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애프터'로 2015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기상' 받은 성수연 배우 인터뷰

   
 

[문화뉴스]

"'비포 애프터'의 연기는 단순히 인물의 역할 연기는 아니었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작가적 태도를 보였고, 그것을 작품에 녹여냈다. 내가 했던 연기가 어떤 종류의 연기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것에 다가간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앞으로 잊지 않고 작업하겠다. 무엇보다 연기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 2015년 '제8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성수연 배우 신인연기상 수상 소감 中

 
지난해 초연한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연극 '비포 애프터'는 그야말로 핫한 연극 중 하나였다.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이 공연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월간 한국연극 선정 '2015 공연 베스트 7'에 뽑혔다. 또한, 이경성 연출은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출상'을, 성수연 배우는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기상'과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 "'비포 애프터'는 세월호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제껏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자행된 국가적 폭력과 강요된 망각 속에서 현재 한국사회가 어떤 무력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보여줬다"는 선정 배경을 밝힌 바 있다. '비포 애프터'(Before After)는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두고 그 전과 후에 달라진 변화를 의미한다.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을 통해 '비포 애프터'가 형성되는데, 그 거대한 사건이 '나'의 삶과 연결된 것을 체험하는데서 이 작품은 출발했다.
 
   
▲ 성수연 배우가 2015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기상' 수상 소감을 남기고 있다. ⓒ 문화뉴스 DB
 
이러한 '비포 애프터'가 다시 관객을 맞이한다. 3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아무래도 지난해 초연과 다른 느낌일 것이다. 1년 전과 비교해 새로운 장면도 추가됐다. 그리고 더 많은 문화예술 작품들이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뤘다.
 
성수연 배우는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서서히 목도한 자신과 세월호 안 학생을 연기한다. "가만히 있는데, 왜 가만히 있으라 그래!"라고 외치는 학생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깊은 탄식만이 흘러나온다. 성수연 배우는 과연 이 두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하고자 했을까? 그리고 올해로 2년차를 맞이한 '비포 애프터'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작품 소개 인사말을 먼저 확인하고 인터뷰를 살펴보자.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기상' 수상 연락이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ㄴ 빨리 이경성 연출에게 알려드리고 싶었다. 따로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빨리 연출한테 알려주고 싶었다. (알려주니 뭐라고 답했나?) "어!"라고 말한 것 같다. (웃음) '비포 애프터' 작품이 일반적인 인물 연기가 아니어서, 수상은 전혀 상상하지 않았다. 그게 신기하고 놀라웠고 감사했다.

'비포 애프터'는 한 사건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에 일어난 변화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성수연 배우의 삶에서 연극 '비포 애프터' 공연의 '비포'와 '애프터'는 어떤 것인가?
ㄴ 뜻밖에 감각적으로 산다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을 놓고 살 수 있는 순간이 단 한 순간도 없다고 생각하니 몸으로 변화가 조금 생겼다. 그 전까지 계속 사람이 살면서 깨어 있으려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들고, 매 순간 애쓰고 살아야 한다는 기분이 많이 왔다. 
 
그래서 사는 게 훨씬 더 어렵고 엄숙하게 느껴진다. 가끔 무기력해질 때도 있고,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다. 이게 나쁜 것은 아닌데, 좀 더 계속 고민을 놓치 않으려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보기엔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은데, 기운을 잃지 않으면서 끝없이 애를 쓰는 중간점을 찾아가고 있다. 끝없이 애를 쓰다 보면, 기운이 빠진다. 이러한 상황이 '애프터' 같다.
 
   
▲ '비포 애프터' 연극에 등장하는 2014년 9월 6일은 성수연 배우 아버지의 기일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는 어떻게 세월호 사건과 결부됐나? 연극에서 그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ㄴ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대표인 이경성 연출이나 오랫동안 동료로 같이 가깝게 지냈다. 아버지의 투병을 옆에서 돕고, 지켜봤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까지 이경성 연출과 동료 배우가 지켜봤다.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투병 중에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팽목항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 옆을 또 비우기 어렵고 해서 못 간 것도 있었다. 그 시기 내가 고민을 한 것을 알고 있었다. 작년 작품을 준비할 때, 생명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하게 됐다. 연출이 나한테 "최근에 가장 가까이서 죽음을 지켜봤는데, 그 이야기를 한 번 편하게 들려줄 수 있겠니"라고 제안해주셨다. 그때를 먼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꺼내봤다. 독백 장면 같은 경우도 일기를 쓰면서 기록을 했는데, 아버지의 몸이 변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게 됐다.
 
   
▲ 성수연 배우는 '비포 애프터'에서 세월호 사건 희생자 학생도 연기한다.
 
