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K팝은 신생된 것이 아니다. 흥이 있는 것들은 이미 전통이 있는 것이다."

 
설 연휴, 한 편의 음악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영화 '다방의 푸른 꿈'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활동한 김시스터즈의 음악을 향한 열정과 성공 신화를 다뤘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국민 가수 이난영과 '오빠는 풍각쟁이야' 등을 작곡한 천재 작곡가 김해송의 딸들인 김숙자, 김애자, 이난영의 조카인 김민자로 구성된 김시스터즈의 일대기를 담은 '다방의 푸른 꿈'은 지난해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상영되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에선 김시스터즈의 어린 시절부터 1953년, 미 8군 공연으로 정식 데뷔하고, 그 뒤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해 본격적인 미국 활동에 나서는 김시스터즈의 활약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싸이'보다 먼저 미국 빌보드 차트 10위 안에 진출한 김시스터즈는 'K팝의 원조'나 다름이 없었다. 이후 다큐멘터리는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롤링스톤즈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섰던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장면을 선보인다. 그리고 김민자의 인터뷰를 통해 김시스터즈의 근황도 살펴볼 수 있다.
 
'다방의 푸른 꿈'을 연출한 김대현 감독을 만나 이런 'K팝의 원조', 김시스터즈의 매력에 빠진 계기, 음악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힘들었던 점, 그리고 그가 느낀 '음악의 의미' 등을 들어봤다. 먼저, 작품 소개를 김대현 감독의 설 인사말 영상과 함께 확인한다.
 

 
김시스터즈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를 들려 달라.
ㄴ 사실은 이 작품 앞에 대중가요에 대해 찍은 게 있다. '한국번안가요사'(2012년)인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상영했었다. 어렸을 때 내 귀에 들어왔던 게 번안가요다. 내가 성장한 후, 오리지날 버전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내 마음엔 번안가요가 먼저 들어왔다. 그래서 내겐 정서의 원형 같은 느낌이었다.
 
내 정서 자체도 번안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번안가요사'를 만들게 됐다. 이시스터즈, 정시스터즈도 당시에 만났다. 시각장애인 가수였던 이용복 선생도 만났다. 밥 딜런의 노래를 번안한 서유석 등 이분들의 이야기를 찾다가 1950년대~1960년대 독보적으로 활동한 김시스터즈를 알게 됐다. 그 부모가 이난영, 김해송이었다. 음악가족의 역사에 대중문화의 역사가 들어있다는 생각에서 작품을 만들게 됐다.

1930년대 이난영이 부른 노래 제목인 '다방의 푸른 꿈'을 영화 제목으로 썼다. 그런데 영어 제목은 김시스터즈가 부르는 '트라이 투 리멤버'(Try to Remember)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ㄴ '다방의 푸른 꿈' 한글 제목은 중요했다. 김해송 작곡, 이난영 노래라는 것도 있지만, 1930년대 한국 대중가요의 출발지점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푸른 꿈'이라는 단어에 김시스터즈가 꿈을 안고 간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자체는 김시스터즈의 이야기지만, '다방의 푸른 꿈'이라는 이름 안에 이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영화 제작 전에 제목을 먼저 생각했다.
 
'트라이 투 리멤버'는 제천국제영화제에 상영이 결정 난 후 영어 제목을 정해야 할 때 나왔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허진호 감독('덕혜옹주', '8월의 크리스마스' 감독)이 정해준 것이다. 이 안에 나오는 이야기기도 하고, 제목이 달라서 복합적인 느낌을 줄 것 같았다. '다방의 푸른 꿈'이라는 제목을 번역하는 것보다 나았다.
 
   
 
편집점은 어떻게 잡은 건지 궁금하다. 어떤 순서로 자료들을 배치한 것인가?
ㄴ 사실 평론가의 평점이 높게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적으로 무리한 구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앞부분에 김해송을 이야기하는 손석우 선생님의 인터뷰가 영화적 구성을 흐트러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모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김해송에 대해서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손석우 선생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석우 선생님도 또 하나의 전설인데, 영향력을 따지자면 어마어마하다. 내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만 20곡이 넘는다.
 
구성상으로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김해송, 이난영, 김시스터즈에 대해 골고루 할애되는 편집 방향을 좀 더 잡았다. 증언 같은 것들이 들어갈 때, 리듬이 좀 깨지기는 한다. 그러나 그 증언들 전체가 김해송, 이난영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무겁지만 넣은 것이다.

'실화 소재'의 극 영화로도 제작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난해 개봉한 '해어화'도 문득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도 이난영(작품에선 차지연이 연기했다)이 나오기 때문이다.
ㄴ 미국에서 몇 번의 극 영화 제작 시도가 있기는 했다. 한국에서도 지금 이난영에 대한 영화가 준비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김시스터즈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있는 감독이 있는 것 같다.

첫 장면엔 미미 시스터즈와 바버렛츠의 공연이 등장하는데, 당시 섭외 과정이 궁금하다.
ㄴ 먼저, 개막작 상영 당시에 김민자 선생님과 바버렛츠가 같이 공연한 적이 있었다. 여기에 홍대에서도 헌정 공연을 미미 시스터즈, 바버렛츠, 양희은 등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분들 섭외할 때 먼저 찾았던 것 중 하나가 '음악 하는 사람 중 김시스터즈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였다.
 
궁금했다. 미미 시스터즈는 이미 김시스터즈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찰리 브라운을 개사해 미미 시스터즈가 직접 부르기도 했다. 또 없을까 했는데 바버렛츠를 찾았다. 바버렛츠도 시스터즈나 여성 트리오 그룹들을 선망하고, 오마주 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 두 팀을 선정했다. 그 이후 바버렛츠가 알려져서 뿌듯하다.
 
