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현실보다 충격적일 수 없다는 비극…영화만큼 집요할 공권력을 기대하며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현실이 영화보다 충격적인 요즘. 괴물처럼 커져 버린 현실의 악은, 영화 속의 그 어떤 악인보다도 추하다. 하나의 사건이 이토록 오래 보도됨에도 전혀 질리지 않고, 매 순간 반전이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대하 드라마에서도 이 정도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쁜 의미로)흥미로운 이 현실은 드라마와 영화를 위협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이 사건은 얼마나 더 많은 부패와 타락을 감추고 있을까. '최순실 게이트'는 유지된 시간으로 보나, 착취한 액수로 보나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비리라 할만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만든 악의 연대기는 하나의 대서사시이고, 여전히 진행 중인데, 얼마나 더 많은 반전과 충격으로 국민에게 분노의 카타르시스를 토하게 할까. 대서사시의 시초라는 호메로스도 이 정도 규모의 이야기는 하지 못할 것 같다. 한국의 작가가 앞으로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지가 걱정될 지경에 이르렀다.
 
   
 
 
현실보다 충격적일 수 없다는 비극
'건국 이래 최대의 게이트'. 이는 '마스터'가 내 걸었던 소재로, 영화 속 김재명(강동원)이 직접 대사로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스터'는 개봉 전 이 수식어를 '최순실 게이트'에 양보해야만 했다. 그렇다. 이 영화 최대의 경쟁 대상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도, 크리스마스 행사도, 연말 콘서트도 아니다. TV에서 보도되는 현실의 비리가 이 영화의 진정한 경쟁작이다. '마스터'는 최순실 게이트보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세 스타를 캐스팅해 보여주고자 했던, 스케일 큰 이야기는 청와대 아래 결집한 두 인물을 이기지 못한다. 영화가 100억의 제작비로 구현하려 한 비리는 현실의 최대 비리를 보여주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더불어, '마스터' 속 진 회장(이병헌)이 그토록 갖고자 했던 돈 '6조 원'은 청와대 밑 '10조 원'에 비하면 푼돈으로 보일 정도다.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 '건국 이래 최대의 게이트'라 할만하지 않는가. 
 
   
 
 
'마스터'는 무난히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다. 그렇지만, 결국 '현실보다 덜 충격적인 이야기'라는 한계를 가진 비극으로 기억될 것이다. 진 회장(이병헌)이 보여주는 악한 모습은, 대중이 최순실 게이트에서 목격한 바에 비하면 하찮다. 관객은 '아니 저럴 수가 있어?'가 아니라 '에이, 현실은 더한데?'라는 실소 속에 영화를 관람할 것이다. '마스터'가 동원할 관객 수 광화문에 결집한 촛불의 수보다 많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그만큼 영화보다 현실이 충격적이다. 이건 '마스터'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이 잘못된 거다.
 
영화만큼 집요할 경찰을 기대하며
'마스터'가 비록 현실보다 덜 흥미롭기는 하지만, 관객에게 위안을 얻을 순간은 준다. 아직은 현실이 보여주지 못한 것, 해내지 못한 걸 강동원의 얼굴을 빌려 보여준다. 강동원은 엘리트 공무원,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 역을 맡아 차갑고 날카로우면서, 정의로운 모습을 뽐냈다. 이전 글 '가려진 시간'에서 강동원의 소년성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순수한 소년성이 '마스터'에서 경찰의 옷을 걸칠 때, 관객은 그토록 바라던 청렴결백한 공권력을 마주하게 된다.
 
   
 
 
'마스터'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순간은, 카메라가 진 회장의 범죄와 타락한 정치권을 비출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썩은 것 모두를 바꾸려 인생을 건, 김재명 팀장이 진정한 판타지다. 그의 꺾이지 않는 의지와 치밀함, 그리고 부패하고 타락한 악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더 당당할 수 있는 모습이 '마스터'의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다. 2017년, 우리는 현실에서 이런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까. '마스터'도 '내부자들'처럼 하나의 예언서가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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