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과 도경수의 호흡…'잽'이 강력한 역할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떠오르는 제목 '형'. 단 하나의 글자가 큰 스크린 한가운데 위치했을 때, 많은 여백에서 오는 공허함은 이 단어를 유독 쓸쓸하게 만든다. '형'이란 영화의 정서도 그와 같다. 형이 동생을 움직이게 하는 영화고, 형이 홀로 영화의 동력을 끌어내야 하는 고독한 영화다. 이 외로운 역할을 조정석이 맡았다.
 
'형'은 조정석이라는 배우와 그의 캐릭터 외엔 글로 표현할 것이 별로 없는 영화다. 그는 이 영화로 좋은 연기를 펼쳤고, 영화 후반부에 감정의 파도를 몰고 오는 것까지도 성공한다. 뚝뚝 끊어질 것만 같았던 이야기의 중심을 잡으며, 도경수와도 좋은 호흡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라는 영역에서 그의 역할이 고정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이 글은 '형'을 통해 조정석을 집중 조명하는 글이 될 것이다.
 
   
 
 
도경수와의 호흡
인기 있는 아이돌(EXO)이면서 배우를 겸업하는 도경수는 인상적인 데뷔를 했고, 꾸준히 스크린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순정'의 성적표가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 '카트'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스토리가 탄탄했던 좋은 작품이었다. 더구나 '카트'는 사회성 짙은 '필요한' 영화이기도 했다. 이렇게 도경수는 좋은 작품으로 대중과 만났고, 그 속에서 적절한 배역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했다.
 
'형'은 도경수가 '순정' 이후 두 번째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2017년엔 대작 '신과 함께'에도 출연한다고 하니, 배우로서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이점(혹은 핸디캡)을 떼고서 연기 자체를 바라볼 때, 그는 아직 주연으로서 불안정한 지점이 있다. '형'에서 고두영(도경수)은 몇몇 순간에서 영화의 가정을 쥐고 흔들 정도로 인상적이지만, 가끔은 홀로 감정이 튀어나가기도 했다. 감정이 고조된 장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으나, 힘을 빼야 할 지점에서 과도하게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강약 조절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는데, 이는 배우로서 겪어야만 할 성장통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도경수의 연기를 조정석이 잘 받아줘 극의 흐름을 이탈하지 않게 했다. '형'의 두 남자는 함께 있을 때, 좋은 앙상블을 보인다. 고두식(조정석)은 지질하면서도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면이 돋보이는 형인데, 그 성격처럼 도경수의 연기에 물 흐르듯 능청스럽게 반응해 근사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힘을 뺀 조정석이 '형'을 더 강하게 한 셈이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맥스 역시, 그가 쌓아온 능청스러움이 거대한 감정의 태풍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잽이 강력한 역할
'형'에서 조정석은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던 '납득이'를 다시 가져온다. 고두식의 연애학 강의와 상대의 대사를 여유있고, 재치있게 받아치는 모습은, '건축학 개론'의 감초 납득이를 자연스레 오버랩하게 한다. 납득이가 만든 개그 코드가 좋았던 관객은 '형'에서도 꽤 많이 웃게 될 것이다.
 
'형'의 고두식은 힘을 줘서 내뱉는 대사보다는 혼자 속삭이는 대사, 주 대사 후에 내뱉는 부차적인 대사가 더 매력적이다. '애드립'일 것 같은 그 대사가 정겹고 재미있으며, 영화를 통통 튀게 한다. 그리고 이는 조정석이 영화라는 영역에서 보여준 강점이기도 하다. 그는 강렬한 한 방보다 잽으로 장면에 틈을 만들고,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을 공간을 창출해 낸다. 그는 영화라는 링 안에서 좋은 복서이며, 영화라는 게임을 운영할 줄 아는 좋은 플레이 메이커다.
 
   
 
 
납득이라는 빛과 덫
'건축학 개론'이후 조정석은 '관상', '역린',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특종: 량첸살인기', '시간이탈자' 등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배제하고, 관객의 반응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관상'은 900만명으로 대성공을, '역린'에서의 380만과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200만은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특종: 량첸살인기'와 '시간이탈자'는 손익분기점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 여기서, 조정석이 흥행에 재미를 못 본 작품은 진지하고, 그가 맡은 역할이 웃음기를 많이 뺀 캐릭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종: 량첸살인기'를 굉장히 인상 깊게 받던 관객으로서, 그의 연기는 장르에 관계없이 모자람이 없었다. 늘 좋은 연기를 한다. 그런데도 그가 영화에서 빛났던 역할은 주로 유머러스하고, 여백이 많은 허술한 캐릭터였다. 이는 대중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납득이'스러운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관객이 배우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없는 것보다는 좋겠지만, 이렇게 한정된 영역에서만 관객이 호응한다는 게 조정석에겐 썩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는 드라마에서도 최근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더 킹 투하츠'의 은시경이라는 역도 있었지만, 근래에 그가 인기를 얻은 드라마 속 인물 '오 나의 귀신님'의 강선우와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은 까칠하면서도 귀여운 면을 가진 코믹한 캐릭터였다. 조정석은 이러한 장르, 이러한 가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생 캐릭터 '납득이'는 그에게 빛일까 덫일까. 덫이라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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