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단순히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도 아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억팔이'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방식으로 연출하게 됐다."

 
영화 개봉 주보다 2주차에 더 많은 관객이 몰리는 현상을 일컫는 영화계 은어로 '개싸라기 흥행'이 있다. 올해 '개싸라기 흥행'을 기록한 영화는 '캐롤', '주토피아', '동주', '밀정',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등이 있다. 그러나 전체 박스오피스에서 다큐멘터리가 '개싸라기 흥행'을 한다는 것은 일반 영화들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특수한 경우로 2014년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개싸라기 흥행'으로 480만 관객을 불러모은 바 있다.
 
한편, 여기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개싸라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바로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다. 이 작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조명하고자 만들어진 휴먼 다큐멘터리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개봉일 스크린 수는 31개였고, 1,378명이 관람했다. 그리고 개봉 9일째인 3일엔 69개 스크린에서 4,795명이 관람하며, 어느덧 4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다. 아직 손익분기점으로 계산 중인 약 15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신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최종 스코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최근 제주, 수원, 전주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관객과의 행사'를 위해 뛰고 있는 전인환 감독을 '개봉 2주차 주말'을 앞두고 만났다. "마치 '선거 유세' 활동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전 감독의 몸은 지쳐 있었고, 입술은 부르터져 있었다. 그런데도 약 1시간이 넘는 시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인환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잔뜩 보여줬다. 영화 준비 에피소드부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도 지정(?)된 소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확인하기 전에, 영상 인사말을 살펴본다.
 

 

이제 상영 2주차를 맞이했다. 소감을 들려 달라.
ㄴ 어제(2일)부로 '닥터 스트레인지'의 상영점유율을 이겼다. 계획해서 한 게 아니라 얼떨떨했다. 힘든 날들이 생각났다. 어제는 수원에 있는 메가박스에 갔었는데, 3만 명 돌파라는 소식이 들어왔다. 관객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거의 만석이었다. 3만 명 돌파 기념사진도 찍었다. 막 3만이라고 축배를 들 상황이 아니어서 담담한 것도 있다. 그래도 나, 라인 PD, 배급사 직원 등 스태프가 3명 있었는데, 못 먹던 나초도 먹었다. (웃음)
 
좀 더 많이 관객들이 와주셔서, 지금 같은 시국에 더 봐주셨으면 좋겠다. 처음엔 극장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했다. 극장이 조금씩 늘고 있는데, 만족할 만한 정도로 열리지 않았다. '자백'도 많은 건 아니지만, 시작할 때 100여 상영관으로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린 30여 상영관에서 시작했다. 우리 제작위원회 '단톡방'을 보면 아직도 강릉 등에선 상영관이 열리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어와서 안타까웠다. 강릉에 없으면, 다른 곳이라도 봐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도 열리지 않아서 못 본다는 것이었다. 상영 원하시는 분들의 문의도 오는데 좀 더 전국적으로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정치적인 의도도 없었고, 물론 대통령 노무현 이런 분이 정치인이었지만, 16대 대통령이었고. 국민 앞에 영감을 준 분의 이야기인데, 그분의 이야기가 처음 오픈할 때, 뭐랄까 멀티플렉스 검열이라면 검열이랄까. 그런 걸 받은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 좀 더 많은 극장이 열려서 많은 분이 봤으면 좋겠다. 저희 영화 모시면 알겠지만, 리더가 생각하는 건 뭔지도 있는데 리더에 대한 철학이 중요해서 지금 같은 시대엔. 그런 것을 많은 사람이 보시고 공감하시면 좋겠다.
 
   
 
 
보통 상영 2주차가 되면 상영관이 줄어들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ㄴ 그동안 많은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했고, 생각도 많았던 것같다. 국정 문제가 생기면 항상 노무현 영상이 따라서 올라온다. 시대적 요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현재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상황에서 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는 것 같다. 진정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정을 끌어내야 하고, 많은 이들의 생계와 인생을 고루고루 살펴야 하는 역할이다. 그런 역할이 부재한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한 분노와 그리움 등 여러 감정이 섞여 이 영화를 많이 찾으시는 것 같다.

