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해설(解說)은 기사 특성상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화뉴스] 모세(크리스찬 베일 분)와 람세스(조엘 에저튼 분)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절친한 사이입니다. 람세스가 파라오에 즉위한 뒤 비돔을 시찰하던 모세는 노예 신세의 유대인들로부터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람세스는 모세가 유대인이라는 참소를 듣자 유배를 보낸 뒤 살해하려 합니다.

세 번의 스펙타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구약 성서의 모세를 주인공으로 유대 민족의 이집트 탈출을 묘사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작입니다. 모세의 청년기부터 노년기를 154분에 걸쳐 묘사합니다. 모세의 출생의 비밀과 모세와 람세스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은 묘사되지 않으며 회상 장면 삽입 없이 대사로만 처리됩니다. 시간 순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모세의 노년기는 결말의 마지막 장면에만 잠시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러닝 타임은 그의 청년기 및 장년기에 할애됩니다.

리들리 스콧의 전매특허 스펙타클은 세 번에 걸쳐 제시됩니다. 첫째, 서두에 제시되는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전투입니다. 모세가 람세스를 죽음의 위기로부터 구출해 예언이 적중하는 장면입니다. 분량이 길지는 않습니다.

둘째, 유대 민족의 지도자가 된 모세가 게릴라전을 통해 이집트를 압박하고 그걸로 모자라 신이 직접 나서 이집트에 온갖 재해를 야기하는 장면입니다. 재해 장면은 악어를 시작으로 개구리, 파리, 메뚜기 등이 떼를 지어 출현하며 전염병이 돌고 이집트의 어린아이들이 몰살당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셋째, 너무나도 유명한 유대 민족이 홍해를 건너는 클라이맥스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갈라 유대 민족이 건너자 뒤쫓던 이집트 군대가 바닷물에 휘말려 몰살당했다는 구약 성서의 기록은 기적이기에 사실성은 부족합니다. 따라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나름의 사실성을 부여해 재해석합니다. 즉 홍해는 갈라진 것이 아니라 썰물로 인해 바닷물이 낮게 남아 있었고 유대 민족이 건너자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바닷물이 엄청나게 불어 이집트 군대가 전멸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에 앞서 람세스가 이끄는 이집트 군대는 다급한 추격으로 인해 낭떠러지에서 상당수의 군인들이 추락해 타격을 입는 것으로 처리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볼거리와 함께 사실성을 추구하려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세 번의 스펙타클은 그다지 인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에 기대를 걸었던 독창성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스케일과 시간 배분 모두 허전합니다. 화면비가 아이맥스 스크린을 꽉 채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3D 효과도 미미합니다.

주인공 외 존재감 희박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스펙타클이 아닙니다. 각본과 편집에 있습니다. 주인공 모세를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들의 존재감이 매우 희박합니다. 모세의 친구이자 라이벌 람세스마저 그러합니다. 람세스를 입체적 인물로 묘사하지 못하고 평면적인 악역으로 묘사합니다. 람세스의 결혼과 아들 출산 장면은 생략되었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엄청난 해일에 휘말려 이집트 군대가 전멸하지만 람세스만이 홀로 살아남은 결말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모세의 출애굽으로 인해 람세스가 사망하지 않은 것은 자명한 역사적 사실이기에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 람세스를 살려둔 결말은 불가피하나 모든 병사들이 수장된 가운데 그만 홀로 생존하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티(존 터투로 분), 미리암(타라 피츠제럴드 분), 비티아(히암 압바스 분), 여호수아(아론 폴 분), 아론(앤드루 타벳 분) 등 문헌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지나치게 간략화해 개성이 부족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79년 작 '에이리언'을 통해 세계적 배우로 출세한 시고니 위버는 람세스의 어머니 투야로 출연하지만 퇴장, 즉 죽음이 묘사되지 않으며 마치 카메오처럼 비중이 거의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등퇴장이 명확히 묘사되지 않으니 서사의 흐름은 뚝뚝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인상적인 조연은 모세가 몰락한 뒤에도 공손하며 충직하게 모세를 대하는 키안(다르 살림 분)입니다. 키안은 모든 이집트인이 부정적인 것은 아님을 리들리 스콧 감독이 강조하기 위한 캐릭터로 보입니다.

