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오현경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화뉴스] "60년이 그렇게 기념할 건지 모르겠다. 오래 사는 게 뭐가 기념이겠나."

 
올해로 연기 인생 60년을 맞이한 연극계 거목 배우 오현경. 그가 다시 한 번 대학로 무대에 오른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오현경 배우는 1966년 제3회 동아연극상 남우조연상, 1970년 제4회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대상, 1992년 KBS 연기대상 대상, 2009년 제2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 2013년 보관문화훈장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는 한국연극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출연하며 오직 관객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연기를 발전시켜 온 배우 오현경이 참여한 연극은 '언더스터디'다. 연극 '언더스터디'는 "배우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연극의 본질과 그와 닮아 있는 우리의 삶을 비춰 그렸다. '언더스터디'는 주연 배우가 무대에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를 의미하다.
 
작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현경이 연기하는 '오선생'은 대극장에서 '베니스의 상인' 중 '샤일록'을 맡은 캐릭터다. '오선생'은 무대에서 60년을 보낸 노배우로, 분장실에선 '오선생'의 '언더스터디'인 '정환'(류태호)이 모니터를 본다. '정환'도 20년을 연극 무대에서 보낸 배우이지만, '대타'인 언더스터디를 맡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선생'은 자신의 병을 알고, 자신의 배역을 '정환'에게 물려줄 것을 결심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연극 '언더스터디'는 지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서울대회에 참가하며 낭독공연을 거친 후, 11월 4일부터 1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공연을 앞두고 2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예술가의 집에서 공개연습과 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오현경 배우를 비롯해 극단 '풍등'의 상임연출인 송미숙 연출, 전형재 작가, '정환' 역의 류태호 배우 등이 참석했다. 배우들과 연출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미리 살펴본다.
 

▲ 21일 오후 연극 '언더스터디'의 연습 시연이 진행됐다.

 
브로셔엔 연기인생 60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어느 자료에선 61주년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정보가 정확한가?
ㄴ 오현경 : 현장예술 하는 사람은 데뷔가 애매하다. 음악이나 무용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했기 때문이다. 내가 1955년 고등학생 때, 무대 경연대회 나가서 받은 상패가 있다. 증명된 그때부터 했는데, 만으로 하면 60년 될 것이다.

극중극 '베니스의 상인'이나 '리어 왕' 등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 많이 들어간 이유는?
ㄴ 전형재 :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저작권이 없어서 인용하기 편하다. 크게 작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다. 내가 쓰고자 하는 작품에 부합되는 이야기가 많다. 올해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이긴 하지만, 특별히 의식하고 넣진 않았다.
 
오현경 : 나한테는 의미를 이야기했는데,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 같다. (웃음) 창작극이지만, '베니스의 상인'을 넣으면 번역극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이 작품은 노배우뿐 아니라 배우의 인생을 쭉 그려놓은 작품이다. 그중 노배우의 은퇴를 중심으로 한다. 그 인생 과정을 그리다 보니, 셰익스피어의 작품 명대사를 인용한 게 많다. 왜 나한테 그렇게 말했는데, 대답은 다르게 했나. (웃음)
 
작품을 연기한 소감을 들려 달라.
ㄴ 류태호 : 오현경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고, 앞으로도 건강하셔야 하는 분이다. 같이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배우와 무대에 관한 이야기여서,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하게 됐다. 연극을 하는 저나 후학들이나 도움이 되도록 했다. 멋있는 말도 많고, 아픔도 많은 힘든 작품이지만, 선생님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 류태호 배우가 출연 소감을 남기고 있다.
 
6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연기자로 살면서 느낀 장점이 있다면?
ㄴ 오현경 :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내 인생 말고, 다른 인생을 무대에서 한 번 창조해내는 것이 있다. 내가 살아온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른 작품에 나오는 사람의 인생을 재창조해서 내보낸다. 감동 내지는 공감을 갖는 장점이 있다.

"평생을 무대에서 보낸 노배우의 아름다운 퇴장을 그린다"라는 글귀가 보도자료에 있다. 본인도 그런 꿈을 꾸는가?
ㄴ 오현경 : 대선배 중에 돌아가신 이해랑 선생님이 계신다. 그분이 남긴 유명한 명언으로 "우리는 정년퇴직이 없다"가 있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은퇴 공연'이라는 말은 어색하다. 건방지게 무슨 은퇴인가. 젊은 사람이 은퇴한다는 것은 도중하차지, 은퇴가 아니다. 우리 연극인은 생명이 붙고, 말이 나올 수 있는 한 무대에 서는데, 꼭 주인공을 할 필요가 없다. 후배들과 어울려서 출연하면 된다.
 
작품을 연출하게 된 소감을 전해 달라.
ㄴ 송미숙 : 같이 무대에서 많이 호흡한 배우들이 만났는데, 연극배우를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을 하는 배우들에게 이 작품을 선사하고 싶었다. 연극에 관한 이야기여서, 일반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했다. 삶의 형태는 다 똑같아서, 관객분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감동을 할 것이라 본다.
 
이 작품에서 '오선생'과 '정환'은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한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정환'은 '리어왕'의 '바보 광대'처럼 광야를 헤맨다. '바보 광대'는 '리어'를 따라다니며, 친구처럼 지낸다. 선생님을 지켜드리고, 존경하기 때문에 마지막 무대를 서게 하고 싶은 염원이 있다. '오선생'은 마지막 공연을 언더스터디로 있는 후배에게 넘겨주고 싶은 사랑의 소통을 보여준다. 이것이 작품 목표인데,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 송미숙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언더스터디'의 개념을 모르는 이들이 있을 것 같다.
ㄴ 오현경 : 요새는 더블 캐스팅도 있고 트리플 캐스팅도 있는데, 언더스터디는 초보자가 아니다. 예전에 뮤지컬 '캣츠'를 봤는데, 갑자기 오늘은 '메인 캐스트'가 아니고 '언더스터디'가 한다고 안내가 나왔다. 외국 현지에선 처음에 "에" 그랬는데, 다들 그러려니 하고 본다. 원래 캐스트가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언더스터디 실력이 대단히 좋았다. 며칠 후에 기사를 봤는데, '스타 탄생'이라는 말이 나왔다. 실력은 쌓였지만, 기회가 없어서 나오지 못한 것이었다.
 