포털사이트 영화 페이지에서 감독을 찾아봤다. '이미지 준비 중'이라는 말과 함께 필모그래미가 적혀 있는데, 이 영화를 포함해 7편이 있었다. 이 작품이 '연출 데뷔작'인데, 영화 전공 후 어떤 일을 해왔나?
ㄴ 나는 예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갔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라는 학교에 진학해서, 영화 연출과 촬영을 공부했다. 한국에서 '품행제로'(2002년) 조감독을 했고, 2005년 양조위, 서기 주연의 '서울공략'에서 조감독 겸 코디네이터를 했다. 그 이후엔 생계를 잇기 위해 이것저것 하면서 글을 썼다. 시나리오를 작업하면 계속 엎어졌다. 이게 될 만하면 엎어지고, 그랬던 게 있다.
 
그러다 작년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조은성 PD를 25년여 만에 만났다. 이 친구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지는 알고 있었는데, 이유는 몰라도 안 보고 지나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를 만들자고 선뜻 제안서를 내밀어줬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탈락한 내용인데, 호남 편견과 지역주의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걸 주면서 시작하자고 한 내용이 노무현 다큐멘터리였다. 조은성 PD 작품이 잘 안 되어, 감독 공석이 생겨 요청이 왔다. 그런데 세 번 정도 안 하겠다고 했다.
 
   
▲ 지난달 21일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전인환 감독, 팟캐스트 '이이제이' 윤종훈 진행자, 조은성 PD가 참석했다.
 
안 한다고 한 이유는 다른 분이 하시던 것을 내가 받아서 그대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편집만 하는 것인데, 편집자를 구해서 끝까지 그분이랑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담으로 내가 다 처음부터 끝까지 찍지 않는 이상 안 하겠다고 했다. PD가 생각을 해보더니,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프레임으로 가보자고 해서 완전히 새로 찍게 됐다.
 
마침 내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 거리에 나와서 찍은 장면이 있었다. 1주기, 2주기, 3주기 때 봉하마을에 가서 찍은 장면도 있었는데, 묵혀놓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었다. 어느 날 자료를 보면서 눈물이 펑펑 터지며 옛 생각이 났다.
 
정몽준이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발언으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던 날, 10여 명을 설득해서 투표하러 간 기억이 났다. 노무현 대통령을 뽑은 그 날 이후, 나는 조용한 국민으로 살면서, 비판도 하고 살았다. 그러다 탄핵 때 열이 완전히 받아서 앞서 설득했던 애들을 끌고 나와 시위를 하고 그랬다. 그러다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영상을 찍게 됐다. 나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에피소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보면 패널들이 포장마차에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그 날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은 그날 어떤 생각을 했는가?
ㄴ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가 뉴스 보시는데, '투신'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진짜 멍했다. 마치 어디에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어 이게 뭐지.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보면 사회적 타살이냐, 자살이냐는 물음도 나오는데, 나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본다. 화가 너무 났는데, 이렇게 사람을 몰아붙여서 죽여야 하나 싶었다. 분노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고, 원망하기도 했다. 여기서 이렇게 가시면 안 되는데, 같이 싸워주고 있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워낙 파이터 같은 느낌인데, 조금만 더 참아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만감이 교차하며 영결식 촬영을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이길래 대통령까지 자살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대통령이 자살하는 나라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자들과 부딪치면서 찍거나 울면서 찍었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를 내린 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영상이 많이 흔들린다.
 
   
▲ 2000년 총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소개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 중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부산광역시 북·강서을 지역구 선거 유세 기간으로 좁힌 이유는 무엇인가? 
ㄴ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나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TV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많이 했는데, 이 자료들만 붙이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새로 써진 판에서, 새로운 자료를 찾고 싶었다. 공개가 되지 않은 자료를 찾다가 조각 하나를 찾게 됐다. 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약 5~10분 정도 되는 자료가 하나 있었다. 내가 본 적도 없고 노출도 많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노무현재단에 가서 이 자료가 뭔지 홍보 담당하시는 분에게 여쭤봤다. 부산 북·강서을 출마하셨을 때 자료 같다고 해서 이걸 찾아서 보내달라고 했다. 테이프로 하면 200개 되는 분량이 왔다. 그걸 보니 좋은 자료가 많았다. 베타캠, 디지베타로 찍어진 A캠이었다. A캠을 보니 분명 B캠도 있을 것 같았다. B캠을 찾아주시면 좋겠다고 노무현재단에 요청했다. 재단도 자료가 방대해서 다시 찾아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B캠 자료를 구하게 됐다.
 
