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대문호 푸쉬킨, 그의 생애와 대표적 작품들,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홍현주 기자
  • 승인 2019.10.0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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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적으로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예브게니 오네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대위의 딸', '보리스 고두노프'
검열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던 푸쉬킨, 결투로 마무리된 그의 비극적인 생애
출처: 픽사베이

[문화뉴스 MHN 홍현주 기자] 톨스토이, 고골, 도스토옙스키 등 위대한 작가들이 많은 러시아에서도, 전 국민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작가는 푸쉬킨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Алке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러시아 사람들은 어릴적 부터 푸쉬킨의 작품 한 두 구절을 통째로 외운다. 러시아에는 'Пхшкин, Моё всё!' (푸슈킨, 나의 모든 것!) 이라는 유명한 어구가 있을 정도이다.

가장 사랑을 받는 시인이기 때문일까, 러시아 지역에서 그의 청동상을 찾는 것은 쉽다. 또한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는 그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보전되고 있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교외에 있는 도시는 '푸쉬킨'시로, 푸쉬킨을 기리기 위해 푸쉬킨의 이름을 따 붙였다.러시아는 왜  그렇게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의 생애와 대표적 작품에 대해 알아보자.

 

푸쉬킨의 생애

출처: 픽사베이

그는 1799년에 태어나 1800년대 초에 주로 활동했으며, 1837년에 생을 마감했다. 19세기의 러시아의 낭만주의는 곧 푸쉬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을 집필하고 러시아의 근대문학을 발전시켰다.

푸쉬킨의 외가는 표트르대제의 총애를 받았던 한니발의 후손이다. 그는 1799년에 태어난 이후 주로 유모나 할머니 손으로부터 양육된다. 푸쉬킨은 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는 농민의 생활상이 무척 사실적으로 서술되어있는데, 그가 어릴적 유모로부터 러시아 농민계층의 생활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12살 때, 예카테리나 부속학원에 들어간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좋아하는 그림과 문학에는 두각을 나타낸다. 학원의 진급시험에서 자작시 '황제촌의 추억'을 낭송하고 제르자빈은 이 시에 감동하여 그를 한다.

푸쉬킨은 18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외무상의 관리가 된다. 하지만 그는 일보단 사교계와 시쓰기에 푹빠져 있었다. 그는 아무리 전날 과음을 하거나 밤늦게 파티를 했어도, 매일 아침에 일어나 2~3시간 씩 집필활동을 했다고 한다. 비교적 짧은 생애에도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키며 천재성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이후 그는 '루슬란과 루드밀라'를 완성하여 젊은 세대들의 환영을 받고 문단의 중심에 오른다. 그러나 그가 적은 자유주의 사상의 시로 인해 황제의 미움을 사고 남러시아의 벽지로 유형을 간다. 유형을 하며 많은 곳을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문화를 접한 그는 한때는 집시들의 삶에 매료되어 그들과 같이 생활하며 장편서사시인 '집시'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푸쉬킨이 이 무렵에 쓴 시들은 바이런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시속에는 천재의 비상함이 있다며 그를 극찬하였다.

이후 푸쉬킨은 항구도시 오데사로 전근을 간다. 이곳에서 그는 '예브게니 오네긴'과 '집시'를 계속 써내려간다. 그는 이 지역에서 많은 단시들을 쓰지만, 이후 친구에게 보낸 무신론에 찬성한다는 편지로 인하여 외무성에서 박탈당하고 미하일로프스코예로 보내진다. 

이 시기에 그의 문학은 서서히 완숙기로 접어들어 까람직의 역사책을 토대로 '보리스 고두노프'를 창작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산문작가의 역량을 보여준다. 이 무렵,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발생하고 거사에 동참하지 못한 푸쉬킨은 친구들을 추모하는 '시베리아로의 전언'이라는 시를 쓴다. 이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유형을 받으나, 황제가 푸쉬킨이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유형에서 풀어주는 대신 그의 작품을 직접 검열하겠다고 선언한다.

그의 작품에는 계속해서 개작 명령이 내려지는 등 창작의 자유는 여지없이 무시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1830년 그는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약혼하고 이후 '벨킨이야기'를 비롯한 30여편의 서정시와 작품을 써낸다.

1830년 볼디노에서 '예브게니 오네긴'은 완성되었다. 이후 1831년에 결혼을 하고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다만, 이후 결투로 인하여 1837년에 생을 마감한다.

