태풍으로 변했고, 앞으로도 미칠 것이다.

연극 '블랙버드'를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런 둘의 관계, 인간의 기억에 대한 진실 같은 철학적인 주제로 볼 수도 있고, 아동성범죄가 남긴 파장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분히 27세의 '우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후의 일은 관객에게 남겨진 몫이 된다. 극 중에서 나온 이야기, 레이, 우나라는 두 명의 인물에 관한 모든 것이 관객이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게 연극 '블랙버드'의 재미가 아닐까.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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