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애프론'의 로맨틱 코미디…위대한 영화의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 수 있다는 것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멋진 대사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이하 '해리&샐리')에서 해리(빌리 크리스탈)가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대사를 보며 했던 말이다. ('카사블랑카'를 못 본 관객을 위해 말하지는 않겠다.)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가 있다. 세월이 지나도 찾아보게 되는 영화. 그리고 그 영화엔 함께 박제된 순간이 있고, 그 순간엔 가장 빛나고 있는 배우의 얼굴이 있다.
 
1989년에 개봉했던 '해리&샐리'도 그런 영화일 것이다. 아름다운 영화, 위대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영화. 그래서 25년도 더 지난 시점에 재개봉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제목에서 예상했겠지만, 이번 글은 '캐리 피셔'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조금 서글플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을 붙잡고 영속하게 하는 '필름 기록의 예술'이 배우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을 선물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출연한 캐리 피셔(왼쪽에서 두 번째).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 노라 애프론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해리&샐리'는 이 질문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나름의 답을 준비해 뒀지만, '썸'이라는 게 일상적인 지금 시대엔 더 복잡하고 고민하게 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세련됨 덕분일까? 27년 만에 재개봉했음에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해리&샐리' 전 인류가 고민했을 문제를 독특한 과정을 거쳐 직설적이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형식, 대사의 위트는 등은 이야기의 높은 완성도와 함께 현재의 영화와 비교해도 뒤처짐이 없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이 세련됨과 흥미로움은 여성 캐릭터 샐리(멕 라이언)의 공이 크다. 그녀는 급진적이었고, 주관이 뚜렷하며,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당당히 할 줄 알던 캐릭터였다. 그리고 1989년 당시, 샐리처럼 능동적이고, 색깔이 있는 여성 캐릭터가 있을 수 있었던 건 작가(이자 후에 감독이 된) '노라 애프론' 덕이다. 1989년의 개봉 영화들을 찾아본다면, '해리&샐리'가 얼마나 독보적인 영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라 애프론은 '해리&샐리'에서 샐리를 통해 여성의 시선을 녹여냈고, 여성 캐릭터를 도구화·객체화하지 않았다. 이는 현대 상업영화들이 (여전히) 섹시한 여성을 전시하는 것에 비해 훨씬 진취적인 지점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던 노라 애프론은 '해리&샐리' 이후, '감독'으로서도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큰 업적을 쌓는다. 특히, 멕 라이언과 작업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유브 갓 메일'이 큰 인기를 얻었는데, 덕분에 멕 라이언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 돌 수 있었다.
 
   
 
 
캐리 피셔, 영화로 기억된다는 것
27년 만에 '해리&샐리'가 재개봉하던 날, 39년 된 '스타워즈'의 새 이야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 개봉했다. 이 설레던 순간, 스타워즈 팬들이 마냥 웃을 수 없던 건, 그들의 영원한 공주 '레아'를 연기한 캐리 피셔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J.J. 에이브럼스 감독을 비롯해 많은 영화인과 팬들의 애도가 있었고, 그 슬픔은 아직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재관람을 하기 전, '해리&샐리'에 관한 이미지는 '멕 라이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로맨틱 코미디 여왕과 노라 애프론의 빛나는 시절이 담긴 작품으로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영화 시작과 함께 'Carrie Fisher'라는 자막을 봤을 때, 생소하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이 영화에 그녀가 한 장면을 빛내고 있었다는 걸 몰라 생소했고, 온종일 애도 기사에서 보던 그녀의 이름이라 낯설지 않았다.
 
캐리 피셔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 날, 스크린에서 웃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해리&샐리'가 27년 만에 관객과 만날 때, 캐리 피셔는 여전히 그 장면 안에서 빛나고 있었고, 관객은 세상에 없는 그녀와 감정을 주고받고 있었다. 캐리 피셔의 숨결이 세상에 사라진 그 날조차, 그녀는 유쾌한 모습으로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영화는 죽음을 초월해 그런 마법과도 같은 시간을 마련해 주고 줬다.
 
   
▲ '스타워즈' 시리즈에 출연한 캐리 피셔.
 
캐리 피셔는 아름다운 영화,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에 오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으로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로, 영화 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는 그녀가 공들여 만든 영화가 그녀에게 선물하는 로맨틱한 순간이다. 그리고 홀로 나이를 먹지 않는 영화가 배우에게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며, 기록의 예술 영화가 가진 강렬한 힘이고, 매력이다. 재개봉과 캐리 피셔의 죽음이라는 특수한 상황 앞에서 그런 순간을 목격했다.
 
이 글은 '해리&샐리'에 관한 글이지만, 결국 이렇게 마무리해야만 할 것 같다. RIP Leia(Carrie Fisher), 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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