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립극단
[문화뉴스] 아직도 연극에 대한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조씨 집안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온 '정영'의 인생은 공허만이 남았다. 특히 '정영'역을 맡은 배우 하성광의 열연은 관객들의 마음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중국 고전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는 18세기에 유럽에 소개되어 '동양의 햄릿'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하게 되는 비운의 필부 '정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영이 '조씨고아'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수많은 의인들이 희생한다. "오늘 내가 한 선택을 평생 동안 후회하며 산다 해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네"라는 정영의 대사는 자신의 가족마저 희생시켜가며 지켜내야 했던 약속에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는지 짐작케 했다. 감정을 억누르는 정영의 모습은 감정을 발산할 때보다 더 큰 아픔을 준다.
 
   
▲ ⓒ 국립극단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복수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정영의 모습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텅 빈 무대는 배우들의 연기로 채워졌다. 붉은 커튼과 최소화된 소품만으로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죽음을 상징하는 '묵자'의 역할도 인상적이다. 인물들이 희생되는 순간과 극의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때로는 극이 가벼운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정영의 묵직한 존재감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복수를 위해 20년 세월 동안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았지만, 정영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씨고아의 복수 끝에 남은 쓸쓸한 정영의 모습이 무대를 압도했다.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이라는 묵자의 마지막 독백이 덧없는 인생의 허무를 전하는 듯하다.
 
문화뉴스 김수미 인턴기자 monke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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