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우리의 시간은 1초도 멈추지 않고 지나갑니다. 지구를 멈춰 시간을 조종할 수 없으니, 우리가 직접 뛰고 달리면서 시간을 조종해야 하죠.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시간을 조종하는 엄청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필리핀 유학길에 올라 8년이라는 시간 끝에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그녀. 그 가능성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그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가능성을 만들고 그 가능성을 기회와 성공으로 바꾼 안태양 님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 진 행 자 : 이우람 (문화뉴스 편집장· 마포 FM_100.7MHz 이우람의 트렌드픽업쇼DJ)
▶ 게 스 트 : 푸드컬쳐디렉터, 서울시스터즈 CEO 안태양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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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ㄴ 20대의 시작은 필리핀 도피성 유학이었으나 8년의 고생 끝에 무한 가능성을 가지고 돌아온 푸드 컬쳐 디렉터이자, 서울시스터즈 대표인 안태양입니다.

독자들이 안태양이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추가 설명 부탁한다.
ㄴ 2008년에 필리핀에 혼자 유학 갔다가 2010년에 서울시스터즈라는 떡볶이집을 차렸다. 야시장에서 처음 시작한 후 3년 후에 7개의 매장 개점을 하고 많은 이슈를 낳았다. 그리고 그 덕에 중국 회사에 스카우트 돼서 신사업 개발 본부장 일을 하면서 한국 브랜드 2개를 만들었다. 한국에 들어온 지는 3개월 정도 됐다.

   
▲ 안태양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 계정

필리핀에서 서울시스터즈라는 떡볶이 가게를 열게 된 스토리가 궁금하다.
ㄴ 필리핀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한국 레스토랑에 가면 '음식을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설명해주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가 내가 한번 직접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있던 여동생에게 집 보증금을 빼서 필리핀으로 오라고 한 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이 없었던 것 같다. 장사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보고 시작했던 것 같다

바로 매장을 낼 수 있었던 건가?
ㄴ 동생이 집 보증금을 빼서 필리핀에 왔는데 매장을 얻을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은 아니었다.  친구가 필리핀 야시장을 소개해줘서 야시장에서 시작했다. 한국 음식을 파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잘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야시장 자릿세는 어느 정도였나? 처음에 장사는 잘됐는지
ㄴ 필리핀 야시장은 한 달 단위로 계약해서 혹시 내가 망하더라도 큰 위험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장사를 시작한 첫날에 음식 100인분을 준비했는데 딱 2인분 팔았다. 나머지 98인분을 집에 싸가지고 와서 다 버렸다.

떡볶이를 버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ㄴ 굉장히 두려웠다. 떡볶이는 한국 사람에게 굉장히 친근하고 좋은 음식 아닌가. 그런 좋은 음식을 내놓으면 당연히 잘 팔릴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고, 한국에서 데려온 동생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막막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맞물려서 동생 모르게 울곤 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ㄴ 6개월 정도가 걸렸다. 첫 주에는 2인분을 팔았고 둘째 주에는 3인분을 팔고 그렇게 계속 매출이 10만 원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나나 동생이나 전부를 걸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장사 관련 서적, 기사, 영상 등 볼 수 있는 자료를 모조리 찾아서 보고 공부했다. 책만 100권 이상 읽었다. 조금씩 소비자와 판매자의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옆에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ㄴ 100인분을 준비해서 어차피 2~3인분을 팔고 나머지를 다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통해 배운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봤다. 손님들에게 공짜로 음식을 주고 맛을 평가해달라고 한다든가, 하나 사면 3개 줄 테니 친구들을 데려오라는 작전도 써봤다. 그리고 다른 야시장 점포와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꼬박꼬박 인사하고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물어봤다. 현지 분들에게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서울시스터즈가 대박 났을 때 이야기를 듣고 싶다.
ㄴ 6개월 정도 후 어느 날인가, 떡볶이를 푸고 또 퍼도 손님이 안 줄어든 날이 있었다. 그날 우리 서울시스터즈가 드디어 대박 났다고 딱 느꼈다. 동생이랑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동안 공부를 하면서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생각, 손님들에게 각인되는 방법, 마케팅 등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게 빛을 보지 않았나 싶다.

   
▲ 안태양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 계정

서울시스터즈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
ㄴ 수많은 브랜드 중에 우리를 각인시킬 만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필리핀 현지에서 20대 한국 여자 자매가 장사한다는 걸 특징으로 잡아서 브랜드 정체성으로 만들고 싶었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과 자매인 시스터즈를 붙였다.

