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세잔, 맹시다리, 1879년경, 캔버스에 유채

[문화뉴스] 작품은 죽었어도, 영혼은 살아있다.

한국에까지 옮겨진 프랑스의 대표 오르세 전 작품들은 고스란히 조용히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고흐니, 밀레니, 고갱이니 하는 작가들은 그 당시에는 몰랐을 그 당시만의 느낌을 고스란히 안고 작품에 서있었다.

아무도 없고 컴컴한 불빛 아래에서 자신의 빛은 온전히 지킨 그들은 아우라가 대단하다.

   
▲ 레옹 보나, 빅토르 위고의 초상, 1879, 캔버스에 유채

작가는 이래서 '작가(作家)'라는 것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말 할 조차 필요 없는 것이다.

이런 리뷰조차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저 바라보고 숨죽여 감탄을 하고 온 몸의 세포가 숨쉬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굳이 무언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말조차 필요없고 작품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진짜다!"

비록 자칭 시인이지만, 이 작품들을 보고 이렇게 감히 말한다. "두근 두근, 쿵 쿵 쿵"

   
▲ 카미유 피사로, 포르-마를리의 센 강가 빨래터, 1872, 캔버스에 유채
   
▲ 외젠 부댕, 트루빌의 해변, 1867, 목판에 유채
   
▲ 클로드 모네, 베퇴유의 설경, 1878-1879, 캔버스에 유채
   
▲ 마리 바시키르체프, 모임, 1884, 캔버스에 유채
   
▲ 에드가 드가, 증권거래소의 초상, 1879-1879, 캔버스에 유채
   
 

 

 

문화뉴스 김민경 기자 avin@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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