자기 자신과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인 여학생을 연기했다. 자기 자신과 희생자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었는가? 그리고 둘 중 어떤 역할이 더 힘들었나?
ㄴ 이 작품 안에서 내가 희생자 학생 역할을 연기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당시 실제로 있던 말들을 가지고 오면서, 그 말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한 '중간' 전달자 역할이었다. 말하다가 생각해보니, 그것도 어쩌면 역할 연기를 한 것이다. 당연히 세월호 사건 희생 학생이 더 어려웠다. 세월호 상황을 무대에서 발화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민했던 것 같다.
 
아마 많은 분이 그런 고민을 하시겠지만, 세월호 이야기가 다뤄진 연극 작품이 작년 '비포 애프터' 이후 많아졌다. 어느 정도까지 들어가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게 더 옛날도 아니고, 허구 상황도 아니고, 실제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계속 애를 쓰는 관련자, 유가족분들 등이 있는 현실인데, 동시대에 존재하는 것을 연기한다는 건 매우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팀 내에서도 이야기 많이 했다. 이런 말로 '퉁칠' 수는 없지만, 죄책감 등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조심스러웠고 어려웠다.
 
'비포 애프터' 공연 안에 세월호 장면 같은 경우는 내 입장이 있었지만, 거리를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단적으로 보면, 그 역할을 하면서, 그 안에 실제로 있던 말을 무대에서 발화한다. 내가 거기서 그 분노를 드러내고, 울고, 화를 내버려도 안 된다. 일종의 객관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려는 의지가 저뿐만이 무대에 배치가 되면서, 그것을 객석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그 거리를 조절하는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 이야기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허락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 부인이신 어머니에게도 허락을 받았다. 그나마 아버지 역할을 연기한 게 아니고, 아버지를 지켜보았던 내 입장을 연기하게 됐다. 아버지의 몸을 연기하는 것이고, 대본화 과정을 거치면서, '텍스트'라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하게 됐다. 내 아버지의 몸 연기한다는 것을 공연 중엔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텍스트에 주어진 것을 연기한다는 생각을 했다.
 
   
 
 
'비포 애프터' 공연과 비슷한 시기에 세월호 사건 관련 이야기가 문화예술계에 많이 등장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영화 '부산행', '터널' 등이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현상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ㄴ 그 사건이 있기 전, 우리가 살면서 느껴온 구조 자체의 문제가 있다. 지금 사람뿐 아니라, 생명의 가치가 계속 다른 것들에 비해서 우선순위가 밀려난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전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모두 이젠 잊을만하면 또 말해야 한다. 말 그대로 오래 기억하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기억한 후에 알고 있어야 한다. 다 같이 문제를 알면, 바꾸려는 의지를 모을 수 있게 되어서 계속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포 애프터' 초연 이후, 공연한 '그녀를 말해요'에서 305명의 세월호 사건 희생자 이름을 한 명 한 명 암기해 호명한 바 있다. 정말 외우기 힘들었을 것 같다. 암기의 방법과 동력이 궁금하다.
ㄴ '비포 애프터' 때나 '그녀를 말해요' 때나 공연을 준비하면서 안산에 있는 분향소를 찾아갔다. 분향소에 가면 압도적인 사진들이 있다. 사진들을 하나하나 쭉 봐도, 다시 가서 보면 또다시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오고, 또 다시 가면 또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온다.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같은 책이나 기사들을 읽다 보면 학생들의 얼굴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알아야 기억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다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 알게 되면 완전하게 세밀한 부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름이나 얼굴까지 다 알게 되면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좀 더 자기 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크숍 때 이러한 내용의 발표를 했다. 이경성 연출이 공연의 한 부분으로 이 장면을 배치하기로 했고, 그렇게 쭉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외운 후에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 단원고 학생 어머니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만 보더라도 "아, 이 학생"이라고 말하게 된다. 기사를 가깝게 볼 수 있게 됐다. 이 사건은 아직도 커다란 범위로 지속해서 미치고 있는데, 마치 그물망을 치는 느낌이었다.
 

