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의 잠룡들, '더 큰 하늘로 날아 오르길'

▲ KOVO 남자 신인 드래프트에서 수련 선수로 제일 마지막에 호명된 성균관대 레프트 배인호(사진 중앙). 사진ⓒOK 저축은행 배구단 제공

[문화뉴스]육성(育成) 선수(選手). 프로야구에서는 흔히 '신고 선수'로 많이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국내 프로구단에서 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구조이기도 하다. 한국 야구 위원회(이하 KBO)에 특정 선수들이 선수로 뛰고 있다는 것을 '신고'만 하고, 계약금이나 연봉에 대한 하한선은 두지 않는 이들을 뜻하기 때문이다. 본부에 '신고'만 하면 된다고 해서 초창기에는 신고 선수, 혹은 연습생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육성'의 개념이 부각되면서 '육성 선수'라 부르게 됐다. 그러나 이 육성 선수도 비정규직 중에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언제 계약이 해지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불완전한 고용 상태에 놓인 이가 바로 육성 선수의 현주소다.

그러나 신인 지명 회의에서 호명 받지 못한 많은 이들은 이러한 육성 선수 신분이라도 얻기 위해 밤낮으로 각 구단의 문을 두드린다. 행여 '연습생 테스트'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그 즉시 유니폼과 장비를 챙겨 들고 해당 구단이 지정한 테스트 장소로 지체 없이 달려간다. 1,000명에 가까운 '취업 준비생'들 중 1차 지명을 포함하여 2차 지명까지 겨우 110명의 선수들만이 프로 입성에 성공한다는 점을 감안해 보았을 때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야구 읽어주는 남자, 야구 보여주는 남자 36번째 주제는 야구를 포함하여 프로 스포츠계의 육성 선수(신고 선수)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로스포츠의 잠룡(潛龍),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프로 입단에 실패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경성대학교에서 '와타나베 슌스케'라는 별명을 지녔던 투수 유재협 역시 마찬가지. 프로 지명 이후 육성 선수 입단 등을 통하여 야구를 지속하려 했지만, 그의 선택은 군입대였다. 하루 빨리 병역 의무를 마치고, 지도자 자격증 획득을 통하여 사회에 뛰어들겠다는 계획으로 자신의 진로를 수정한 터였다. 이러한 미래를 바탕으로 그는 현재 신병교육대에서 열심히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나마 프로야구의 경우 육성 선수 공개 모집이나 일본/중남미 지역 독립리그 트라이아웃, 혹은 연천 미라클, 저니맨 사관학교 등을 통하여 얼마든지 재기를 꿈꿀 수 있다. 하지만, 배구는 조금 다르다. 프로야구의 육성 선수와 같은 개념의 '수련 선수'를 아예 드래프트 현장에서 뽑기 때문이다. 모든 프로스포츠가 그러하듯, 겨울과 봄철을 뜨겁게 달구는 배구의 세계 역시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유망주들이 많게 되는 셈이다. 올시즌 성균관대학교 배구부에서 레프트를 맡으며, 팀을 이끌었던 배인호(OK 저축은행) 역시 마찬가지. 정식 라운드 지명에서 끝내 지명을 받지 못했던 그는 이후 열린 수련 선수 선발에서 가장 마지막 순번으로 OK 저축은행에 호명됐다. 한 시즌동안 대학무대에서 종횡무진하며, 팀을 이끌었던 에이스 역할을 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수련 선수 지명까지 밀린 것에 서운함을 표시할 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당 평균 20득점, 10리시브 이상 기록하는 레프트는 분명 드래프트 시장에서도 매력적인 카드였음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인호는 그러한 이러한 평가에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운동 끝나고 치료도 해 주고, 좋은 룸메이트 형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한다. 수련선수이면 어떠한가. 이 모든 것이 본인 하기 나름이다. 그저 스스로가 배구를 계속 할 수 있음에 즐거울 뿐이다."라며, 향후 OK 저축은행의 히든카드가 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고 보면, 프로에 입문한 모든 루키들이 정식 선수로 뛰기 이전에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다. 큰 그릇이 늦게 만들어지듯,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격수 역시 시간을 갖고 천천히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는 운동 선수치고는 꽤 좋은 체격 조건을 지니고 있다. 키 185cm, 몸무게 82kg로 꽤 다부지기 때문이다. 다만, 네트를 사이에 두고 상대편 코트에 '폭격'을 가해야 하는 배구에서는 키 190cm 이하는 비교적 단신에 속한다.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한 후천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와 비슷한 체격 조건을 지녔던 동문 선배 정평호 역시 큰 체격 조건을 지녔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점프력을 바탕으로 상무와 한국전력 배구단에서 은퇴 전까지 많은 득점을 기록하며, 주축 공격수로 좋은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러한 정평호도 드래프트 순번이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프로 정식 입단 유무를 떠나 이 세상의 모든 유망주들은 잠룡(潛龍), 즉 '숨어서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은 용'이다. 언제 승천할지 모르는 이들이 향후 김현수(볼티모어)나 서건창(넥센)과 같은 '육성 선수 신화'를 쓰게 될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이러한 이들의 스토리가 조명받기에 스포츠가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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