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이솝우화'의 한 장면.

[문화뉴스] 2013년 1월부터 시작된 '산울림 고전극장'은 명실공히 '연극으로 소설을 다시 읽게 해주는' 프로그램으로서의 자리를 탄탄히 지켜가고 있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산울림 고전극장은 예정된 공연까지 합해, 젊은 극단 11팀과 고전 작품 총 23편을 산울림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임수진 극장장은 "고전 작품은 그동안 '읽어보고 싶지만 재미없어 선뜻 시도하지 못했던 작품'으로 인식되곤 했다"며 "연극으로 고전 작품에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그램"이라며 산울림 고전극장의 취지를 재차 설명했다.

극단 여행자, 작은신화, 청년단, 양손프로젝트의 참여로부터 시작된 산울림 고전극장은 첫 3년간은 자유 주제로 극단이 원하는 고전 작품을 마음껏 공연으로 올리며 진행됐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고전 중의 고전인 '그리스 신화'로부터 차근차근 시대별 주제를 밟아가게 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제는 그리스 시대 작품으로 제한됐고, 올해는 공상집단 뚱딴지, 창작집단 LAS, 극단 작은신화, 맨씨어터가 참여한다.

1일부터 12일까지는 공상집단 뚱딴지의 '이솝우화'(연출 황이선), 15일부터 26일까지는 극단 작은신화의 '카논-안티고네'(연출 김정민), 다음 달 1일부터 12일까지는 맨씨어터의 '아이, 아이, 아이(아이아스)'(연출 한상웅), 15일부터 26일까지는 창작집단 LAS의 '헤카베'(연출 이기쁨)이 차례대로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솝우화'가 개막하는 1일 오후 4시부터 참여 연출가 4명과 임수진 극장장 등이 참석한 기자간담회가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산울림 소극장에서 진행됐다.

   
▲ (왼쪽부터) 이기쁨 연출, 한상웅 연출, 김정민 연출, 황이선 연출, 임수진 극장장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참여 단체 및 작품 소개를 부탁한다.

ㄴ 이기쁨 연출가(창작집단 LAS) : 작년 고전극장에 처음 참여했다. 이번에는 '헤카베'를 다루게 됐고, 현재 각색 작업을 시작해 연습하는 중이다. 그동안 '헤카베'가 자식을 잃은 어미의 비극적인 이야기나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다. 헤카베가 겪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각자의 입장을 다루고자 한다. 무엇이 정의인지, 또한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극을 만들 예정이다.

ㄴ 한상웅 연출가(맨씨어터) : 맨씨어터는 배우로 구성된 집단이다.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을 하게 됐다. 고전극장에 참여할 수 있게 돼 감사한 마음이다. 이번에는 '아이아스'를 올리고자 하는데, 제목은 '아이, 아이, 아이'로 바꿨다. '아이아스'의 맨 앞 두 글자인 A와 I는 '슬프다'는 뜻의 그리스어다. 트로이전쟁이 마무리되는 시점의 사건과 그 즈음 한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ㄴ 김정민 연출가(극단 작은신화) : 우리 극단은 2013, 2014년 고전극장에 정승현 연출가가 두 번 참여했다. 이번에는 '카논-안티고네'라는 공연을 올린다. 유명한 비극 '안티고네'를 '카논(canon)'이라는 음악적 형식을 빌려 현대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안티고네라는 사람은 왕(크레온)에게 도전한다. 희곡에는 국가와 국민, 남자와 여자,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갈등이 등장한다. 그 갈등이 굉장히 현대적이란 생각이 들어 이번 각색에서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 김정민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ㄴ 황이선 연출가(공상집단 뚱딴지) : 지난 해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올해는 '이솝우화'의 각색 및 연출을 맡았다. 이솝우화는 300여개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개중 11개의 이야기를 발췌해, 계절의 변화와 함께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그리스 문학의 모토가 고통을 통해 배우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삶 중 어떤 순간이 희열이고, 고통일까를 고민했다. 표현을 극대화하고자 악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오늘부터 11일까지 공연한다.

ㄴ 임수진 산울림 극장장 : '이솝우화'에는 산울림 역사상 최연소 배우가 출연했다(웃음). 평소 많은 분들이 질문해주시는 게, 고전극장 프로그램에서 산울림은 어디까지를 관여하고, 어디부터 각 극단에게 자율성을 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1년 전부터 극단들과 모여 같이 기획해나가지만, 작품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단체들에게 자유로이 맡긴다. '이솝우화' 전막은 나도 오늘 처음 봤다.

