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시대로 막 접어들었을 즈음이다. 국밥 한 그릇을 찾아 들어갔던 어느 조그만 소규모 식당에서 이 문구를 처음 대했었다. 궁금했다. 왜 물은 셀프(self)일까? 근원은 알 수 없으나 분명 그 누군가의 인력부족, 인건비 절감차원에서 부터의 발상이었을 터, 소위 콩글리시인 이 유행어에서 왠지 권위를 앞세워서 대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을 향한 서민들의 애잔한 저항이 느껴짐은 필자만의 자의적 느낌이었을까.

 

셀프(self): 자아, 자신, (어떤 사람의 평상시) 본모습

배우의 연기 훈련 중에서 자아관찰이라는 방법이 있다. 자아는 인간존재의 핵심인 행복추구와 자아충족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을 발견하고 합리화시키기에 용이한 수단이다. 자아를 통한 자기관찰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역할에 푹 빠져야 한다.”는 숙명적 과제를 안은 배우에게 역할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는 해법을 안겨주고 이를 위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내는 가장 확실한 도구가 된다.

 

자신만의셀프-드라마(self-drama)”를 쓰세요.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루덴스는 문화에서부터 인간의 유희가 온 것이 아니라 유희에서부터 문화가 온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래전 양평으로의 귀촌은 호모 루덴스로서의 필자 자신을 마당 밖으로 놓아주기 위함이었다. 남한강과 북한강변을 잇는 기점으로서의 양평은 그 자체로 자연과 문화와 예술이 강물처럼 한데 만나 놀이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합당한 곳이다. 시시 철철 특성화된 축제들로 사계절이 채워지고, 곳 곳 마다의 천혜의 자연 경관은 필자를 포함해 모든 오고 가는 이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한 곳이다.

또 다른 일 각, 최근 양평은 삶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호 받으려는 주민들과 상수원 규제 문제를 두고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물론 양평이 수도권의 맑은 물을 두 어깨에 책임지고 있는 만큼 수질관리와 물 환경 관리는 철저해야 한다. 그러나 주민의 재산권과 생존권의 간극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되레 도시재생의 꿈을 꾸는 양평이 자기 발목을 붙잡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양평의 자연 경관과 사계절 축제 또한 관광사업과 반드시 결합되어져야 한다. 오는 사람이 또 오고 가는 사람이 되 돌아오게 함으로써 주민의 소득이 올라가고 일자리가 많아짐과 동시에 양평의 재정자립도가 높아지고 도시에 활력이 생긴다. 4거리 요소, 놀거리, 먹거리, 볼거리, 잘거리는 굳건한(?) 인간의 놀이요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의 드라마가 미완성을 전제로 할 뿐 완성을 목표로 할 수 없듯이 삶의 터전 또한 완성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목표로 한다. 완성보다는 늘 배워간다는, ‘과정의 연속성안에서 남의 이야기와 내이야기가 아름다운 충돌과 지혜로운 균형을 이루면서 화해의 결말로 다가가는 각자의 일상 속 셀프-드라마가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누구보다도 양평의 놀이터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주민들이 외치는 물은 셀프입니다와 같은 절절한 마음이 들렸으면 한다. 계속해서 변화와 발전을 이루는 삶의 놀이터, 양평에서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가능한 드라마틱한 행동들을 많이 만들고 즐기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관념 속에 묶어두지 말고, 타인도 저지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안 돼!”, “하지 마!”, “위험해!” 라는 말들을 반복한다면 끝내 시시하고 재미없는 셀프-드라마만 만들다가 막을 내릴 수 있다.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전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고, 상대와의 대사를 정리해 보듯이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그날 만날 사람들과의 대화들을 정리해보자. 세상의 무대에 나갈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드라마가 시작된다. 이 때, 우리의 첫 대사는 더 할 나위 없이, “물은 셀프입니다.”각자의 존중받는 존재를 위하여일 테다. 들판의 풀 한 포기에서도 삶의 이치를 터득하고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듯이 삶이라는 무대에서 우리 모두의 자기 자신(self)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방수형

영화배우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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