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함세덕 작 고선웅 연출의 산허구리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함세덕(咸世德, 1915~1950)은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다. 1936년 <조선문학>에 단막극 '산허구리'를 발표 하였고, 1939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연극제에 '동승' 으로 참가했다. 194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해연(海燕)'이 당선되었고, 이후 '낙화암', 무의도기행(無衣島紀行)' 등을 발표하면서 극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 나갔다.

주로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어민들의 생(生)과 사(死), 현실과 꿈을 그렸는데, 어민들의 생활과 그들의 언어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穿鑿)을 통해 낭만적인 사실주의극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때 친일 성향의 작품을 쓰기도 했으나, 해방 직후 월북했고 6·25 전쟁 중 신촌에서 폭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작가적 역량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으나,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 조치와 함께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면서 연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함세덕의 작품은 주제나 사상 면에서 세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는데 리얼리즘 극에서 낭만주의 극으로 다시 사회적 리얼리즘 극으로 바뀌었다. 처녀작 '산허구리'는 유치진의 '토막'과 유사한 배경과 구조를 지닌 작품으로 서해안의 조그만 어촌의 생활을 통해 일제 강점기하 궁핍한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아일랜드의 작가 싱그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과도 유사한 면을 보인다. '무의도 기행' 역시 젊은 소학교 교원의 눈을 통해 어촌의 비극적 삶을 그린 것으로, 이 작품도 싱그의 영향이 강하다. 그 후 '감자와 쪽제비와 여교원'을 창작하여 식민지 수탈 정책을 노골적으로 고발하였으나 이로 인해 검열에서 전면 삭제 당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을 전후하여 그의 작품 취향은 낭만주의로 바뀌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사실을 밑에 깔고 낭만을 내세우는 양쪽의 조화를 의도하였다. '동승'은 이 계열의 첫 작품에 해당되며, '해연', '낙화암', '에밀레종' 등도 모두 이 계열에 속하는 것들이다.

 

8·15 해방 후 조선연극동맹에 참여하여 '고목', '기미년 3월 1일'을 통해 격변기의 사회상황 속에서 좌익 극으로서의 강한 지향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1947년 4월 <문학>에 발표된 '고목은 대표적인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극으로 그의 이념적 성향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전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악덕 지주의 몰락을 통해 봉건 잔재와 일제의 잔재를 타파하고 새로운 민족 국가를 건설하자는 내용으로, 악덕 지주의 집 뒤뜰에 있는 고목을 극적인 상징으로 제시함으로써 한정된 시간 내에 벌어지는 갈등과 전개를 치밀한 구성으로 엮어나간 걸작으로 평가된다.

무대는 상수 쪽에 초가집이 있다. 단칸방에 부엌, 아궁이, 장독대, 시래기를 널도록 만든 통나무 걸이, 앞마당의 개울처럼 된 하수구, 하수 쪽의 언덕길로 해서 포구로 이어지고, 극장 좌우의 2층 객석 테라스 겸 통로가 등퇴장 로로 사용된다. 망태, 삼태기에 조개가 잔뜩 담겨져 있고, 무대 앞 쪽에 조개껍질이 잔뜩 깔려져 있다.

   
 

연극은 도입에 이 집 딸 복실이가 방에서 나와 부엌에서 소금그릇을 들고 나와 항아리에서 물 한 바가지를 퍼서 무대 앞 쪽 하수구에 서서 소금으로 이를 닦는다. 곧이어 나이든 어머니가 나와 항아리에서 물을 퍼 마신다. 이 연극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하루 동안의 한 가난한 바닷가 어부가족의 이야기다. 먹고살기 위해 목숨을 건 바다 일을 해야 하는 어촌 사람들, 그러면서도 도저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연극을 통해 하나하나 펼쳐진다. 어촌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을 수밖에 없고, 고기를 잡다가 죽으면서도 살기위해, 가난을 면하기 위해 다시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극에 그려낸다.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죽은 사위와 큰 아들. 상어에 다리를 물려 다리가 끊겨버린 아버지. 소식이 끊긴 작은 아들 복조. 10년 전 과부가 된 이집 딸이 살길을 찾다가 아기를 낳아가지고 등장하고, 막내는 배를 탈 나이가 아니 되어 갯벌에서 조개를 캐다가 살림에 보탠다.

어부가족의 이야기는 비단 이 가족 뿐 아니라, 바다가 인간에게 끼친 영향을 장면마다 그려낸다. 바다는 그저 배경이 아니라, 한 인간, 나아가서는 어민 전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거대한 실체이고, 이 작품의 주요 갈등요소다. 물론 이웃에 사는 이 가족의 사돈 영감이 익살스레 등장하고, 멀쩡한 이웃 사내들이 지나다니지만, 모진 생활을 견뎌온 이 가족의 어머니는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어부아들의 죽음으로 결국 실성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대단원에서 상수 쪽 2층 테라스의 검은 휘장이 열리면 엄청난 농무와 함께 뱃전이 무대로 돌출되면서 기를 든 아들 복조의 모습과 함께 풍악과 합창으로 어부들의 발전적 미래가 예측되도록 연출되지만, 이 가족의 비극은 관객의 가슴에 이미 깊이 스며들고 말았음을 어쩌랴?

   
 

우상전, 김용선, 정재진, 박윤희, 백익남, 황순미, 양영준, 정혜선, 이기현, 박재철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설정과 호연 그리고 열연이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키지만 내용전달 면에서 미흡함을 느끼게 됨은 어찌된 연유일까? 게다가 대단원에서 리얼리즘 연극과는 상관없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의 극의 마무리는 전체적인 극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느낌이 듦은 어찌된 일인가?

미술 신선희, 의상 황연희, 조명 류백희, 소품 이경표, 분장 장경숙 등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재)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함세덕 작, 고선웅 연출의 <산허구리>를 기억에 남을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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