B캠은 노무현 전 대통령한테 더 밀착되어 있는데, 쓰지 못하는 자료가 많다. 차 소리도 많이 나고, 옆에서 보좌관이 이야기하는 장면도 있다. 방송에 쓸 수 없는 건데, 그게 너무 좋았다. 차 안에서 말씀하시는 영상을 보니 많이 릴렉스 된 상태여서, 비록 사운드가 좋지 않더라도 그걸 썼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편집하게 됐다. 자료를 정리하는 데만 2~3달 걸렸다. 보여드리지 못한 자료가 매우 많다. 
 
1시간 30분 정도의 상영 시간을 잡다 보니 많이 잘려나갔다. 저희가 푸티지(자료 화면)만 쭉 보여드리면, 도의적으로 옳지 않아 보였다. 연출자로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서, 포장마차, 이이제이 팟캐스트 토크가 기획되고 붙여졌다.
 
   
▲ 이 작품엔 백무현 후보의 유세 장면도 번갈아 등장한다.
 
작품을 보면 도입부와 후반부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글귀가 등장한다. 이 작품의 부제이기도 한데, 이 부제와 글귀를 쓰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ㄴ 제목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그냥 '무현'으로 갈까 생각도 했다. 그러다 올해 총선 때 여수을에 출마한 백무현 후보님의 촬영을 하게 됐다. 원래는 백무현 후보도 같이 술을 마시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때마침 당시 화백님(편집자 주 : 백무현 후보는 1980년대부터 시사 만화가로 활동했다)이 출마를 하게 됐다. 너무 바빠서, 같이 참여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우리가 여수로 넘어가서 촬영하게 됐다. 찍을 때 노무현 당시 후보의 유세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콘셉트를 가져와서 촬영하게 됐다. 주로 차 안에서 촬영하거나, 후보를 밀착해서 따라다녔다. 자금도 부족해서, 나 혼자 몸으로 부딪치며 찍었다. 그 콘셉트로 같이 따라가서 촬영을 하다가 암이 발병하신 걸 알게 되어 고민이 많았다. 어떡하지 싶었다. 이렇게 되면 백무현 후보의 이야기가 워낙 강력하므로, 노무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백무현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았다. 이것을 어떻게 매치하지 하다가, 화자인 김원명 작가가 여수에 와서 계속 이야기하는 걸 찍기로 했다.
 
결국, 백무현 후보도 패하고 말았다. 노무현 후보도 당시 선거에서 패했다. 패배만 보여주냐고 올라오는 길에 김원명 작가가 이야기했는데, 나는 패배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떠오르게 됐다. 후반부에 나오는 글귀는 비록 지금은 패했지만, 지지 않았고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내가 승리를 볼 수 없을지언정, 승리를 이끄는 하나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이 영화의 중간 중간엔 포장마차에서 패널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후보를 다뤘기 때문에, '노무현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 찾은 관객 중에선 구성이 약간 산만하지 않았냐는 지적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건 예상을 했다. 내년까지 작품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내년엔 대선이 있었다. 이야기가 복잡해지니,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전에 작품 개봉을 하고 싶었다. 11월이나 12월엔 블록버스터가 많을 것 같아서, 10월 말에 개봉했다. 많은 부분이 변명이긴 한데, 빠르게 편집이 진행되다 보니 중심에서 틀어진 것이 있었다.
 
