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에게 선뜻 내어주는 결과 보다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송수진 artietor@mhns.co.kr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연극인, 연출 송수진입니다. 극단 묘화 대표.

[문화뉴스] 요즘 시국이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정신없다는 것은 누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보고, 듣고, 느끼고 있기에 알고 있을 것이다.

전국에서 수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고 현 시국에 대한 '행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나이 어린 친구들. 이 나라의 미래인 중, 고등학생들도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다.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지금 현시점의 국가에 대해 걱정하며, 자신들이 배워야 할 역사에 대해 소리를 내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어린 친구들이 참 멋있고, 대견스럽다.

하나 곱지 않은 시선들도 존재한다. 걱정스러운 시선도 있고, 어린것들이 뭘 아느냐는 식의 권위적인 시선도 있고… 이 시국 속 한 개인 개인의 행동들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평가들이 나뉘고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한 개인의 수직적 생각의 전달로 인한 다수의 수용이 아닌 개개인의 자발적 사고가 모여 하나의 의견을 만들어내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형성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넘어와 개개인의 자발적 사고를 위해 문화예술계통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려운 단어와 철학들을 남발하며 글을 쓰고 공연을 올리며 그들만의 리그와 세계를 보여주는 것만이 최선일까?

   
▲ NT Live 코리올라누스 포스터

대중들의 지적인 수준에 대한 자존감을 낮추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어느 허영심 가득한 예술가들의 콧대는 높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점차 대중들에게서 문화예술은 특별한 사람만이 공유하며 누릴 수 있다는 반감만 사들일 것이다.

코리올라누스라는 작품을 말하기 위해 이리도 길게 머리말을 썼던가…대부분에게 알려져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희곡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다수 셰익스피어의 영웅담과 다른, 영웅 개인의 성격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몰락을 그린 비극이 아닌, 조건 없는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과 고지식하고 권위적이며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영웅의 갈등 이러한 갈등을 통해 보여주는 노골적인 정치적 비극이기에 너무나 신선했고 어려웠다.

정말 너무하게도 착한 놈이 하나도 없었다. 이쯤 하면 착한 놈 하나쯤은 나와줘야 하는데 싶었지만 착한 놈 하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명예 운운하며 사지로 몰아넣지 않나 시종일관 술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놀란 가자미눈으로 주인공에게 끼 부리던 마누라는 마지막 장면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끼 부리며 남편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그렇다면 … 죄 없는 것은 아이뿐 인가? 가족들마저 이러는데 다른 인물들은 성할 리가 있나. 주인공의 비뚤어진 애국심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하고 부를 축적하며 성난 군중들을 통제하고, 다시 그 군중을 통해 주인공을 사지로 내몬다.

인물들이 다 이러다 보니 대중들을 쥐새끼라 칭하고, 빵 한 조각을 위해 뛰는 형편없는 사냥개에 비유하며 이리저리 생각 없이 휩쓸리는 짐승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이 안타까울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치열한 나쁜 놈들 속에서 필자가 정신 번쩍 차리고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냉정하리만치 객관적이며 치우치지 않은 기준에 대한 묘사 때문일 것이다.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동안 공연을 본 것이 아닌 나 역시도 참여하여 다 같이 치열한 토론을 한 것 같았다. 마치 대 토론회를 마친 듯.

공연을 본 뒤 필자가 자연스럽게 하게 된 일은 같이 본 사람들과의 토론이었다.

사회적 정치적 이슈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구성원 본질에 대한 토론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며 연관된 책들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연극을 보고, 듣고, 느껴서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사는 것이 각박하여 여가 생활하는 동안만이라도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관객도 있다. 물론 그들의 의견은 100% 존중한다. 사람이 매일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면 아마 스트레스받아서 암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볍게 보고, 읽고, 즐길 수 있는 문화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이 또한 문화예술의 역할이다. 마찬가지로 문화와 예술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주고, 화두를 던지는 것 역시도 문화예술의 역할이다.

   
▲ 코리올라누스 무대

글과 무대 위에서 결론을 내려 그들에게 결과물을 고스란히 전해주려 하지 말고 관객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하여 뒤돌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 쓰는 사람과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확고한 목적의식과 개개인의 생각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적 정의에 대한 기준과 도덕적 기준에 대해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관객들은 정확히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할 수 있다.

강요가 아닌 각 인물 간의 목적성에 대한 정확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서사가 형성될 것이고, 그 서사를 보고, 듣는 관객들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개개인의 사고는 다양해질 것이며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것이다. 또한 나와 다름에 대한 배척 역시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문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하고 부드러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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