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산허구리' 리뷰

[문화뉴스]

 

   
 

"웨 우리는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 한다든?"

엎친 데 덮쳤다. 그리고 엎치고 덮친 그곳에 또 다른 불행이 다시 들이닥친다. 연극 '산허구리'는 1930년대 바다 곁에서 바다를 향해 살아가는 노어부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바다가 삼켜버린 큰아들과 큰 사위. 노어부마저 한쪽 다리를 바다에서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 복조의 바다행을 막을 수 없었던 노어부와 그의 처.

 

   
 

작품의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는 말한다. "사실 우리는 추락하고 또 추락할 수 있다"고 말이다. "밑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바닥을 칠 힘이 생긴다는 건 어쩌면 빨간 거짓말"이라고 말이다. 정말 노어부 가족의 이야기는 그랬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던 우리 민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엎친 데 덮치고, 덮친데 억눌러졌다. 매일매일 설상가상의 소식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 우리의 모양새와도 비슷한 부분이다.

지겨우리만큼 계속되는 비극적 상황. 그리고 또 다른 비극이 곧 도래할 것 같은 불안감. 사실주의극 연출에 처음 도전하는 고선웅 연출가는 이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무대극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서해안의 작은 포구에 자리한 노어부의 집은 조개껍질부터 개흙, 마른 엉겅퀴와 망둥어까지 세심하게 준비한 소품들로 인해,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작은 무대는 서해안의 짠내가 그대로 풍겨오는 작은 어촌 노어부의 집이 되었다.

 

   
 

의상도 리얼했다. 일제강점기 고달픈 서민들의 일상을 표현하기 위해 황연희 의상 디자이너는 "손 때 묻혀가며 우리 옷을 표현했다"고 한다. 때 묻지 않은 옷이 없으며, 고단하지 않은 주름이 없었다. 더구나 노어부의 바지는 매일 하혈하는 그의 일상을 반영해 가랑이 사이에 거뭇해진 핏자국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실적인 무대에 사실적인 연기가 더해졌다. 토속적 향기를 강하게 내뿜는 사투리는 어촌의 짠내를 한층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고선웅 연출가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리얼한 고통을 전하려고만 하지 않는다. 석이의 "우리는 왜 밤낮 울고불고 살아? 왜? 왜? 왜?……왜 그런지를 난 생각해 볼테야"라는 대사를 붙잡은 것이다. 혹여 살아있지는 않을까, 복조의 무사함을 염원하던 가족들이 복조의 시체를 받고 나서, 어머니는 실성하고, 하혈하는 아버지는 좌절하고, 과부인 큰 누나는 갓난이를 먹여 살리겠다고 떠나고자 한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 어느 희망도 찾아볼 수 없을 때, 석이는 우리의 절망의 원인을 생각해본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쩝니까. 매번 속고 넘어가시라고 저도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바닥은 못 치고 올라오더라도 석이의 말처럼 왜 그런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고선웅 연출가는 결국 사실주의극 '산허구리'의 대단원을 비사실적인 무대로 채운다. 무대 한켠을 뚫고 나온 뱃머리. 그 위에는 죽은 복조가 오색기를 흔들며 늠름하고 생기 있게 뱃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믿기 싫은 현실이 우리의 목을 더 조여 온다. 이미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있는 우리를 더욱더 짓누른다. 살갗이 찢어져 생긴 생채기, 그곳을 후벼 파는 절망의 바늘. 실성 혹은 포기, 둘 중 하나의 선택을 종용하는 비극적 현실들은 석이의 말을 통해 그 힘을 잃어간다. "그래도 난 좌절하지 않아"라는 말 대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볼 거야"라는 말은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결연한 다짐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 때, 세계는 우리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주체가 아닌 우리의 시선 앞에 놓인 객체가 될 수 있다. 눈먼 희망대신, 또렷한 의문이 처참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해봐야겠다. 우리가 왜 이런 시공간에 놓였는지, 우리가 왜 이런 뼈저린 고통을 곁에 두고 살아야만 하는지.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국립극단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