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선정작품 극단 죽죽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낙형 각색 연출의 맥베드-이것은 또 하나의 굿이다.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최초의 <맥베스> 영화는 1948년에 명배우 오손 웰즈(Orson Welles , 1915~1985) 가 감독한 <맥베스>이다.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하고 셰익스피어 원작의 줄거리를 따랐으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로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으나, 상징성과 기법에서 현재는 좋은 영화로 평가를 받는다.

1971년에 제작된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1933~). 감독의 <맥베스>는 세 명의 마녀가 아니라, 수많은 마녀와 마녀의 나신, 그리고 레이디 맥베스까지 몽유병 상태에서 나체로 출연을 시키는 등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은 영화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단 신협이 1950년대 초반 6 25 동란기간에 <햄릿> <오셀로> <맥베스>를 공연했다. <맥베스(Macbeth)>는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주인공 <맥베스>는 국왕 덩컨(Duncan)의 사촌으로 귀족이며, 반란군을 진압하는 등 많은 전투에서 공적을 쌓은 훌륭한 장군이다. 인간성이 풍부하지만 연약한 성격에다 강렬한 시적 감수성을 지닌 그는 어느 날, 장차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리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엉뚱한 야망을 품는다. 그의 아내 역시 그에게 왕이 되라고 부추긴다.

그는 덩컨 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점점 많은 사람을 죽이는 폭군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맥베스 부부는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으로 공포와 불면의 나날을 보낸다. 마침내 부인은 몽유병의 발작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맥베스도 왕자 맬컴(Malcolm)과 함께 잉글랜드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쳐들어 온 맥더프(Macduff)의 칼을 맞고 죽는다. 권력의 욕망이 비극적 종말을 불러온 것이다. 이제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왕자 맬컴이 왕위에 오르고 스코틀랜드는 질서가 회복되어 안정을 되찾는 등 모든 비정상적인 것들이 바로 잡혀 제자리를 찾게 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짧은 작품이며, 사건이 신속하게 집약적으로 전개되는 특성이 있다. 작품의 구성을 보면 부차적 사건(sub-plot)이 없고 플롯은 오로지 주인공 <맥베스>에게 집중되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주의는 <맥베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극은 주인공 한 사람에 대한 분석 이상의 그 무엇을 제공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맥베스>의 왕위 찬탈 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마녀들의 예언이 곧장 현실로 이루어지는 등 사건이 속도감 있게 집약적으로 전개되어 관객에게 강렬하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비극의 구조는 3부로 되어 있다. 제1부는 극의 갈등을 일으킬 사건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제시부분(Exposition)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짧은 소동과 혼잡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화제에만 올라 관객을 긴장시킨다. 제2부는 갈등의 시초·전개·기복을 취급하는데 이것을 갈등부분(Conflict)이라 한다. 여기에서는 사건이 생장하고 절정(Climax)을 지나 전환점에 달한다. 제3부는 갈등의 결말이다. 여기에 이르면 흔히 전쟁이 벌어지고 사건이 자연스런 파국적 결말을 맞게 된다. 이것을 대단원(Catastrophe)이라 한다. <맥베스>는 이러한 전형적인 셰익스피어 비극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김낙형 연출가는 세종대학교 출신으로 연출과 극작가와 배우 전천후를 아우르는 연극인이다. 세종대 극예술 연구회 출신으로 처음 배우로 연극을 시작한 그는 극작과 연출까지 활동범위를 넓혔다. 76극단에서 시작된 그의 연극시대는 혜화동1번지 3기 동인, 극단 죽죽의 창단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대담한 해체와 표현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그를 주목하게 만들며 최근 이루어진 다양한 연출활동은 그가 실험적인 작품들만이 아닌 일상의 드라마와 삶의 면면을 세심하게 살피는 데에도 역량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지상의 모든 밤들>, <나의 교실>과 더불어 <맥베드>의 카이로국제연극제 대상까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에서 우수함과 열정을 인정받고 있다.

