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의 이중성…동일본대지진과 '신카이 마코토'의 변화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너의 이름은.'의 흥행은 이미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일본 역대 박스 오피스 4위(일본 영화로는 2위), 및 로스엔젤레스 영화 비평가협회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 유료시사 매진 등 개봉 전부터 들려온 공식적인 지표들이 이를 말하고 있었다.
 
개봉 후의 분위기도 뜨거웠다. 각종 포스터 패러디('배트맨 대 슈퍼맨'을 풍자한 '너의 엄마 이름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가 있었고,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이미 여행 상품화되어 '성지순례'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연말에 도쿄에 다녀온 한 기자의 말을 빌리면, 영화 속 배경이되 장소를 직접 방문하는 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너의 이름은.'…'타키'의 흔적을 따라 '도쿄 신주쿠' 성지순례. ⓒ 시네마피아

 
'역시'라는 이중성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가장 대중적이고, 또 가장 친절한 작품이다. 많은 관객이 보고 싶어 했던 그의 그림은 당연히 매력적이다. 그의 작화가 주는 아름다움은 그의 팬들과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제안과도 같다. 이번엔 크게 두 개의 공간이 등장한다. 일본의 수도 도쿄와 가상의 시골 마을 이토모리가 주요 무대다.
 
'타키'(카미키 류노스케)가 사는 도쿄는 세련된 건물과 많은 차와 북적이는 사람들로 화려함이 돋보인다. '미즈하'(카미시라이시 모네)가 사는 마을 '이토모리'는 기후 현 등을 모티브로 신카이 마코토가 창조한 마을인데, 정갈함과 소박함, 그리고 자연의 풍광이 돋보인다. 실제 장소가 및 랜드마크가 많이 등장하기에 '너의 이름은.'은 '일본 여행'을 했던 관객에겐 친숙할 것이고, 아직 여행을 가지 못한 관객에겐 여행 욕구를 끌어올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그림은 사실성을 넘어 서정성을 입히는 파괴력이 있다. 그림 자체가 워낙 아름다워, 그의 작품에서 가장 비중 있는 '인물'로 느껴질 정도다. 어떤 내용으로 마음을 흔들기 전에, 그는 그림으로 먼저 관객의 마음에 침투해버린다.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음악이 더해지면, 관객의 감정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계속 보고 싶은 영상미. 신카이 마코토의 가장 큰 무기는 이번에도 '역시' 빛나고 있다.
 
   
 
 
그에 대한 찬사와 함께 늘 따라오는 비판은 '플롯'의 공백과 부족한 개연성 등 이야기의 구성에 관한 것이었다. 신카이 마코토는 이야기의 많은 것을 운명적 우연 혹은, 강렬한 감정으로 대체하고는 한다. (재미있는 건, 이런 운명적인 인연과 강렬한 감정을 표현한 점 때문에 그의 영상을 좋아하는 관객도 많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두 부류의 관객은 절대 섞이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너의 이름은'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여백이 적은 이야기로, 전작보다 이야기의 비중이 높고, 친절해진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이전까지 그의 작품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서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시'였다면, 이번엔 아름다운 그림을 풀어주는 산문 같다고나 할까.
 
다만, 여전히 개연성에 있어 느슨한 점이 있다는 것, 역으로 가끔은 설명이 과해 '설명문'처럼 보여 그가 기존에 가진 '시'적인 느낌까지 퇴색되는 지점도 있다는 게 아쉽다. 너무 친절이 과잉되어, '친절한 신카이 마코토씨'가 된 부분이 보인다.
 
여백은 줄었으나, 이야기의 완성도까지 성취하지는 못한 것이다. 차라리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이 이전처럼 '시'처럼 느껴질 때는 많은 여백 덕에 더 완성도가 있어 보였는데, 이번에는 이도저도 아닌 듯하다. 이처럼 이번에도 '역시' 플롯에 관한 비판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더불어 지적되었던, 여성에 대한 묘사와 표현도 '역시' 언급될 것이다. 여성을 비추는 '너의 이름은.'의 시선엔 관음증적으로 과하다 싶은 순간이 몇 부분 있다. 이에 민감한 관객은 노골적이 시선에 가끔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의 그림체에서 유독 여성의 성적 매력이 돌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타키가 좋아했던 선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동일본 대지진 그 이후
'너의 이름은.'은 초반부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넘어 중반부에 다다르면, 현실과 공명하려는 시도를 한다. 초반부가 '체인지' 등의 코믹한 영화를 연상케 한다면, 후반부는 충격적이면서도 애절한 이야기로 이야기 톤을 바꾼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근래 일본이 겪은 최악의 사건이 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아니 파괴된 마을과 생을 끝내야 했던 사람들. '너의 이름은.'은 그 사고를 환기하고, 아픔을 다시 꺼내온다. 신카이 마코토가 이번 작품에서 친절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기존에 추구하던 애잔한 정서를 넘어, 명확히 전하고자 했던 사회적 메시지가 있기 때문인 듯했다. (왜 그토록 이 영화는 이름을 '기억'하려고 했을까) 이전처럼 '시'같은 모호함의 정서가 아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기억'을 위해서 그는 명확해지는 변화를 택했다. 심지어 '너의 이름은.'의 어떤 장면에서는 아픔(죽음)을 희망(생명)으로 치환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여러 가지 결점을 인정함에도 '너의 이름은.'에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영화의 따뜻함 덕이 아닐까. 아픈 사고를 그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위로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변화와 시도 덕이 아닐까. 일본에서 1600만 명의 관객이 그의 영화를 본 것은, 그들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위로와 위안을 얻고,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려는 시도와 방법에 동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너의 이름은.'은 다른 의미에서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이후 날카롭고 현실 비판적인 시선으로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변화를 지적하는 영화는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끌어안고 함께 아픔을 공유하며 치유를 시도한 영화는 드물었다. 국내에서의 흥행은 그래서 조금 특별해 보인다. 많은 관객이 영화관에서라도 따뜻해질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에게도 기억해야 할 이름을 다시 환기해줄 수 있다면, '너의 이름은.'은 상당히 특별한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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