2010년 당시와 지금 필리핀 현지 분위기를 비교해 보면 어떤가
ㄴ 2010년에는 딱 한류 붐이 일었을 때였고 필리핀에 한인들이 음식점을 많이 낸 때였다. 시기를 잘 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전문적인 디렉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은 중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 한국 브랜드 현지 진출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맛과 한류 이미지로만 장사를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울시스터즈 성공 후 중국 회사에 스카우트 되고 다른 브랜드를 만들었다던데
ㄴ 첫 번째는 '케이펍 비비큐(K-pub BBQ)'라는 고기 뷔페 브랜드고, 두 번째는 '오빠 치킨'이라는 한국형 치킨 레스토랑이다. 고기 뷔페와 달리 치킨 레스토랑은 준비 기간만 2년이 걸렸다. 직접 치킨집에서 일하면서 준비했다. 11월 말에 오픈 준비 중이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ㄴ '오빠 치킨'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생각이 전혀 기본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치킨을 먹고 자랐지만 외국인들에겐 생소한 음식이라는 것. 그리고 그동안 많이 먹었지만, 만들어보진 못했다는 것들이었다.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는지
ㄴ 중국 회사에 입사한 것을 가장 잘한 일로 꼽는 반면, 가장 아쉬운 것은 팀을 꾸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중국 사람들, 특히 화교 분들은 최고의 사람들로 자신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팀을 만든다. 나는 여동생과 처음 시작하지 않았나. 친자매이기 때문에 잘 맞을 거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사업적으로는 많이 부딪혔다. 물론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것도 동생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살짝 아쉬움은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자신만의 팀을 꾸릴 계획이 있는 건가
ㄴ 한국에 들어와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하고 있다. 친구나 지인 등 기존 인맥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생각,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위해 다양한 강연과 모임에 나가고 노력하고 있다.

요새 강연도 많이 하고 있던데 주로 어떤 내용으로 강연하는지 궁금하다.
ㄴ 외식업 창업을 했거나 할 예정인 분들이 대부분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경우 매뉴얼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만들어야 나중에 실제로 해외진출이 용이하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강연하고 있다.

   
▲ ⓒ K-pub BBQ 홈페이지

어렸을 때 안태양 님의 아이돌(우상)은 누구였나, 또 지금은 누구인가
ㄴ 어렸을 때 이효리 씨를 좋아했다. 같은 여자로 봤을 때 멋있고 당당한 모습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도 그런 당당한 여성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사랑하면서 사업하는' 사람이 우상이다. 준오헤어의 강윤선 대표님을 들 수 있다. 강 대표님을 정말 존경한다. 여성 CEO 중에 가장 여성스럽고 사랑이 넘치는, 공부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분 자체가 나에게 큰 삶의 동기가 된다. 그분의 손짓 발짓 걸음걸이 말투까지 닮고 싶다.

그럼 혹시 강윤선 대표님과 함께하고 싶은 일이 있나
ㄴ 앞으로 한국의 K뷰티가 해외 시장에서 조금 더 크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 제품이 유명하지만, 여전히 동남아 현지에 가면 50% 정도가 한국 제품을 안 써본 사람이다. 그리고 한국 제품은 디테일에 강하고 그건 즉 고품질의 제품을 말한다. 즉, 한국 제품을 한번 쓰면 계속 쓸 수밖에 없다.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보고, 함께 하게 되면 좋을 것 같다.

과거에 필리핀으로 유학 간 이유가 궁금하다. 왜 필리핀으로 가게 된 건가
ㄴ 만일 그때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있는 줄 알았다면 호주에 갔을 것이다. 그게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단순하게 주변 친구들이 '필리핀에 가면 큰돈 들이지 않고 영어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필리핀에 가게 됐다. 큰 이유는 없었지만, 한국에서 지내는 게 많이 답답했다.

필리핀에 가서 적응을 빨리한 편인가?
ㄴ 필리핀에 갔을 때가 2008년 8월이었다. 4개월 정도 정말 고생하다가 12월에 한 번 쓰러진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부당한 일이 있어도 얘기를 할 수 있는데, 필리핀에 처음 갔을 땐 화가 나도 영어를 못하니 말도 못하고 소리만 질렀다. 그게 스트레스로 계속 쌓였다. 외로움과 스트레스들이 쌓이면서 쓰러졌던 것 같다.

크게 쓰러지고 난 후에 어떻게 극복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인가
ㄴ 그때 '나는 행복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내가 밖에도 나가고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필리핀 한인 사이트를 뒤지다가 필리핀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친구들 과외를 하게 됐다. 과외를 하다가 서울시스터즈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됐다.

중국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들었다. 귀국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은지
ㄴ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들어온 것에 만족한다. 그런데 커리어 적으로 보면 아직 조금 더 길게 봐야 할 것 같다. 안태양이라는 사람을 많이 알리고 일도 더 많이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안태양 님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에게 조언해준다면
ㄴ 외국에 많이 나가보라고 하고 싶다. 여행하는 것 말고 6개월이든 1년이든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나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편견에 놀라고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외식업은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요즘에는 예술 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

안태양만의 차별화된 자기관리 노하우는 무엇인가
ㄴ 내 일과 관련 없는 분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한다.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쓰면서. 예를 들면 사진이나 그림, 꽃, 인공지능 'Io T' 등 새로운 뇌 흐름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아예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 나누며 스트레스를 푼다.

좌우명이 무엇인지
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와 "The end of situation everything is happy ending" 이 두 가지를 항상 생각하며 살고 있다. 힘든 시간은 언제든 있었다. 떡볶이를 팔 때도 힘들었고 '오빠 치킨' 브랜드를 준비하면서도 힘들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좋게 끝난다고 생각하고 힘든 시간을 견디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청취자분들, 많은 응원을 보내주고 있는 분들에게 한마디
ㄴ 8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많은 사랑과 응원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다들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내가 부족한 것이 뭔지 찾고 길을 찾고자 노력한 그녀. 짧은 인터뷰였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해준 푸드컬쳐디렉터이자 서울시스터즈 CEO 안태양 님께 감사 인사 전하며 오늘 인터뷰 마칩니다.

문화뉴스 최예슬 dptmf6286@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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