극단 죽죽의 <맥베드-이것은 또 하나의 굿이다>는 이오네스코 ( Eugène Ionesco )의 <의자(椅子)들( Les Chaises )>보다도 더욱 강렬한 의자연극(椅子演劇)이다.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극작가 외젠느 이오네스크의 대표적 2인극인 <의자들>의 내용은 결혼한 지 75년 된 노부부가 현실과 단절된 삶에서 느끼는 짙은 고독을 그려냈다.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언어를 통해 노부부의 비극을 부각시킨다. 노부부는 끊임없이 손님을 맞는데, 실제로 손님은 등장하지 않고 노부부가 손님에게 하는 대사만 나온다. 극중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내놓는 의자를 통해 관객은 손님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심화되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와의 소통 문제에 대한 깊은 고뇌를 그려낸 전위극이자 실험극의 표상이다.

극단 죽죽의 <맥베스>의 무대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수 많은 작은 나무의자를 무대에 배치하고, 출연자들이 그 의자를 들고 돌리고 밀고 당기고 휘두르고 던지고 받으며 극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상승시킨다. 결투장면도 창이나 검 대신 의자를 사용한다. 버남의 숲의 이동장면도 의자로 대신한다. 의자를 배열해 그 위에 모포를 덮어 식탁으로 사용하고, 의자를 쌓아올려 탑 형태의 의자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쓰러트리기도 한다. 도입에 허공에 매달린 의자라든가 무대 좌우에 흩어져 있는 의자가 관객의 눈길을 끌고, 출연자가 의자를 빙글빙글 돌릴 때에는 혹시 그게 객석으로 날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하면서 관극을 하게 된다.

허공에는 그네가 매달려 있어 맥베스가 극중 기어오르고 거꾸로 매달리며 연기를 하기도 한다. 배경에는 창으로 보이는 사각의 종이가 부착되어있고, 그 종이가 달린 벽체가 이동되면 직사각의 통로가 보이고 그 통로는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가 된다. 무대 바닥에는 여러 개의 굵은 촛대의 불이 밝혀져 있고, 출연자들이 촛불을 각자 들고 등장을 해, 조명이 없는 공간에 촛불만으로 극이 시작되니, 관객의 몰입도가 상승됨은 물론이고, 음악도 현악기와 금관악기로 연주되는 비장 침울한 음곡도 극적 분위기 상승을 주도하고, 관객의 심장으로 파고드는 듯싶은 느낌을 준다.

연극의 도입에 속삭이듯 <맥베스>를 외치며 등장하는 원작의 마녀 역을 하는 남녀 출연자들과 극의 중간에 등장하는 마녀 역의 남녀 출연자는 마치 현악기와 손풍금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연출되고, 넓적한 얼굴의 맥베스, 길쭉한 모습의 뱅코우, 온건한 모습의 던컨, 둥근 모습의 맥다프, 건장한 모습의 남성마녀, 강인한 모습의 여성마녀,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젊은 시절 모습에 방불한 레이디 맥베스, 특히 흑색과 백색 의상차림으로 등장해 광적인 열연을 펼 때에는 관객의 시선이 레이디 맥베스에 집중되기도 한다.

특히 출연자들의 검은 색 의상과 촛불로 극의 분위기는 도입부터 제대로 조성이 되고, 맥베스, 뱅코우, 던컨, 맥더프, 남녀 마녀들의 의자를 사용한 동선 활용과 불꽃 튀는 열연은 극을 절정까지 치솟도록 이끌어 간다. 대단원은 도입에서처럼 맥베스가 건장한 남성출연자에게 눈을 헝겊으로 가린 채 질질 끌려 들어와 의자에 앉혔듯이, 마지막 장면도 맥베스가 끌려 나가다 의자에 무너지듯 앉혀지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성홍일, 박채익, 이철은, 장명갑, 이재인, 이자경, 김민경, 이창수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극의 분위기를 상승 하강시키며 관객을 시종일관 극 속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무대 최영환, 조명 주성근, 소품 박현이, 의상 이명아, 분장 김근영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2016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선정작품 극단 죽죽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낙형 각색 연출의 <맥베스>를 세계시장에 내보여도 좋을 한편의 걸작 조형예술연극으로 탄생시켰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