   
 
전작인 '한국번안가요사'도 그런데, 근대음악사에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ㄴ 사실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지, 근대음악사를 조망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작품을 하다 보니 관심을 끌게 됐다. 우리 문화에서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료가 모여있지 않았나 싶었다. 나라도 이렇게 방치된 것들을 모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작품을 하는 것 같다.

번안 가요의 경우는 지금 나오면 표절, 저작권 위배 사항일 것이다.
ㄴ 그때는 표절과 관련해 관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번안의 과정이 우리 가요의 자생력을 갖게 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우리가 모든 영역에서 오리지널리티가 탄탄하게 깔린 것 같다. 지금은 남의 리그에서 가져오는 것 없이 우리 리그에서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면 구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되어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ㄴ 아카이빙이 전혀 안 되어있다. 본인들이 자기 앨범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본인들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빙이 안 되어있다. 김시스터즈의 경우도 미국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자료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미군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도 중요하게 쓰였다.

한국 음악 다큐멘터리의 지속을 위해, 어떤 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할 것 같나?
ㄴ 중요한 질문이다. 그나마 라디오는 디지털화되어 큰 도움을 받았다. 라디오 자료들이 영상에 비해 간단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되지 않은 것 중에 대중가요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을 거로 생각했다. 대중가요 연구는 방송국과 정부가 공동으로 개발해, 공적인 소스를 내놓는다면 훨씬 더 확장성 있게 사용할 것 같다. 필름으로 찍은 것들도 많은데, 어느 정도는 합의에 따라서 디지털화하면 많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1960년대 초부터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우리에게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다.
 
   
▲ 영화 '다방의 푸른 꿈' 포스터
 
음악 다큐멘터리와 관련해 차기작을 구상 중인 것이 있는가?
ㄴ 1960년대~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베트남, 미국, 우리 사회가 동시에 노래의 역사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메시지가 담긴 것을 해보고 싶다.

사실 1970년대는 대중가요가 검열당한 시기였다. 금지곡 같은 경우도 다큐멘터리로 다룰 생각이 있나?
ㄴ 우리가 비록 번안가요 중심이었지만, 1970년대에 오면서 음악 수준이 높아졌다. 1970년대 초반부터 창작이 시작됐다. 저항가요뿐만 아니라 대중가요도 좋은 작품이 많았는데, 결정적으로 1970년대 중반 그 발전이 꺾이게 된다. 유신 정권의 검열 때문이었는데, 1980년대 중반이 되어야 한국가요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최근 블랙리스트 이슈를 통해서, 정치가 문화를 억압하면 어떤 영향이 생기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서유석 가수가 활동금지를 당하고, 이성애는 일본에서 번안가요로 성공했다. 그 지점에서 시작해서 1970년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식 개봉은 먼저 했지만, '다방의 푸른 꿈'의 차기작이었던 '시간의 종말'을 보면 양성원 첼리스트의 연주가 꾸준히 들어간다. 음악적인 소재를 다큐멘터리에 가미했는데,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는가?
ㄴ 영감을 받은 것은 있다. 음악이 단순하게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소모되게 하지 않고, 음악이 이야기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고자 했다. '시간의 종말' 같은 경우는 음악이 이야기와 접목할 수 있어서 적합했던 것 같다. '다방의 푸른 꿈' 같은 경우는 음악만 귀에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시간의 종말' 같은 경우에는 반대로 이야기에 음악이 종속되어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연주 분량을 편집할 때, 분량 면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 음악과 이야기가 연결되는 지점과 거기에서 매력이 촉발되는 지점이 중요한 것 같다.
 
   
▲ 첼리스트 양성원이 등장하는 영화 '시간의 종말'
 
본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독립영화 활동이 많았다. 본인에게 독립영화란?
ㄴ 처음에 할 때는 다른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방해받지 않고 싶었다. 편하고, 빠르고, 많이 제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점점 독립영화 찍기가 어려워졌다 1억을 구하는 거나 50억을 구하는 거나 모두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돌고 돌아서 내가 다시 독립영화의 의미를 찾게 된 이유는 디지털화가 되면서 본래 의미의 독립영화인 예산과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타이밍이 지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맥락 중 하나도 독립영화의 다양성이나 자본의 비종속성을 따져봤을 때 다큐멘터리가 더 쉽다는 기술적 측면이 있었다.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ㄴ '아리랑'은 흔한 것이어서, '아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감상한 적이 없고 공기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김민자가 부른 '아리랑'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음악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다. 그런데도 잊고 있는 지점이 많은 것 같다. 음악이 개인의 삶의 기록을 담고 있다. 어떠한 음악을 들으면 나의 일정 과거 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음악은 개인의 삶에 밀접하게 자리매김하는 문화적 매체다.

끝으로 이 작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나?
ㄴ 지금 세태를 보면, 아이돌의 역사가 K팝의 역사처럼 되어있다. 모던한 음악은 1930년대부터 시작됐다. 김시스터즈의 음악 가족 노래가 끊긴 적이 없는 것처럼, 한국음악도 도도한 흐름이 있었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K팝이라는 것이 퍼졌다. 우리 노래는 중단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김시스터즈처럼 재능 있는 분들이 있었다. K팝은 신생된 것이 아니다. 흥이 있는 것들은 이미 전통이 있는 것이다.
 
   
 
 
[글·사진·영상]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정리] 문화뉴스 박소연 기자 soyeon0213@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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