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3일 대학로에서 만난 성기웅 연출가

[문화뉴스] 그 어떤 사소한 질문도 허투루 듣지 않는 연극연출가 성기웅을 지난 달 13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그의 작업은 창작과 연구,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았다. 섬세하고 실험적인 그의 연극은 마치 인간과 그 현실을 미세한 단위로 분석해 담아내는 소우주같달까. 지난 해 12월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서 '과학하는 마음 - 숲의 심연'으로 관객들과 만난 이후, 잠시 다음 작품의 준비 기간을 가지고 있는 그는 "뜨거운 감정을 전염시키는 연극이 아니라 관객의 뇌를 자극하는 연극을 하고 싶다"고 전한다.

성 연출가는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깃븐우리절믄날', '삼등병' 등의 극작 및 연출을 맡았으며,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 3부작과 유미리의 '정물화'는 연출 뿐 아니라 번역 작업에도 참여했다. 현재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대표로도 활동 중인 그는 제4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로 올 하반기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신작 개막을 앞두고 있으며, 오는 5월에는 극단 작업으로 줄리아 조의 'The Language Archive'의 번역극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어는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라는 통계에서 비롯해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가 창단된 이후, 성 연출가는 줄곧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문학성과 연극성 사이에서 새로운 수사학을 탐구하고 고민해오던 그가, 줄리아 조의 작품을 통해 '에스페란토(국제 공용어이자 보조어)'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늘 한국어 중심으로 생각해왔는데 언어 자체나 소멸되어가는 소수 언어, 인공 언어같이 '언어'라는 테마를 넓히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성기웅 연출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연극 '과학하는 마음 - 숲의 심연'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지난 8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서 연극 '과학하는 마음 - 숲의 심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2011년 정보소극장에서 초연을 치렀고 이후 제4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받은 이후, 무려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5년이 지나서야 재연한 이유가 따로 있는가?

ㄴ 따로 없다. 스케줄이 그랬다. '과학하는 마음'의 다른 시리즈들은 등장인물이 많아서 배우가 많이 필요하다. 1편이 16명, 3편은 21명이 나온다. 그렇게 많은 배우들이 모여서 공연을 하기가 어려웠다. '숲의 심연'이 앞서 언급한 두 편에 비해 출연배우 수가 적은 것도 있었다. 또 수상을 했기 때문에 한 번 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과학하는 마음이 있다면 연극하는 마음도 있을 것 같다. 연극인의 연극하는 마음이 궁금하다. 만약 '연극하는 마음'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일상들이 구현되고, 그 일상을 통해 인간의 어떤 모습들에 주목할 것인가?

ㄴ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미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담은 연극들이 있었다. 최근에 4, 5년 동안 바빠서 다른 공연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는데, 대학로에는 연극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연습실이 많다. 그러다보니 가끔 거리를 지나가다 일상적이지 않은 말이 들려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알고 보니 연극 연습을 하는 거였다. 연습한다는 게 때로는 현실과 구분이 안 될 때가 있다. 연극인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 그리고 그와는 떨어진 극중의 시공간을 왔다 갔다 한다. 연극 속의 현실과 실제 현실이 뒤섞이거나 서로 영향을 받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연극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표현하는 일이다 보니 거기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 같다.

배우들이 서로 대사를 겹쳐 말하는 것, 그리고 별다른 이유 없이 무대를 오가는 모습들이 독특하다.

ㄴ 연출자로서 시도한 부분이라기보다는 원작자의 특징이다. 원작자의 독특한 스타일을 충실하게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보통 연극이라는 게 극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들을 압축적으로 모아놓은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말 한마디도 버릴 것이 없는 인생의 진액, 정수를 모아놓은 게 연극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근데 꼭 그런 연극만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충분한 의미와 감정이 담긴 대사와 행동을 무대에서 하는 게 아니라, 조금 느슨하거나 의미나 감정이 함축되지 않은 것도 무대에 올릴 수 있다. 대신 관객들이 각자 거기서 개개의 의미나 재미를 찾게 하는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대사 자체의 정보와 감정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나 말이 이뤄지는 상황과 분위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더 눈이 가게 한다. 관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볼 수 있고 관객마다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게 다를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과학하는 마음'은 주제가 분산되고 여러 곳에서 대화가 이뤄지는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밀도가 느껴졌다. 텍스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아주 잘 나타낸 것 같다.