산울림 고전극장이 올해로 벌써 11팀의 극단과 함께 했다. 우리와 같이 하면서 나름의 성격을 찾아간 극단도 있다고 알고 있다. 올해는 공모를 통해 작년 두 팀(공상집단 뚱딴지, 창작집단 LAS)에 두 팀(맨씨어터, 극단 작은신화)을 새로 합류했다. 진정성 있게 연극을 만드는 극단들을 선정했다. ('이솝우화'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많은 관심이 간다. 관객 여러분들도 기대해주시기 바란다.

 

각 공연 각색 작업에서 중점을 둔 부분이 궁금하다.

ㄴ 황이선 : 작년에 '프로메테우스' 각색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이솝우화'도 그랬다. 발췌하고 개연성을 맞춰나가는 작업이 특히 어려웠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현재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여전히 고전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극 말미에 등장하는 늑대들의 이야기는 꽤 고민하며 집어넣었다. 해석은 관객의 몫이지만, 누군가는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사건을 기억할 지도 모른다.

가장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이솝우화'를 각색하게 됐다. '자연스러운 위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우화의 힘을 빌려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배우들과 토론을 많이 했다. 어떻게 비춰질지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고집하고 싶었다. 이게 고전이 무대에 올라와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 황이선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ㄴ 김정민 : 현대적으로 많이 각색하게 됐다. 고전 작품들을 찾다가 '안티고네'를 발견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갈등이 굉장히 현대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라는 사회가 현대 사회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나 잣대가 사람을 억압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 주변에서 물론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만큼 비극적인 일상을 찾아보기는 힘들겠지만, 어쨌든 우리 일상에서 발견되는 평범하고 소소하고 소심한 갈등들이 안티고네와 이어지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ㄴ 한상웅 : 그리스 비극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시적인 분위기나, 대사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것에 첫 번째 주안을 두기로 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현재 우리와 밀접함이 있다는 것을 두 번째 주안점으로 삼았다. 또한 영웅이라 불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비애를 겪고 힘들었던 일반인들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데 각색에 초점을 맞췄다.

 

   
▲ 한상웅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ㄴ 이기쁨 : 작년 고전극장에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로 참여했다. 신화로 창작을 하면서, 당시에 "평소 그리스 비극을 많이 보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웃음). 그러나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화들을 보며 느꼈던 게, 당시의 이야기가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와 많이 닿아있다는 것이었다. 매우 먼 옛날 얘기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과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까 싶다.

이번에도 작품 선정할 때, 어떤 게 현재와 많이 닿아 있을까를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아가멤논이 자신이 처한 관계와 사건에 대해 변론하는 과정이 크게 다가왔다. 각색을 하던 시점이 국정농단 청문회가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청문회 증인들 모두 각자 자기의 모습을 변론하고 설정하는 모습들이 각색 과정에 영향을 많이 미치지 않았나 한다. 내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복수하는 게 정의롭다든가, 법이 정의를 해결하지 못한다든가 등에 꽤 동의하며 각색 작업에 임했다. 현재 우리 사회나 법이 이 이야기와 많이 비슷하지 않나 싶다.

 

   
▲ 이기쁨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ㄴ 임수진 : 고전 작품은 길게는 2천 년이 넘게 이어져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맞는 얘기이자, 가장 현대적일 수 있는 얘기가 고전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그래서 연출가들이 작업을 하다보면 그리스 문학이든 르네상스 문학이든 지금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부분을 반드시 캐치할 거라 생각한다.

만들면서도 느끼지만 관객들도 그걸 느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공감과 감동을 받아 가시길 바란다. 많은 분들이 한 편의 연극을 보시고 '아, 이 작품이 이런 면이 있었구나'를 느끼고 돌아가면서, 그 책을 다시 읽게 됐다는 피드백을 많이 주셨다. 이게 고전극장의 힘이고 매력이구나 싶었다.

 

   
▲ 임수진 극장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솝우화'의 300여개가 넘는 이야기 중에 11개를 발췌하고, 개개의 이야기를 이어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작업일 듯하다. 그리고 배우들 동작이나 음악 등을 통해 무용극처럼 느껴졌다.

ㄴ 황이선 : 우리의 각색 대본을 텍스트로만 본다면 개연성이 상당히 부족할 거란 느낌을 받으실 것이다. 배우들도 연기하기 힘들어했다. 새끼 양을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깊은 감정의 끈을 만나냐 하는 것이다. 결국 그런 부족한 개연성을 채우는 것이 '음악'과 '무용'이라 생각했다. 내가 음악감독에게 형용사로 설정하면 탁탁 맞는 음악을 만들어주셨다.

이야기 발췌 작업 초반에는 20개가 넘는 이야기가 선정됐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돌고 돌아 되돌아오는 계절처럼, 이야기 자체에 너무 심취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가볍게 이어지고 서서히 스며드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산울림소극장,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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