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헌신은 욕망을 감췄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영화 '고령화가족'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피를 나눈 가족만이 가족이 아니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가족의 참의 미를 알게 해준다. 그런데 그건 모두 엄마의 헌신이 있었을 때 가능했다. 물론 그 헌신이 우리가 아는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나 텅 비어 있는 컴컴한 부엌에서 우리의 모든 끼니를 마련해준 엄마에게'

이 책의 시작점만을 보았을 땐 엄마에 대한 훈훈한 내용의 전개가 예상됐다.그런데 그러한 전개를 뒤엎는 주인공들의 캐릭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막장드라마도 이런 막장드라마가 없겠다 싶을 전개이고, 센캐(?)의 주인공들이다.

인생에서 실패하고 늙은 엄마에게 돌아온 삼남매의 찌질한 삶이 주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반전은 엄마에게 있다. 엄마는 젊은 시절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지 않았나. 엄마도 여자였다. 그녀에게도 애절한 사랑이 있었다. 비록 그것이 가족들에게 상처를 줬을지언정.. 젊은 시절의 엄마는 그저 여자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엄마는 헌신적으로 삼남매에게 밥을 차려준다. 실패하고 돌아온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그들을 위해 밥을 차린다. 그래서 엄마의 부엌은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상차림은 엄마로써의 헌신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자신은 잊고 엄마가 된 것이다. 본인 마음속에 여전히 여자로서 욕망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 소설은 영화화되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여자로서 욕망은 인정하느냐, 마느냐이다. 그래서 결말도 다르고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 영화에는 나오기도 한다.

주인공 '인모'의 시점이 아닌 '엄마'의 시점으로 책을 보면 그 의미가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책 소개]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의 작가 천명관 두번째 장편소설.

<고래>가 하나의 이야기가 또다른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며 한바탕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장을 펼쳐 보였다면, <고령화 가족>은 한 가족 안에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벌이는 온갖 사건사고와 그들간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그린다.

데뷔 영화가 흥행에 참패한데다 '그해 최악의 영화'에 선정되기까지 하면서 십 년 넘게 충무로 한량으로 지내던 오십줄의 늙다리 '나'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회생불능의 상황에 처한 '나'에게 "닭죽 쑤어놨는데 먹으러 올래?"라고 무심한 듯 물어오며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엄마. 고민의 여지 없이 나는 다시 엄마 집으로 들어가 살기로 한다.

엄마 집엔 이미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사업한답시고 다 날려먹고 지금은 120kg 거구로 집에서 뒹굴거릴 뿐인 백수 형 오함마가 눌어붙어 사는 중이고, 곧이어 바람피우다 두번째 남편에게서 이혼을 당한 뒤 딸 민경을 데리고 들어오는 여동생 미연까지, 우리 삼남매는 몇십 년 만에 다시 엄마 품 안으로 돌아와서 복닥복닥 한살림을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껏 '나'만 모르고 있던 우리 가족의 과거사와 각자가 감춰두고 있던 비밀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세련되지도 쿨하지도 않은 이들 가족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통해 작가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보금자리도 아닌, 인생을 얽매는 족쇄도 아닌 '가족'의 의미를 찾아간다.

 
[글] 아띠에떠 아니 artietor@mhns.co.kr 

아니 [부사]  1. 부정이나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말. 2. 어떤 사실을 더 강조할 때 쓰는 말.  모두 공감하지 못해도 좋다. 설득시킬 마음은 없다. 내 삶에 나도 공감하지 못한다. 대학에서 문학평론을 전공하고, 언어교육학으로 석사를 마쳤다. 지금은 독서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