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수산 이정욱 대표, "누릴 것 많은 20대이지만, 전복에 모든 걸 걸었죠"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주화수산 '이정욱' 대표

[문화뉴스 MHN 오지현 기자] 주화수산은 완도에서는 보기 드문 20대 청년이 운영하는 전복 양식 업체다. 이정욱 대표는 김 양식에서 전복 양식으로 업종을 바꾼 아버지와 함께 양식장을 운영하기 위해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해 다양한 지식과 실습 경험을 쌓고 전복 양식에 뛰어들었다. 이정욱 대표의 신조는 “노력한 만큼 번다”는 것이다. 일단 마흔 살까지 20년을 투자한 다음 나중에 놀러 가는 걸 생각해 보겠다고 할 정도로 전복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맑고 청정한 완도 바다에 자리한 광활한 양식장

맑고 청정한 바닷길을 달려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완도 바다에 도착했다. 이정욱 대표 가족은 온화한 풍광의 완도 바다처럼 맑고 구김살 없는 모습으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일단 양식장부터 가보기로 하고 이 대표의 가족과 함께 주화수산호에 올랐다.

배는 선착장에서 봤던 수많은 가두리와 부표 사이를 미꾸라지 헤엄치듯 나아갔다. 그러다가 얼마 후, 넓디넓은 양식장 어딘가에 배가 멈췄다. “한 변의 길이가 2.4m인 정사각형 가두리가 1,760칸이나 있다”라는 이 대표의 설명이 들려왔다. 이 대표는 현장실습생과 손발을 척척 맞춰 가며 분주히 움직였다. 다시마를 먹이로 주고 가두리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샘플을 따냈다. 가을에 출하 예정인 전복들은 벌써 아이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라 있었다. “전복은 봄, 가을, 겨울은 부지런하고 여름엔 해이해야 돈 번다는 말이 있어요. 여름엔 수온이 올라가니까 가급적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죠.”

노력한 만큼 버는 양식에 매력 느껴

이 대표의 부모는 원래 김 양식을 했다. 집안의 생계가 걸린 일이지만 이 대표에게는 고되고 귀찮기만 한 일이었다. 하지만 완도수산고등학교로 진학한 다음부터는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회 진출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보니 바닷일이 전과 다른 느낌으로 와 닿았다.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생각이 바뀐 것이다.

부모님은 수산 관련 공무원을 권하셨다. 평생 김 양식을 해 온 부모였기에 아들만큼은 안정적이고 편한 길을 가길 바랐다.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노력한 만큼 버는 양식에 매력을 느꼈다.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평생 경쟁과 불안에 시달려야하는 도시의 삶보다 그것이 훨씬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양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김 양식을 하던 아버지는 그해 마침 전복 양식으로 업종을 바꿨다. 1년을 그렇게 보내자 막연함과 부족함이 느껴졌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욕구가 가슴 한구석에서 끓어올랐다. 먼저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한 친구의 권유도 결심을 앞당기는 동기가 되었다.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주화수산

새로운 지식을 쌓고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해 준 대학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한 이 대표는 양식 장에만 머물러 있었으면 몰랐을 것들을 수 없이 얻었다. 해삼, 전복, 치패(稚貝 : 새끼나 종자를 의미) 등 다양한 수산양식을 접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눈이 뜨였을뿐더러 각 분야에서 든든한 도움을 줄 소중한 동문들을 얻었다.

작목이 달라도 동문과의 교류에서 얻는 정보들은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금의 부인,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난 것도 한국농수산대학에서였다. 2년 후배 송현민 동문과 사랑이 싹텄다. 송 동문의 부모가 전라남도 진도에서 전복 치패장을 하고 있었던 것도 우연이지만 기가 막혔다. 운명처럼 최고의 결합이 되었고, 4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 대표는 요즘 사람들의 인생 사이클에 비교하면 스타트가 빠른 편이고, 그런 만큼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하지만 젊음을 쏟아부은 만큼의 결실은 반드시 거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대표는 누누이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사는 20대는 누릴 수 있는 게 참 많잖아요. 하지만 한국농수산대학 동문들은 대부분 그런 걸 포기하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20대를 모조리 바쳐요. 이왕 많은 걸 포기하고 시작한 만큼 그에 걸맞은 성과가 있어야겠죠.”

