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정직하게 잘 만든 웰메이드 뮤지컬 '레드북'이 찾아왔다.

뮤지컬 '레드북'은 제작부터 유통까지 공연예술분야(연극, 무용, 음악, 오페라, 전통예술, 창작뮤지컬)의 단계별 지원을 통해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인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신작 릴레이 공연'의 일환으로 지난 10일부터 22일까지 공연되는 작품이다.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드북'은 2017년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기존에도 여성을 내세운 작품은 많았지만,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로써는 도전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바로 '여성'이 '성'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봐도 파격적인 이 시도는 보수적인 시기,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었다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물론 이것은 제작진의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시대적 고증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그냥 2017년 한국의 모습에 외국 사람의 껍데기를 덧씌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하거나, 쉽게 지어진 인물들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렐라이는 작품에서 유일하게 이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인물이다. 반면 딕 존슨은 쉽게, 희화화된 캐릭터의 전형이라 볼 수 있다)

남성이 여성을 희롱하면 '장난'이 되지만, 여성은 남성을 희롱할 수 없는 시대, 여성의 가장 큰 덕목이 현모양처인 시대, 모두 성에 관심 있지만, 관심 없어하는 시대, 여성은 당연히 남성보다 뒤처지고 약하다는 편견으로 둘러싸인 '레드북'의 세상은 오늘날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레드북'은 이 지점을 명쾌하게 파고들어 잘 짜인 대중오락의 형태로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웃음에 코드가 맞춰진 극은 그 속에서 매우 쉽게 여성, 혹은 약자들의 인권과 목소리를 말한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비만'이나 'SM'을 웃음 코드로 쓰는 등의 시각이 보이는 점은 진정성이란 면에서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볼 수 없던 시의적절한 이야기는 아쉽거나 부족한 부분보다는 앞으로의 발전이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다.

작품의 또 하나의 장점은 앞서 말했듯 여자가 아닌 '약자'의 목소리를 내세운다는 점이다. 안나가 이야기를 쓰게 된 원동력이 '내게 잊을 수 없는 이름'인 노부인 바이올렛과의 추억이란 점이나 모두 겉으로는 욕하는 이중적인 세상에서 안나를 응원한 유일한 독자가 물건을 훔친 거지라는 점에서 이는 분명하게 보인다.

또 이 모든 것을 매력적으로 빛나게 하는 배우들의 열연 역시 인상적이다. '키다리 아저씨'에서도 보수적인 시대 속에서 솔직하고 건강한 여성을 연기했던 안나 역의 유리아를 비롯해 기존 작품들의 전형적 여성 캐릭터의 미러링에 가까운 브라운 역의 박은석, 온 몸을 던진 연기가 인상적인 로렐라이 역의 지현준 등은 극을 빛나게 한다.

노래 역시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지만, 중간중간 뮤지컬 마니아들이라면 다소 익숙함을 느낄 수 있는 넘버가 있다. 현재의 흥행세로 봐선 정식 공연이 곧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데 향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연출 오경택, 음악감독 양주인, 작가 한정석, 작곡 이선영, 안무 송희진, 출연에 박은석, 유리아, 지현준, 김태한, 김국희, 장예원, 주민진, 윤정열, 권용국, 허순미, 김상균, 이다정.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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