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오동 전투' 실제 역사 기반으로 만들어졌나?
역사 속에 기록된 '봉오동 전투' 내용은?

출처: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쇼박스

[문화뉴스 MHN 오지현 기자] '나랏말싸미', '봉오동전투' 등 한국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연이어 개봉되며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영화 줄거리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전개되는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24일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는 송강호, 박해일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했지만,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역사를 왜곡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수많은 관객들을 모으는 데에는 어려움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SNS가 점차 활성화되면서 영화를 본 개인의 소감이나 느낌 등이 수시로 공유되는 상황 속에서 '나랏말싸미'는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다른 '한글 창제 과정'의 스토리를 담으면서 대중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이다.

'나랏말싸미'의 역사왜곡 논란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세종이 단독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 '신미 스님'의 주도로 한글이 창제된 것처럼 묘사된 것이며, 두 번째는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글자 '한글'이 '산스크리트어' 등과 같은 다른 문자를 참고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전문가들은 "대중영화의 특성상, 청소년들이나 외국인들은 '나랏말싸미'의 스토리를 실제 역사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경고했다.

 

출처: 쇼박스, '봉오동 전투' 스틸컷

한글 창제의 비하인드스토리를 담은 '나랏말싸미'가 대중들과 전문가들에게 기대 이하의 평을 받고 있는 가운데, 후속 역사영화 '봉오동 전투'가 실제 '봉오동 전투'를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대중의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시 홍범도 장군의 부대는 신식 총기로 무장을 했지만, 기관총과 같은 일본군과 비교하면 화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군을 격퇴시키기 위한 군사전략은 필수적이었다. 때문에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이 분지 지형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총 4개의 중대를 편성했고, 각 중대를 포위하는 형태로 전력을 배치했다.

 

출처: 쇼박스, '봉오동 전투' 스틸컷

'봉오동 전투'의 핵심 전략은 일본군을 독립군이 대기하고 있는 봉오동까지 어떻게 유인하느냐였다. 마침, 대한신민단의 독립군이 삼둔자에서 일본군 추격대를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였고, 일본군은 이를 핑계로 함경북도에 주둔하던 제19사단에 '월강추격대대'를 편성하여 직접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 공격에 나섰다.

일본군의 유인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시점에서,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산지에 매복하며 최적의 공격 시점을 기다렸다.

 

출처: 쇼박스, '봉오동 전투' 스틸컷

당시 야스카와 지로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추격대대가 봉오동에 다다르자, 홍범도 장군은 일제히 일본군을 향한 공격을 감행했다.

삼면에서 공격해오는 독립군의 공격에 일본군은 수많은 병력이 사상을 당하며 퇴각했고,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독립군들은 사기가 크게 높아지며 더욱 활발한 독립전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7일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줄거리가 전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에 불만을 품고 경제 보복을 단행,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등의 정책을 펼치자 대한민국 내의 반일 감정은 극에 달해있는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상황 속에서, '봉오동 전투'가 흥행을 거둘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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