모세의 변화는 사고 탓?

공간적 배경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당초 유대 민족의 거주구역 비돔은 이집트의 도읍 멤피스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것처럼 암시됩니다. 하지만 모세가 유대 민족의 지도자가 된 뒤에는 멤피스를 제집앞마당처럼 들락거립니다. 유대 민족의 이동이 묘사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멤피스와 비돔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모세가 9년 만에 파라오 궁전의 마구간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나타나는 장면은 어색함의 극치입니다.

   
 

모세가 신을 만나 십계명판을 만드는 사이 아론이 금송아지로 우상 숭배를 하는 장면은 짤막하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모세가 하산해 우상 숭배에 분노해 십계명판을 박살내는 장면은 생략되었습니다. 결말에서 늙은 모세와 성궤가 함께 등장하지만 성궤의 제작 과정 또한 생략되었습니다. 갑자기 늙어버린 모세도 어색합니다.

러닝 타임이 길고 볼거리도 많지 않은데다 서사가 분절적이니 몰입도가 떨어져 지루합니다. 에피소드의 단순한 나열에 그쳐 마치 10화 이상 방영된 장편 TV 드라마를 억지로 재편집한 극장판을 보는 듯 서사 구조가 헐겁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처럼 추가 장면을 포함해 재편집한 감독판이 공개될 경우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모세의 갑작스런 심경 변화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유대 민족에 대한 동정은커녕 유대인이라는 자의식이 부족해 이민족 여성 십보라(마리아 발베르데 분)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던 모세는 머리를 다친 뒤 갑자기 신과 대화하고 유대 민족의 지도자로 급부상합니다. 회의론자가 복음주의자로 돌변한 것입니다. 주인공의 뜬금없는 변화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구멍 난 각본, 리들리 스콧이 극복 못했다

설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 즉 야훼를 소년으로 암시한 것입니다. 불붙은 떨기나무와 함께 모세의 앞에 처음 나타난 신은 소년의 모습과 달리 온갖 잔혹한 재앙을 불러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은 모세와 논쟁을 벌이는 의견 불일치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관철시킵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개봉 전부터 소재로 인해 이스라엘의 건국 및 팔레스타인 탄압을 정당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십자군 침공을 소재로 한 '킹덤 오브 헤븐'에서 그랬듯 리들리 스콧은 공정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후반부에 모세가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유대 민족이 가나안 땅을 되찾으려 하면 침략자로 간주될 수 있다. 가나안 땅을 되찾는다 해도 유대 민족의 분열이 뒤따를 것이다”라며 유대 민족을 마냥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러닝 타임 내내 유대 민족은 선, 이집트는 악으로 묘사되었기에 후반부 모세의 대사는 면피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시 성서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에 비해서도 재미가 부족합니다.

권력을 누리던 장군 신분의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추락한 뒤 와신상담을 거쳐 지도자로 재탄생하는 줄거리의 시대극이라는 점에서는 리들리 스콧의 2000년 작 '글래디에이터'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각본의 완성도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의 편차가 널뛰는 리들리 스콧의 징크스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도 되풀이됩니다. '아메리칸 갱스터',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각본을 쓴 스티븐 자일리언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각본을 맡았지만 구멍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대는 컸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는 점에서 리들리 스콧의 2010년 작 '로빈 후드'와 비슷합니다. 차라리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에게 돌아간 '벤 허'의 리메이크를 리들리 스콧이 맡았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엔딩 크레딧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문구는 리들리 스콧이 2012년 사망한 동생 토니 스콧을 기리는 'For My Brother Tony Scot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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