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남자 #037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 ①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모처럼 영화에 대해 두꺼운 글을 쓰게 되어 글이 길어졌습니다. 펜 끝이 무뎌져 날카로움을 상실한 것 같아 자괴감이 들지만…. 올 연말, 많은 생각을 하며 관람했던 '미씽: 사라진 여자'에 관해 긴 글을 토해냅니다. 분량이 많은 관계로 서론, 본론, 결론의 세 편으로 글을 게재하려 합니다.
 
차가운 바람, 떨어지는 온도계의 눈금, 살갗이 시린 계절 겨울이 왔다. 올해가 예년보다 덜 춥지 않겠지만, 유독 추위에 무뎌지는 건 광화문에 타오르고 있는 촛불 덕일 것이다.
 
매주 커지던 촛불은 번져 횃불이 되었고, 대한민국 부패의 심장 청와대를 감싸고 있다. 이 불꽃에 다소 가려 있기는 하지만, 문단과 영화계는 여성 차별 및 성폭력 문제로 뜨겁다. 글을 쓰고 시점에는 시점엔 김윤석 배우의 인터뷰가 새로운 장작이 되어 타오르는 중이다.
 
   
 
 
한국 영화계의 여성 캐릭터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차별의 문제를 인지하는 건 쉽다. 올해 상영된 영화에서 여성 제작자 혹은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만 고려해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관객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야기를 몇 편이나 말할 수 있는가. 올해는 몇 편이나 개봉했을까. 당장 기억나는 영화로는 '굿바이 싱글'과 '비밀은 없다' 정도가 있었다. 2016년을 통틀어 바로 떠오른 영화가 저 두 편에 불과했다.
 
한국에선 제작비의 규모가 커질수록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는 더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올해 흥행한 영화 다섯 편을 보자. '부산행'(총 제작비 115억/총 관객 1,100만), '검사외전'(85억/970만 명), '밀정'(140억, 750만 명), '터널'(100억/710만 명) '인천상륙작전'(총 제작비 170억/700만 명). 이 다섯 편의 영화 중 여성 캐릭터가 주요 서사를 이끌어가는 영화를 찾을 수 있는가.
 
제작자들은 영화관을 찾는 관객 중 여성이 비중이 높기에 남성 주인공을 선호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상업 영화판에서 제작되는 장르의 편향성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제작자는 제작비의 회수를 위해 기획 단계부터 대중이 좋아하는 장르를 선택하려 하는데, 현재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장르(범죄물, 형사물, 재난 영화, 코미디 등)는 주로 남성이 활약해온 영역이다. 
 
덕분에 자연히 '여'배우가 활약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영화계에서 현재 주요한 배역을 맡는 '여'배우는 상당수가 90년대 말, 그리고 2000년대 초, 한국 멜로 영화의 전성기에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멜로가 아니라면 공포 영화로 주목받은 경우도 있다. 멜로와 호러만이 여성의 영역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때는 여성이 활약할 무대라도 있었다. 근래에는 정통 멜로영화와 호러 영화의 제작마저도 드물어져, 여성이 영화에 주동 인물로 등장할 여지는 계속 줄고 있다. 
 
   
 
 
'여'배우란 단어를 반성하며
여기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단어가 있다. '여'배우라는 단어. 최근 SNS에서 이 단어가 여성혐오를 뜻하는 단어라는 의견이 있었기에 이 세 글자를 쓰는 게 매우 조심스럽다. '여'배우는 분명히 여성차별 단어다. 남녀를 구분할 상황이 아닐 때, 이 단어를 무심히 사용한다는 것은 남성 위주의 시각 및 세계를 당연시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도 글에서 '여'배우라는 말을 사용해왔다. 특히, 심은경, 김고은 등의 배우가 주연을 맡아 영화에서 여성의 좁은 입지를 넓히고, 한계를 돌파해 나갈 때, 그와 관련된 글엔 언제나 여배우라는 단어가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이끌었다는 변별점, 여성으로서의 성취를 보여줬다는 걸 글로써 알리기 위해 그 단어를 상습적으로 써왔다. 
 
여전히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은 부족하다. 그래서 그런 작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여성' 배우의 활약을 부각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여'배우란 단어를 써왔고, 이번에도 쓰고 있다. 혐오와 차별이 아닌, 드러내고 더 주목해달라는 의미에서. 부족하나마 그렇게 지난 글들에 변명해본다. '여성' 원톱, 투톱 영화가 전혀 특별해지지 않는 순간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 '미씽: 사라진 여자' 포스터
 
결말에서 발견한 벽, '미씽: 사라진 여자'
반성문이 길었다. 이번에 다룰 영화가 여성 주인공이 중심인 영화라 더 조심스러웠다. 공효진, 엄지원 두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는 근래 드문 조합을 보여준 영화다. 영화관에 있는 무수히 많은 포스터 중 이 영화의 포스터(두 여성의 얼굴만 있는)는 유독 눈에 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어둡고 센 장르, 즉 한국에선 남성이 점유한 장르에서 여성이 활약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차이나타운'의 누아르를 감명깊게 본 경험 덕분에, 남성 주인공의 주요 무대(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미씽'은 그 만듦새와 흥행 여부가 매우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상적이었다. '미씽'은 비범한 힘이 느껴지는, 재미있고 탄탄한 스릴러였다. 두 여성 캐릭터 덕분에, 여성 영화로서 성취를 이뤄낸 지점도 보인다. 그러나 결국엔 어떤 '벽'을 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미씽'이 선택한 결말은 영화의 비범한 힘이 도달한 지점이라고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 지점부터 고민하며 펜을 들었다.
 
지선(엄지원)은 결국 실종된 딸(다은)을 찾고, '미씽'은 행복한 결말을 취하는 척한다. 그녀는 크게 다치지 않았고, 아이도 건강하다.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볼 수 없던 다은이의 걸음마는, 이 아이가 납치된 위기를 이겨내고, 세상에 홀로 설만큼 강인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걸어간 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엄마의 품이었다는 건, 뭉클한 마무리이기도 했다. 다시 만난 엄마와 아이, 관객이 영화 내내 보고 싶었던 그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해피엔딩이다. 아니다. 사실 이건 해피 엔딩이 될 수가 없다. 이 엔딩은 지선에게 주어진 찰나의 행복이며, '미씽'이 상업 영화 내에서 선택한 안전한 결말일 뿐이다. 좀 더 냉정히, '미씽'에 메스를 대어 보자.
 

 

▶ [영읽남] '미씽'은 절대 행복한 결말일리 없다 ②…두 여성 캐릭터와 공효진이 위치한 세계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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