 

대표적인 작품

출처: 픽사베이

그는 시와 소설 희곡에 모두 능한 작가였다. 대표적인 시로는 '예브게니 오네긴', '루슬란과 류드밀라(1820)', '청동기사(1833)'가 있다. 대표적인 산문으로는 '벨킨 이야기(1830)',
 '스페이드의 여왕 (1834)', '대위의 딸(1836)' 등이 있으며, 희곡으로는 '보리스 고두노프 (1825)'가 있다.

특히 '예브게니 오네긴'은 시로 쓴 소설로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인물의 생애, 그와 타티야나 라리나와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러시아 오페라와 연극의 소재가 되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당시 차르체제, 즉 모든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에서 오네긴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에 권태를 느끼는 '잉여인간'의 전형이다. 푸쉬킨이 검열에 의해 많은 억압을 받았다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더욱 깊이 이해가 될 것이다.

작품의 서문에는, 오네긴의 친구가 등장하여 오네긴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사실은 전지적 작가임을 끝에서 상기시키며 문학 안과 밖을 드나든다. 오네긴의 친구로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푸쉬킨을 보면 그의 생애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에게는 이후에는 러시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명령이 내려지는데, 작품에서 그는 자유를 갈망하는 등 자신의 상황을 나타낸다.

푸쉬킨이라는 인물의 맥락을 떠나도, 이 작품은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과 기교로 인해 러시아의 문학을 한층 발전시켜 주었다. 또한 작품의 등장인물인 타티야나 라리나는 아직까지도 많은 러시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푸쉬킨의 산문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놓인다. 이 작품은 서술이 모두 환상과 사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보여주면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주는 푸쉬킨의 기교를 보여준다.

'대위의 딸'에서 그는 역사 자료를 실제로 조사해서 문헌과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다. 현재에는 이러한 기법이 소설을 쓰는데 너무나 보편적인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사실에 근거하여 작품을 쓰는 등의 방식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새롭고 천재적이었다. 그는 귀족의 삶과 농민의 삶을 양쪽 모두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생생하게 묘사하여 러시아 민담, 농민들의 민속 전통, 사고방식, 전통적 생활양식을 편견 없이 받아들여 작품에 적극 활용하였는데 이것이 현재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당시의 러시아 농민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참고가 될 정도이다.
 

그에 대한 일화

출처: 픽사베이

당시에 러시아 여성 귀족에게 필수품이었던 것은 '앨범'이다. 이때 '앨범'은 우리가 사진을 보관하는 것과같은 개념이 아니고, 일종의 다이어리로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앨범에 시를 적어달라고 청하기도 하고 교환하기도 하는 문학 향유, 혹은 사교의 수단이었다. 푸쉬킨도 많은 여성들의 앨범에 시를 자주 써주었다고 알려져있다. 실제로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당대 귀족 여성의 앨범으로부터 발췌되어 알려지는 푸쉬킨의 시들이 있다.

푸슈킨은 여성의 발을 굉장히 좋아했다. 아직 남아있는 그의 원고를 보면 그가 구석구석에 그린 그림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의 자화상, 고양이 외에도 여성의 발이 많이 보인다. 그의 작품인 '예브게니 오네긴'에서도 오네긴의 친구로 등장하는 그는 자신의 발에 대한 사랑을 시구로 나타낸다.

푸쉬킨은 결투를 하다고 죽었다. 이에 대한 일화도 존재한다. 당시 푸쉬킨의 아내인 나탈리아와 당테스에 대한 추문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미 널리 퍼져 있었고 사람들이 푸시킨을 조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푸시킨은 결투를 신청하게 되었다.

이 결투에 앞서 단테스는 푸시킨의 부인 나탈리아의 큰 언니인 카타리나와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표함으로써 결투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단테스는 오히려 처제가 될 나탈리아와의 연애관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결국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오직 결투의 장에 서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푸시킨은 결투에서 복부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이틀 후 사망했다.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
Don't be sad or mad at it!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On a gloomy day, submit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Trust that fair day will come, why grieve you?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왜 슬퍼하는가?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ЕТ
Heart lives in the future, so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What if gloom pervade the present?
현재는 한 없이 우울한 것

ВСЁ МГНОВЕННО, ВСЁ ПРОЙДЁТ
All is fleeting, all will go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ЧТО ПРОЙДЁТ, ТО БУДЕТ МИЛО.
What is gone will then be pleasant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여겨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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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적으로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예브게니 오네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대위의 딸', '보리스 고두노프'
검열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던 푸쉬킨, 결투로 마무리된 그의 비극적인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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