토크 같은 경우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보통 다큐멘터리를 하면, '바스트 샷'으로 인터뷰가 진행되고 자료 화면이 중간에 삽입된다. 나는 탈피해보고 싶었다. 한국식 문화라고 하면, 술을 마시고 대통령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그래서 포장마차 장면을 촬영했다. 그게 복잡하다는 분도 계셨다. 그게 툭툭 넘어가더니 노무현 이야기가 나온다. 설명을 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거칠더라도, 거친 게 콘셉트였다. 투박하게 가고 싶어서, 툭툭 넘어가는 느낌을 그대로 두기도 했다.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전개 같은 경우는 고민이 많이 들었다. 이 작품엔 세 가지 축의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는 노무현 후보 유세 이야기, 두 번째는 백무현 후보 유세 이야기, 세 번째가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세 가지를 어떻게 하면 적절히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세상을 떠난 백무현 후보 이야기가 너무 강렬해서 빼야 할 지 고민했다. 그래도 그분이 총선에 나온 발자취도 의미가 있다 싶었다. 그 부분을 결국 살려야 했다.
 
그래서 토크를 날리고, 두 후보만 보여줘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처음 생각한 원점으로 돌아갔다. 초심이 뭐였냐면,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였다. 그것이 목표였다. 지금 사는 우리가 나와야 했다. 패널들을 보면 고양이 사진을 찍고, 연극을 하시는 분이 소년원 애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사회적 메시지도 넣게 됐다. 이야기로는 좀 더 많은 게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수정을 했을 것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좀 더 다른 시점이나 영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도전정신이었다. (웃음)
 
   
 
 
블록버스터를 피하겠다고 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를 만났다. 그래도 '관객점유율'은 끝내 앞질렀다.
ㄴ 사실 저희 영화는 역으로 안중에 없었을 것"이라며 "저희가 상대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블 영화인데 어떻게 싸우겠는가. 그래도 노무현이기 때문에, 관객점유율을 이긴 것 같다. 최근 마법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우스갯소리로 마법보다 더 센 굿이 판치는 세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이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연출하면서 촬영한 것도 있고, 스태프가 만든 것도 있지만, 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앞으로 영화를 하면서 이런 주연 배우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장면이 세 차례 등장하는데, 관객들이 가장 웃는 장면 중 하나였다. 편집 당시 이야기를 들려 달라.
ㄴ 편집자가 부산 사람이었는데, 그 친구가 '부산 갈매기' 장면을 좋아했다. 왜 이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부산사람이어서 '부산 갈매기' 들으면 울컥할 때가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편집을 해서 넣게 됐다. 세 장면이 나온다. '부산 갈매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래라고 알지만, 첫 장면을 보면 가사를 다 모르는 장면이 나온다. 배우는 과정이 줄거리로 들어가게 됐다. 숙지하시고 잘 부르신 장면이 두 번째 장면이고, 해단식에서 다시 불러주시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부산 북·강서을 캠프 주제가라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그 노래를 부르실 때마다, 감정적으로 동요시키는 장면이 많았다. 처음 편집할 때 '부산 갈매기'의 원곡을 몽타주 영상에 붙여넣었다. 붙여넣으니 이상해서 다 드러내자고 했다. 조동희 음악감독이 제안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것을 몽타주 영상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거기서 많이 관객들이 우셨다. 여기서 덧붙이는 이야기다. 조동희 음악감독이 음원 공개를 했는데, 많이 들어달라고 했다 .(웃음)
 
   
▲ 전인권의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가 작품에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 같다. 전인권과 삼촌 관계라고 알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장면과 엔드 크레딧에 '걱정말아요 그대'가 나온다. 뒷이야기가 있다면?
ㄴ 전인권 씨는 제 작은아버지시다. 어릴 때는 '뽀빠이 삼촌'이라고 했다. '뽀빠이'가 힘을 자랑하는 포즈를 취하면, 나랑 동생이 매달렸다. 힘드셨을 것이다. 삼촌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달라고 말씀드렸다. '응답하라 1988'이 화제가 됐을 때, 조은성 PD가 이 노래 어떻냐고 물어봤다. 나는 지금 애들도 죽고, 사회도 엉망진창인데 이 노래가 말이 되냐고 답했다. 
 
