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극단 아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고기혁 용선중 각색 용선중 총연출 이화정 공동연출의 리퍼블릭 리어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리어왕>은 무대는 물론, 수많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앤드루 맥컬로우(Andrew McCullough)가 연출하고 오손 웰스(Orson Wells)가 주연한 1953년 영화 <리어왕>, 코진체프(Grigory Kozintsev)가 연출하고 유리 야벳(Yuri Jarvet)이 주연을 맡은 1970년 러시아판 <리어왕>, 구로사와 아키라(Kurosawa Akira) 연출, 일본풍으로 각색된 1985년 󰡔란󰡕Ran), 장 뤽 고다르(Jan-Luc Gordard)가 연출 버지스 메레디스(Burges Meredith)가 주연을 맡은 1987년 <리어왕>등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역작들이다.

그 외에도 <리어왕>은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조나단 밀러(Jonathan Miller)가 연출하고 마이클 호던(Michael Hordern)이 주연한 1982년 BBC TV <리어왕>, 마이클 엘리엇(Michael Elliot) 연출로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가 주연을 맡은 TV <리어왕>이 대표작이다.

<리어왕(king Lear>)에 나타난 가치관의 갈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550년대에서 1600년대 초까지의 영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1601년 에섹스(Essex)백작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지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직 후계자를 두지 못한 상황에서 전통귀족과 신흥귀족 그리고 중산계급은 1610년대에 이르러 상호간의 대립을 드러냈다. 특히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Spanish Invincible Armada)를 격퇴하는데 중산계급의 주도적 역할과 세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의회에서의 중산계급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타협과 균형이 깨지게 되었고, 이는 엘리자베스 사후 제임스 I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더욱 심해졌다.

<리어왕>이 집필된 시기로 추정되는 1604-5년경은 이런 정치적 갈등이 엘가치관의 분열과 결부됨으로써 영국과 전 세계에 대 혼란이 닥쳐올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작품 속엔 정치적 질서체계는 물론 인간과 세계를 연관시켜주는 종교적, 철학적 혼란까지 나타나고 있다.

1막에서는 리어왕의 비극적 결함이 드러난다. 그것은 곧 그의 통찰력의 결핍, 고집과 노망, 규정해 놓은 질서의 파괴 행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첨을 거부하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사랑을 거래하기를 거절한 코딜러어와 코딜리어를 변호하는 켄트를 리어왕이 추방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고, 이 때문에 리어왕은 받아 마땅한 불행을 겪게 된다. 그가 왕국을 분할하고 왕권을 이양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왕권을 방기하는 것이며,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저버리는 질서파괴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리어가 왕관을 벗는 순간 중세적 위계질서는 무너져버린다. 그가 왕관을 벗고도 왕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중세적 위계질서의 체계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는 광인이 되어 누더기를 걸치고 폭풍우 속을 헤매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코딜리어는 이 극에서 기존 질서체계를 지탱해주는 경직된 형식의 한계를 제일먼저 깨달은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경직된 형식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들의 말을 흉내 내지 않고, 리어왕의 요구에 '아무 말씀도 드릴 것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없다'라는 대답은 리어왕을 정점으로 하는 질서체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극적으로 보면 그녀는 불란서 왕과 결혼하여 영국을 떠남으로써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혼돈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체계가 대두 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상적 관념으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양식이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고 하는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면, 리어왕의 세계에서의 합당한 인간관계는 거너릴과 리건으로 대변되는 형식과 코딜리어로 대변되는 내용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가능한 것이 된다.

코딜리어가 영국을 떠나게 된 후, 거너릴과 리건은 통치권을, 에드먼드는 상속권을 위해 기존의 가치와 규범과 인륜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작가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을 에드거와 올버니를 통해 이루어 나간다. 에드거가 극한적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삶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가는가 하면, 올버니는 그와 같은 인간관계를 근거로 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올버니는 극의 전반에는 에드거처럼 소극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사회가 혼돈 속에 빠져들어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4막 2장에서부터는 전혀 다른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자신을 '공명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코 용기를 발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듯 그는 혼돈 속에 방황하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분명한 판단기준과 공평한 안목을 갖춘 인물로 바뀌어 에드거와 함께 혼란된 질서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단원에서 코딜리어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리어가 코딜리어와 화해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한다.

역사란 끊임없이 경직된 기존질서체계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고통과 회생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리어왕>은 그런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혼돈과 그것의 극복과정을 냉철하게 탐색하는 극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험극장 허규 연출의 리어왕, 극단 76 기국서 연출의 리어왕, 인천시립극단 김철리 연출의 리어왕, 국립극단의 윤광진 연출의 리어왕 등의 공연에서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살리며 이낙훈, 기주봉, 서국현, 장두이 등 리어를 맡아 탁월한 기량으로 열연을 펼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무대는 건축 공사장처럼 철봉을 가로세로 엮은 철제조형물을 삼면 벽 앞에 세워놓고, 위로 오를 수 있게 철판을 여기저기 비스듬히 걸쳐놓았다. 철제조형물 뒤쪽에는 수많은 상자 곽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극 전개에 따라 출연자들이 상자 곽을 이동시켜 기둥처럼 쌓아올리고 또 허물어뜨리기도 한다. 무대 하수 쪽에는 연주석이 있어, 북과 놋대접으로 박자와 소리를 내,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인천극단 아토에 공연에서는 리어가 세 딸에게 재산을 분배하기로 하면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체재를 바꾼다. 두 딸은 아버지 앞에서 새 공화정이 들어서면, 집권을 위한 정치공약을 발표한다. 물론 표심을 얻으려는 공약이지만 리어는 두 딸의 공약에 공감을 하고, 막내 코딜리어가 표심잡기 공약발표를 거부하자 분노하고, 두 딸에게만 재산을 분배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당한 정책이라도 반대당은 반드시 트집을 잡고 물고 늘어지기는 마찬가지라, 리퍼블릭 리어 시대에도 정당한 정책과 정견발표를 개그 코미디처럼 묘사해 흠을 잡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결국 왕정이나 독재체재가 아닌 공화정, 리퍼블릭을 선언했지만, 애국보다는 끼리끼리의 정권야욕을 위한 끝없는 투쟁을 바라보며 리어는 막내 코딜리어를 끌어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박경근, 최한결, 손인찬, 정성원, 이화정, 이정현, 윤원기, 정세희 등 출연자 전원의 체조선수 같은 철봉 오르기와 매달려 내려오기는 물론,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프로듀서 이화정, 움직임 음악 고기혁, 무대 조명디자인 용선중, 무대감독 강동엽, 의상 김유미, 홍보사진 영상 김희천, 오퍼레이터 윤채연, 진행 송재연 김유미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인천극단 아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고기혁 용선중 각색, 용선중 총연출, 이화정 공동연출의 <리퍼블릭 리어>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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