일화도 있다. 한 선생이 '언더스터디'를 배려하기 위해, 일부러 힘들어서 도중에 쉬게 해달라고 해서 '언더스터디'가 무대에 오른 미담도 있다. '언더스터디' 개념이 익숙지 않은 관객이 있을 텐데, 어느 정도 수준이 '메인 캐스트'보다 더 나은데 매스컴에 홍보만 안 될 뿐이었다. 딱 관객에게 보여줘서 깜짝 놀라는 때도 있다.
 
류태호 : '언더스터디'는 해 본 적이 없다. 선생님 말씀처럼 대한민국에서 언더스터디는 잘 안 한다. 작품은 '언더스터디'를 소재로 했는데, 결국 선생님을 통해 본 연극관이나 배우의 삶이 녹아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가 좋다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생을 아름답게 그리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 배우의 삶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의미들을 많은 사람이 표현하고 있지만, 관객들이 보고 어떤 감동을 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배우를 본격적으로 내세우는 작품을 요새 만나기 힘들다. 표현이 위험하지만, 템포도 다른 연극에 비해 느릴 수도 있다. 여기에 드라마틱한 테크닉이 있는 연극도 아니다. 오로지 선생님 연기와 우리 배우들의 앙상블로 하는 공연이라 염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연을 언제 해보겠는가?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서, 반드시 잘 될 것 같다.
 
   
▲ 전형재 작가가 작품의 집필 의도를 말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집필하게 됐나?
ㄴ 전형재 : 나는 전문 작가가 아니고 연기를 20년 넘게 해왔다. 사실 배우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오래전에 있었다. 이 글을 쓴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김운하 배우 때문이다. 사실 김운하 배우를 무대에서 본 적도 없는데, 너무나 허무하게 돌아갔다고 생각해 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수입도 별로 없고, 가난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이라고 하는데, 없으면 만들면 된다.
 
멋있고 아름다운 배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오현경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그것을 가지고 큰 얼개를 만들었다. 희곡 작품 속 몇 가지 이야기는 오 선생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신 이야기를 그대로 대사화했다. 희곡의 논리와 얼개를 맞춘 것이다. 오현경 선생님이 몇몇 대사를 해주신 것을 메모해 그래도 넣었다. '정환'에게 한 대사가 있다. "스타가 되고, 돈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무대에서 열심히 해라. 그러면 언젠가 너의 길이 열리지 않겠니"라는 약간의 미사여구를 넣어서 한 것인데, 내가 100% 창작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가?
ㄴ 오현경 : '베니스의 상인' 공연을 할 때 송미숙 연출이 분장실에서 후배 배우를 데려와 인사를 시켰는데, 전형재 작가였다. 대학원 논문을 쓸 때였는데, 전형재 작가가 '배우 오현경 연구'를 한다고 했다. 나에 관한 연구 논문을 쓰는데, 2~3달을 붙어 있었다. 하도 대화를 많이 해서 새삼스럽지 않다. 작품을 받았을 때, 그냥 우리 이야기였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이야기니까 인물을 분석할 때, 크게 힘을 안 쓰고 자연스럽게 했다.
 
   
▲ 오현경 배우(왼쪽)가 작품의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오현경 : 이 연극 대본이 나한테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먼저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송미숙 연출은 우리 극단 연구생으로 왔을 때 봤다. 차유경 씨는 나와 '피가로의 결혼'에서 상대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언더스터디' 역할의 류태호 배우는 처음이었다. 정상철 배우는 단역 배우를 하실 분이 아니다. 연극쟁이 이야기여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참여하겠다고 해서 작품을 하게 됐다. 대사도 별로 없는데, 배역을 보고 해서 감사하다.
 
다는 아니어도 연출과 관계된 분들도 많고, 몇 분은 연극인 '2세'들이다. 후배들의 아들들도 몇 있어서,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 젊은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도 만나는데, 제일 많이 어린애가 '분장사' 친구(이다혜)다. 내가 저 친구 할아버지 나이다. "할아버지 계시면, 연세가 어떻게 되니"라고 물었더니 "36년생이에요"라고 답해서 "동갑이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같이하는 것이다. 고루고루 섞여 있다. (웃음)
 
내가 최근에 단역을 하나 했다. 그때도 힘이 들기도 했는데, 앞으로 큰 역할은 이게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은퇴가 아니라 작은 역할을 해서 후배들과 어울려야 할 것 같다. 큰 역할에 욕심이 많아도 어려울 것 같다. 요즘은 생각이 빨리 전환도 안 될 때가 있다. 이 작품의 대본이 요즘 말로 튄다. 금방금방 다른 대화가 넘어간다. 듣는 사람은 간결해서 좋은데, 배우는 순서가 바뀔까 봐 신경도 쓰인다.
 
하다가 딱딱 넘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늘 하는 말인데, 같은 대사를 늘 반복하다가 우리가 하는 그대로 나오면 스스로 감동이 생긴다. 과연 객석에서 연극을 모르는 분들이 이걸 보고 우리와 똑같은 감정이 올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스태프분들한테 "감동이 오냐"라고 물으면 "옵니다"라고 하는데, 인생 이야기니까 같은 감정이 들 것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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