아버지와의 갈등은 피하지 않고 진지함과 적극성으로 돌파

대학을 졸업하면 그때부터가 본게임이다. 한국농수산대학 졸업생이라고해서 예외는 아니다. 냉엄한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명제가 예외 없이 주어진다. 창업농의 경우는 당장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부터 짜야 한다. 후계농은 어떨까. 창업농에 비해 부담이 덜한 만큼 훨씬 여건이 나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막상 현실에 부딪치고 보니 창업농이 차라리 낫다고 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대표를 괴롭힌 가장 큰일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와의 갈등이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배운 다양한 기술을 자유롭게 모험적으로 시도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행동 양식, 생활 태도면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수시로 충돌했다. 아버지는 한마디로 이 대표를 쉽게 믿어 주지 않았다.

“아버지와 차~암, 차~암 많이 싸웠어요. 한때는 그만둘 생각에 바다에 안 나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자식인 제가 항상 먼저 숙이고 들어갔고, 그러면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또 받아 주셨어요. 그렇다고 해서 싸움을 포기한 건 아니었어요. 계속 제 의견을 피력했고, 아버지가 납득하실 때까지 행동과 결과로 보여 드렸죠. 결국은 그러면서 부자간의 이해가 깊어졌고 자연스레 신뢰도 얻었어요.”

어쨌든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무엇보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그의 이탈을 막아 줬다. 참고 인내하며 전복의 먹이인 다시마와 미역 양식 방법, 전복 양식 밀도, 먹이 주는 방법 등을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바꿨다. 무엇보다 3년 농사를 결정짓는 치패 선별에 공을 들인 점이 아버지를 흡족케 했다. 이제 아버지는 이 대표에게 양식장을 전적으로 맡기고 필요할 때만 조언을 해주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주화수산

3년 만의 첫 결실, 희망과 고민이 교차하는 전복 양식

이 대표는 얼마전부터 고민이 많아졌다. 7년 전 전복 양식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좋았던 전복값이 몇 년 동안 내림세가 지속되더니 작년에는 역대 최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차적으로는 전복 양식 기술이 안정화되고 양식장이 많아진 영향도 있지만, 무허가 불법 양식지가 크게 늘어난 것이 전복값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정부에서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제대로 단속이 되지 않고 있다”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다고 마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이 대표는 불법 양식 단속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한편, 추락한 전복 단가를 높이기 위해 더욱더 정성을 쏟고 있다. 다행히 올해 작황은 기대 이상이라고 한다.

“올해 같은 경우는 아주 좋아요. 특히 기쁜 것이 3년 전에 처음으로 제 주도하에 치패를 선별해 입식했거든요. 그것이 자라 올가을엔 드디어 팔 수 있게 됐어요. 올해가 사실상 제 농사의 첫 결실을 보는 해인 셈이죠.”

잠시 그늘졌던 이 대표의 표정이 수확 얘기를 꺼내자 금방 환해졌다. 전복 농사를 좌지 우지한다는 치패 선별에서 그는 학교에서의 경험과 정보, 아내 송 동문의 도움으로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런 정성이 통했는지 전복은 이 대표 스스로 봐도 만족할 만큼 성장 상태가 좋다. 그렇더라도 걱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최고의 전복을 길러 낸다 해도 도매로 넘기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매출 증가에 한계가 있다.

생산지 가격은 바닥인데, 소비자 가격에는 변화가 없어 소비량 자체가 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 대표는 이제 자신만의 양식 시스템도 몸에 익었으니 조만간 소매 유통에도 나설 생각이다. 인터뷰 중간에 가족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대표는 절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히 아내 이야기를 할 때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 지면서 좀 더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기색도 보였다.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이리라. 사랑과 기쁨의 마음을 가득 담고 돌아오는 주화수산호의 뱃머리가 6월의 청명한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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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명 : 주화수산

농장소재 : 전라남도 완도군

경영유형 : 가족경영

영농경력 : 5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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