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실수연발' 리뷰

   
 

[문화뉴스] 캐럴이 온 거리에 울려 퍼지며, 제야의 종소리가 가까워지는 이맘때 즈음이면, 시린 겨울도 제 온도를 잊는 듯하다.

시릴수록 더욱 따듯한 연말을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딱'인 연극이 있다. 바로 국립극단의 '실수연발'이다. 국립극단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품,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대미를 장식할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극 '실수연발'을 택했다.

이를 위해, 올 상반기 '국물 있사옵니다'로 탁월한 코미디 감각을 보여준 서충식, 남긍호 콤비가 다시 뭉쳤다. 공동 연출을 맡은 서충식, 남긍호 연출은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요즘, 관객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며, "잠시라도 힘들고 무거운 일상과 현실을 떠나 다른 세계, 다른 이야기를 경험하며 좋은 에너지를 받아 가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더구나 올 한 해 꾸준한 활약을 선보였던 국립극단 2016 시즌단원들이 총출동했다는 점은 그 어느 특별한 게스트 출연 소식보다 더욱 연말을 안락하고 의미 있게 장식하는 점이기도 했다. '기분 좋은 웃음'이 어색해진 요즈음, 작품이 가진 희극성 뿐 아니라, 극단 시즌단원들의 단란한 분위기와 호흡이 관극 내내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를 자연스레 띠게 만든다. 조금씩 어긋나는 합은 애교로 보일 정도다.

이중 가장 돋보이는 배우들은 단연 '윤희단거리패'다. 연기 뿐 아니라, 갈고 닦은 악기 연주 실력까지 선보이는 '윤희단거리패'는 배우 박윤희(기타)를 중심으로, 황순미(건반), 정혜선(플룻), 정현철(드럼)까지, 극중 세계와 밴드 팀을 바삐 오가고 있었다. 그들은 희극적 분위기를 잘 살리기 위해 우스운 몸동작이나 상황에 걸맞은 효과음이나 배경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었다.

 

   
 

'실수연발'은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헤어진 쌍둥이 형제 안티포러스들(임영준, 안병찬)과 그들의 쌍둥이 하인 드로미오들(김정환, 김정호)을 중심으로, 오해와 해프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다. 쌍둥이들의 아버지 이지온(박윤희)의 이야기로부터 탄탄한 기승전결을 보이고 있는 이 서사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실수가 쌓이고 오해가 심화시키고, 그럴수록 관객들은 웃음의 농도를 더 진하게 머금게 된다. 비극과 희극을 한 끗 차이로 넘나드는 셰익스피어의 재치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더구나 극에는 셰익스피어(백석광)가 카메오로 등장하며 관객들에게 깨알 같은 반가움과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참고로 극중 셰익스피어가 두 차례 이상 등장한다. 잘 찾아보기 바란다.) 뿐만 아니라, 이 극은 그 어느 때보다 배우들이 제 기량을 드러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었다. 언어유희 뿐 아니라 슬랩스틱이 거듭 등장하는데, 남긍호 연출은 다양한 동물들의 움직임을 참고해 역할마다 특이하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더했다고 한다. 이 움직임들은 각 캐릭터의 성격을 완성시켜주며 동시에 희극적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특히 당나귀와 미어캣을 떠올리게 하는 드로미오 역의 배우들은 유연한 신체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거짓말처럼' 극중 인물들의 고통은 말끔히 해소되고, 다함께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안티포러스들과 드로미오들의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안티포러스와 드로미오들은 각각 독립된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고, 자신들도 그를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의문과 미궁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대단원 쌍둥이들의 재회, 곧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장면은, 그동안의 얽히고설킨 개별 주체들의 불안과 불행을 시원히 풀어냈다.

 

   
 

고조되는 오해 속에, 두 안티포러스와 드로미오는 광인으로 취급받아 퇴마사에 의해 포박돼 끌려가거나, 위기의 순간에 수녀원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철저히 비극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이 안에서도 희극적 요소를 찾아내 웃음을 그려내기 마지않는다. 마치 현재 우리들의 시공성과도 포개어지는 부분이다.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던 풍자와 해학적 표현들. 셰익스피어가 다시 돌아와 2016년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습을 본다면 무릎을 탁 치지 않았을까.

올 연말은 시원한 웃음과 함께, 잔잔한 미소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그리고 2016년 12월 9일 오후 4시 10분경, 우리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비극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면, 희극은 반드시 눈에 띠기 마련이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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