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젊은 농어업인들의 희망보고서 16편, 한승목장 이차승 대표
  • 오지현 기자
  • 승인 2019.11.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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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목장을 만드는 젊은 젖소 아버지 '이차승 대표' 인터뷰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한승목장 '이차승' 대표

[문화뉴스 MHN 오지현 기자] 이차승 대표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아버지가 경영하는 농장을 물려받았다. 가끔 주변에서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곤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다. 이 차승 대표는 “누구보다 애착을 갖고 목 장 일을 하며,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아버지의 절실한 소망이 담긴 한승목장 

전라북도의 북쪽에 자리해 전주시를 둘러싸 고 있는 완주군. 그곳의 호젓한 비봉면 산길을 구불구불 따라가다 보니 높은 화강암 축대 위에 우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름답게 꾸민 농장이었다. 마중 나온 이 차승 대표는 “어머니가 꽤 정성을 들이신다” 는 말과 함께 지난해 ‘깨끗한 목장 가꾸기 운동’에서 우수목장으로 선정돼 장려상을 받았다는 자랑을 곁들였다. 1982년에 이 대표의 아버지가 세운 한승목장은 우리 낙농업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그해 목장에 젖소 두 마리를 들여와 낙농업의 가치를 가늠해 보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37년. 이 대표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자 자신과 아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목장에 ‘한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중에 아들이 성장해서 목장을 이어받길 바라는 절실한 소망이 깃든 이름이었다. 이 대표는 그렇기에 자신과 자신의 목장이 한 몸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시행착오로 겪어야 했던 거듭된 이전 

“아버지는 낙농업에 전략적으로 접근하셨던 것 같아요. 해볼 만한 일인지, 평생 할 수 있는 일인지 시험 삼아 한번 해 보기로 한 것이 지금까지 온 거죠.” 이 대표의 아버지는 처음 1년 동안은 우유를 짜서 집유차가 오는 곳까지 자전거로 나르며 투자 가치를 가늠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확신이 들자 본격적으로 목장을 운영하게 됐고, 처음 문을 연 자리에 서 10년을 보냈다. 그러다 1992년 같은 동네의 다른 자리로 목장을 넓혀서 옮기게 됐는데, 목장의 규모가 4,000평 정도로 작지 않았음에도 바로 옆에 학교가 있었고 동네가 점점 도시화하면서 또다시 목장을 옮겨야 했다. 3년 전 지금의 자리로 목장을 옮겨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축사 허가를 받는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반 주택과의 거리 제한 규정이나 기존 시설을 완전히 없애는 조건이 담보돼야 하는 부분부터 설비 교체와 증설에도 많은 규제가 있어요. 목장을 이만큼 현대화하기까지는 사연이 많았죠.” 지금의 목장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아예 산으로 둘러싸여 민가가 늘어날 가능성이 적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새로이 터전을 잡은 이곳에서 이 대표는 현재 아버지와 함께 많은 것을 시도하고 있다. 어렵게 자리를 잡은 만큼 새로운 시설을 지을 의욕 또한 남다르다.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한승목장

해외연수를 나가 경험한 선진 낙농 시스템

이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장래에 부모님의 일을 물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특별히 하지않았다.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서 대학 진학을 고민하게 되면서 찾아왔다. 아버지가 이 대표에게 진지하게 한국농수산대학 진학을 권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대표에게 한국농수산대학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한승농장은 예전에 한국농수산대학의 실습 목장이었기에 많은 한국농수산대학 학생들 이 목장에 와서 실습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이 대표는 평생 낙농업에 종사 해온 아버지 밑에서 소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목장은 이미 삶의 일부분이나 다름없었다. 이 대표는 흔쾌히 아니 운명처럼 가족과 함께 목장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로 결정했다.

한국농수산대학에서 보낸 3년을 통해 이 대표는 비전 있는 젊은 축산인으로서의 역량을 닦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해외실습. 바로 일본 홋카이도 낙농가에서 실습하며 경험을 쌓았던 일이다. 일본의 선진 낙농 시스템을 보며 이 대표는 우리나라의 낙농 시스템이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며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계적으로 농업을 뒷받침해 주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도 부러운 일이었다. “실습생일지라도 일본어만 쓰게 할 정도로 철저했어요. 엄격하게 그곳의 규칙을 따라야 했고, 실습일지라도 현지 노동자들과 같은 강도로 일해야만 했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강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로 다른 목장의 귀감이 되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낙농에서만큼은 첨단을 달리고 있다. 남들보다 빠르게,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전파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런 아버지와 축산을 전공한 아들이 함께 일하면서 목장에 큰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6년에 한승목장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부자는 과감한 투자로 새로운 시도를 단행했다. 평지에서 5m 이상 올라간 비탈에 축대를 쌓아 올려 우사를 지었다. 새로 짓는 우사에는 천장고를 14.5m로 높게 시공하고, 대형 환풍기와 개방형 지붕 등을 설치해 소가 한 여름에도 더위에 지치지 않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거기에 라이그라스와 옥수수를 직접 재배해 풀사료를 자급하는 한편, TMR 사료 자동 급이기를 설치해 소 개체별로 적정한 먹이를 섭취하게 만들었다. 또 한 착유실은 우사 중앙에 설치해 하루 두 번씩 하는 착유 작업을 소와 사람에게 모두 편리하게 만드는 등 모든 면에서 최고와 최선을 추구 했다. 이렇듯 뛰어난 설비와 쾌적한 환경을 갖춘 덕에 한승목장에는 다른 목장주와 건설업 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아버지와 제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우리 목장이 앞장서서 시도해 볼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하는 거예요.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아 기반시설을 갖추려면 농가들이 먼저 다양하게 시도하고 정책도 먼저 제시해야 하거든요. 저와 아버지는 새로운 시스템을 먼저 시도해 본 후 이제 막 목장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권해 주는 역할을 지금껏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한승목장

겸손과 감사로 미래를 설계

어린 나이에 의욕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가끔씩은 지칠 때도 있다. 하루에 두 번 우유를 짜는 젖소를 새벽 5시부터 돌보다 보면 한달,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여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축산업은 농업하고는 또 다르게 사시사철 진행되다 보니 쉬는 날이 따로 없어요. 그래서 여행이나 여가를 위한 시간을 만들기 어려워요. 쉽지는 않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잡아가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배움에 대한 갈증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24시간 현장에만 있다 보니 일본 홋카이도 농장에서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자꾸 퇴색돼 가는 느낌이 든다고. 이에 이 대표는 작년에 모교로 돌아가 4학년 전공심화 과정을 마쳤고, 대학원 진학도 염두에 두고 있다. 축산업은 초기 투입 자본이 많고 수익이 나기까지는 최소 2~3년의 세월이 걸리기에 신규 진입이 만만치 않다.

낙농의 경우에는 착유 시설은 물론이고 우유 업체에 납유를 위한 쿼터까지 자율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낙농 단체, 정부 기관, 유업체들이 모여 결정한 가격에 계약한 양만 납유가 가능하므로 자의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도 없다. 늘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이 대표는 우선 감사하다는 말부터 했다. 부모님이 다져 놓은 기반 덕분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어려움을 덜 겪고 있고, 그 점이 참 감사하단다. 감내하기 쉽지 않은 고단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무장한 젊은 낙농인은 그렇게 자신의 미래와 목장의 미래를 설계하고 그 고민을 하나씩 풀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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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명 : 한승목장

농장소재 : 전라북도 완주군

경영유형 : 가족경영

영농경력 : 7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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