▲ 성수연 배우가 27일 오후 열린 '비포 애프터' 프레스콜에서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비포 애프터'는 11월 홍콩 블랙박스 씨어터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홍콩 관객들이 어떤 것을 봤으면 좋겠나?
ㄴ 공연자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 공연은 감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슬픔이 등장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나온다. 아버지의 몸을 연기하는 장면도 죽어가는 자의 감각을 알 수 없어서 다가가고자 한 경우다. 이러한 감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비록 다른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에게 감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우리는 국가에 의해 폭력을 당한 경우도 나오고, 그런 방법으로 일어난 상황도 등장한다. 이러한 구조를 이야기하는데,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니 한국 관객과 서로 교감하는 것과 다를 거라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이 실시간으로 모두 함께 공유한 사건이라면, 외국에 가면 이것은 '연극'이 될 것 같았다. 극장이라는 장소에서 관객과 연기자 모두가 동시에 경험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 무언가 닿을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잠시 작품 이야기에서 돌아가 보면, 성수연 배우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계기가 있다. 2010년 '광화문 괴물녀'로 검색어 실시간 순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성수연 배우의 퍼포먼스를 보고 "거지냐, 환경운동가냐"라는 논란도 있었다.
ㄴ 당시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 공연을 광화문 일대에서 하게 됐었다. 혼자 혹은 팀을 짜서 여기저기 퍼포먼스처럼 진행하고, 이것을 관객이 찾아보는 작품이었다. 결국, 나는 퍼포먼스를 통해 '괴물녀', '쓰레기녀'가 됐다. 내가 떠올린 것은 괴물이 맞다. 그 이유는 광화문 일대가 너무 잘 정돈됐기 때문이다. 뭔가 여기엔 국가기관도, 대기업 건물도 있어서 깔끔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 여기는 빛만 있다고 생각해 그림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이 공간엔 그림자가 없어서, 그 그림자가 모여 어떤 괴물이 됐다고 생각해 캐릭터를 만들어서 하게 됐다. 내가 괴물이 되어 공간을 돌아다니며, 그림자를 애도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는 것을 보고 겁을 먹었다. 정말로 덜덜 떨면서 나는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물론 내가 엄청 유명해지고 싶었던 건 없었다. (웃음)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는데, 연극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ㄴ 연극을 고등학교 때 하니까 재밌었다. 사실 나는 항상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내가 그걸 이루고 뭔가 하겠다나 어떤 걸 하고 싶다는 게 없었다. 그냥 어떤 일이 닥치면 닥치는 것만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공연도 계속 무언가 닥치게 되니까 한 것 같다. 연기하는 게 맞는 것인가 생각해볼 때는 이미 다른 것을 하기가 너무 늦었다. 물론, 늦을 때는 없다고 하는데 연극을 그만둘 이유도 없었다.

연극이 재미났던 이유는 무엇인가?
ㄴ 학교 수업시간 같은데, 연기할 때 내가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해도 결과물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재밌었다. 내 안에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 걸 느낄 때가 제일 재밌었다. 계속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시 레슨도 경험했고, 학교에 가서 배우기도 했다.
 
초연 이후 2년째 '비포 애프터' 무대에 섰다. 분명한 변화가 있을 것 같다.
ㄴ 지난해 공연이 됐던 시점 이후로,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알게 된 것들이 더 많았다. 새로 밝혀진 사실도 있었다. 상황 자체가 많이 달라진 게 있다. 그때의 입장과는 우리가 모두 조금씩 변한 것 같다. 올해 '그녀를 말해요' 공연도 중간에 했는데, 이번 공연을 앞두고 든 생각은 달라진 것을 인정하고, 그때와 똑같은 감각으로 연기할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데, 공연자뿐 아니라 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도 달라진 무언가가 있을 거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분명하게 다시 우리 공연자와 관객이 상호작용하기 위해, 시작점 포지셔닝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단계가 필요했다. 그런 것을 고민하면서 준비했다. 이 공연에서 타인의 고통에 닿고자 하는 마음, 내가 알 수 없는 감각에 닿고자 하는 마음이 대사로 있는데, 다시 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10년 후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달라진 것도 없는 미묘한 차이다. 그렇지만 그 미묘한 차이가 공연의 느낌을 많이 바꾸긴 한다. 그래서 계속 고민하는 것 같다.
 
   
 
 
공연이 현시대의 문제점을 나누고 같이 하는 기능이 있다. 지난여름 '권리장전(權利長戰) 2016 - 검열각하' 프로젝트의 하나인 '삐끼ing'에 출연했다. 출연 소감을 들려 달라.
ㄴ '삐끼ing'은 국가 구조 안에서 다루는 검열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검열각하' 안엔 다양한 주제가 다뤄졌다. 검열이라는 말로 불리지 않는 검열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다. 깊이 이야기하면 커질 수 있지만, 이 사회의 정의가 여러 광고나 선택을 통제하게 되면서 잡힌다. 자주적으로 선택하지만, 그것이 자주적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 일종의 통제 안에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로 만끽하는 어떠한 자유는 허무한 것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검열을 소재로 올리게 됐다. 전강희 드라마터그 선생님과 공부를 했는데, 자료를 주시며, 이야기도 하며 고민도 했다. 끔찍하다고 생각한 것은 1960~70년대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앞서 말한 이야기에 연장선으로 말하고 싶다. 내가 연극을 계속한 이유는 살아가는 것이 덜 허무하게 느껴져서였다. 생활하면서 일상 속에 느껴온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은 것이 작업을 통해 무언가 될 수 있는 게 배우였다. 그 삶 자체를 더 버틸 수 있게 한 이유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일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담고 기록하는 것을 어떤 형태든 작업으로 내놓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것은 비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작가적 입장이나 배우로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프로덕션에서 역할 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상과 작업이 잘 되게끔 좋게 연결할 방법을 찾으며, 계속하고 싶다. '퉁쳐서' 말하자면 계속 늘었으면 좋겠다. 연기가 계속 늘면 좋겠고, 작업자의 시야가 확장되면 좋겠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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