조은성 PD가 전인권이 삼촌인 것을 아니 어떻게든 써보자고 했다. 그래서 '희망가'를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이번 설에 삼촌을 만나서, "삼촌, 노래 한 곡만 다큐멘터리 만드는데 불러주세요"라고 여쭤봤다. "무슨 영화냐?"고 묻자 "노무현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라고 말했다. 한동안 말이 없으신 후, "야. 그거 해도 괜찮겠어"라고 답하셨다. 그래서 "아니, 뭐 안 괜찮을 건 또 뭐가 있나요"라고 말했다. 2~3일 후에 전화가 와서 "네가 한다니까 불러줄게"라고 하며 부르시게 됐다.
 
녹음할 때, 분위기가 좋았다. 조동희 음악감독과 같이 부르는 듀엣 버전이 있고, 마지막에 엔딩 버전까지 두 곡을 불러주셨다. 신윤철 기타리스트도 오셨는데, 연주가 딱 받쳐주니 너무 좋은 노래가 나왔다. 듀엣 버전을 할 때는 삼촌이 목을 푸실 때 걱정이 되어 보여서, 음악감독한테 조금만 낮게 불러달라고 했다. 그것을 합쳐서 만들게 됐다. 지금까지 나온 '걱정말아요 그대' 중 최고인 것 같다. 의도가 워낙 좋았다.
 
   
 
 
최근 공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본인의 이름이 올랐다. 소감을 들려 달라.
ㄴ 나는 몰랐다. 살펴보지도 않았고, 저쪽에서 '블랙리스트'라고 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 요즘은 오히려 더 훈장 아닌가 싶다. (웃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문화는 선진국이 아닌 것 같다.
 
K팝이 외국에 나가서 선방하지만, 우리나라 문화는 K팝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 연극, 음악, 미술 등 다양하다. 예술인들에게 무언가를 씌워 제한하고, 딱지를 붙인다는 거는 위에 계신 분들이 저질이라는 의미다. 문화에 대해 그렇게 인식이 없는 분들이 어떻게 세련된 나라를 이끌어나갈 수 있겠는가.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도 중요하다고 본다. 나중에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분이었으면 좋겠다.
 
작품에 출연하는 박영희 감독이 영화에서 "예술가는 영혼의 의사"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시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는 것도 문화예술의 기능이 아닐까 싶다. 그 부분에 분노를 느끼기도 하는데, 우리가 힘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문화예술인을 타겟으로 잡아 약한 곳을 공략하는 사람들이 정신 나간 것 같다. (웃음)
 
이 작품엔 '블랙리스트'가 많다. 나도 있고, 조은성 PD도 있고, 출연진 중 세 분, 제작진에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를 지지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인데, 정부가 그 사람을 지지했다고 낙인을 찍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다. 이상한 나라다. 지금 시대에 어느 나라가 그런 걸 하겠는가?
 
 
   
▲ 故 백무현 화백이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변에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이 영화는 약간 정치적이지 않을까 해서 섣부르게 접근을 하지 못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ㄴ 정치적인 부분이 영화에 나오긴 하지만, 상식과 정의라고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옳고 맞는 것이 이 영화에 담겨있지 않나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으신 분도 계실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정치색은 덜어내려고 했다. 그런 부분은 덜어냈으니, 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이러한 현실 시국에서 지도자에 대해 당연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이 반영된 영화인데, 세상에 사는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단순히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도 아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억팔이'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방식으로 연출하게 됐다. 노사모 분들도 만났고, 일반 관객분들도 만났다. 단순한 찬양 일색이나 추켜올리는 내용이 아니어서 고맙다고 해주셨다. 패배를 통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줘서 고마웠다는 내용도 있었다.
 
최근엔 새누리당 관련 인사에게도 전화가 왔다. 너무 잘 봤고, 생각을 잘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닌데, 내 바람은 한쪽의 의견만 있는 민주주의도 아니다. 상식을 만들어가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걱정말아요 그대'의 마지막 부분은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많은 것이 엉망이 되었지만,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꿈을 꿔야 하지 않겠냐는 바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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