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공손저구(정진각)와 묵자(전유경)의 대사

   
 

[문화뉴스] 주옥같은 대사들을 무수히 남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돌아왔다.

20년의 세월, 어렵게 얻은 자식,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은 정영(하성광)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은혜를 입었던 조씨 가문이 멸족의 위기에 다다르자, 정영은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을 희생시켜 조씨고아(이형훈)를 살려낸다. 아내는 상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며, 정영은 조씨고아가 장성하는 20년의 세월 동안 그 일을 함구하며 지내온다.

연극의 결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간결하고 절제된 가운데서 감정과 감각들을 폭발시킨다. 배우들의 리듬감 있는 대사와 행동들은 이 연극이 얼마나 훌륭한 연출가의 지휘 아래 만들어진 작품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장황한 내용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며, 배우들의 리듬감이 최고조에 닿았을 무렵, 더구나 정영의 울부짖음이 관객들의 눈가를 적셔오는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무렵, 1막만으로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굉장한 연극임을 스스로 입증해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만난 연극은 2막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고 온몸으로 얘기한다. 20년간 친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던 도안고(장두이)가 원수임을 '이야기'로만 들은 조씨고아, 그는 쉽게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 그러나 정영은 이해할 필요가 없다 얘기한다. 이미 일어났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영은 고아가 복수에 확신을 가지도록 "믿어지지 않는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느냐?"라 말하며, 스스로 팔을 자른다. 그는 무척이나 결연했다. 그 20년의 기다림은 고통과 확신이 버무려진 세월이었다.

도안고의 악행들이 낱낱이 밝혀지며 벌을 받게 된 순간, 정영은 영공(이영석)에게 도안고의 가문도 멸족 당하냐고 묻는다. 당연하다고 말하는 영공의 대답에 정영은 밝은 안색을 할 수가 없다. 커튼이 걷히고 조씨고아를 위해 희생됐던 수많은 사람들이 정영을 스쳐 지나간다. 의무가 되어버린 복수를 실현하고 나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품에 떳떳하고 포근히 안길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죽은 이들은 말 없이 정영의 곁을 스산히 지나친다.

극의 마지막, 나비와 함께 등장한 묵자(전유경)는 1막에서 공손저구의 대사를 되풀이한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소리 피리소리에 맞추어 놀다보니 어느 새 한바탕의 짧은 꿈."
"금방이구나, 인생은. 부디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길고 고된 순간들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정영의 삶도 한바탕 꿈이 되어버렸다. 다시 산다고 해도 정영의 선택은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행복한 꿈이든 지독히도 불행했던 꿈이든, 인생은 꿈결같이 지나간다. 삶의 모양새가 그 어떤 것이든 연극은 개개의 삶을 재단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인생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 그 인생을 좋은 숨결로 채우다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길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 연극 정보
   - 연극 제목 :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 공연날짜 : 2017. 1. 18 ~ 2. 12.
   - 공연장소 : 명동예술극장
   - 원작, 각색 및 연출 : 기군상 / 고선웅
   - 출연배우 : 장두이, 하성광, 정진각, 이영석, 유순웅, 조연호, 김정호, 이지현, 성노진, 장재호, 호산, 강득종, 김명기, 김도완, 전유경, 우정원, 이형훈 등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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