ㄴ 연극을 크게 셰익스피어식의 연극과 체홉식의 연극으로 많이 나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에너지가 강렬하고 연극적 상상력을 많이 쓰고 자유로운 형식이라면, 안톤 체홉의 연극은 인물의 이야기가 감춰져 있고 대사의 표면적인 것보다는 숨어있는 속마음이나 대사와 대사 사이의 행간이 중요하다.

작가인 히라타 오리자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체홉파의 연극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다발 대화는 원작자인 히라타 오리자 씨가 즐겨 쓰는 방식인데 관객들이 혼란스러워지고 어떤 말에 귀를 기울여야할지 모르겠고 어떤 말은 겹치는 바람에 들리지 않아서 보기 어렵다는 분들도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곧이곧대로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 인물이 말을 주고받는 관계나 양상이 중요하다. 정확하게 어떤 워딩을 하는가가 전부가 아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면 굳이 연극 공연을 볼 필요가 없다. 희곡을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한 말인데 관객이 굳이 두 그룹의 대화를 다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것만 취사선택해 들으면 된다고 하기도 한다. 보통의 관습대로 연극을 보자면 어렵거나 혼란스러울 수 있는 작품이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본다면 오히려 재밌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연극 '태풍기담' 컨셉사진 ⓒ 남산예술센터

성기웅 연출가는 문학에서 연극적 가치를, 연극에서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텍스트 위주의 희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극단 이름을 짓고 연극적으로 극작과 연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됐는데 그 즈음에는 더 했던 것 같다. 말 위주로 이뤄지는 연극은 낡은 연극이라는 식의 생각들이 있었고 이미지를 쓰거나 넌버벌 퍼포먼스가 유행했다. 말보다는 몸, 문학성보다는 신체성을 많이 쓰는 게 새로운 연극성으로 여겨졌다. 그 이후로도 텍스트보다는 공연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언어로 이루어지는 연극이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라 대사를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임을 하거나 넌버벌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말'을 가지고 연극을 하게 된다. 말의 비중이 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이 문제다. 말을 재미있거나 참신하게 쓰지 않고 재미없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내 베이스가 '말'과 '문학'이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극단 이름도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라고 지었다.

선배들의 준비과정은 대본 읽기 연습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앉아서 대본을 분석하고 희곡을 분석하며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쏟아 붓는다. 선배들은 희곡에서 의미와 감정을 거의 다 찾을 수 있고, 인물과 대사를 잘 분석하면 블로킹(연기동선)은 굉장히 간단해진다고 말한다. 즉, 희곡에 쓰인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대본을 잘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공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작업방식의 경우, 리딩 연습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본 분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연습을 하면서, 가령 집에서 혼자 대본을 읽었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나 인물의 감정들을 찾아낼 수 있다. '관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무대디자인에 따라 동선도 바뀌고 대사의 의미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무대디자인과 어떤 배우가 역할을 맡는가에 따라 매 공연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차지하는 비중 이상으로 비언어적인 것들이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과 감정 표현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적이기만 한 텍스트 위주의 연극은 연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연극을 재밌어하고 많은 의미를 찾아주는 이유가 말과 함께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텍스트와 서브텍스트를 구분하기보다는 텍스트를 남다른 방식으로 다루면서 균형을 맞춰가는 것 같다. 둘 중 어느 하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다양한 요소를 통해 입체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 같다.

ㄴ 공연을 하는 이유는 대사를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사에 숨겨진 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요소를 잘게 나눠서 작으면서도 많은 표현을 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배우들이 절제하는 것이고 나쁘게 본다면 연출이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배우들이 자유롭기보다는 억압되고 요구하는 것이 많다고들 생각을 한다.

대사를 말할 때 기본적으로 애드리브가 많지 않고 배우들이 대사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경우도 별로 없다. 대본에 쓰인 대사를 지키고 바꿀 때는 협의를 하는 편이다. 그렇게 보면 배우들에게 주문이 많고 서로 약속을 많이 하는 답답한 점도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대사에 대한 해석을 정해놓거나 강요하지는 않는 편이다. 배우들이 자기의 생각과 감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요구하는 것도 많지만 그 외의 부분은 내가 다 컨트롤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해석을 원하고 연습할 때는 그것을 정리해서 필요한 순간에 약속을 정하는 방식이다. 동시다발 대화도 철저하게 계산해서 말을 하거나 맞춰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름대로 요령이 있다. 시작하는 대사만 타이밍을 맞추고 중간에 2번 정도만 맞추는 식이다.

평소 연출을 하면서 특별히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ㄴ 학생 때 봤던 연극들은 격렬한 감정을 많이 담고 있었다. 이야기도 극단적인 것들이 많았다. 기질 상 그런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드라마만 봐도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감정 표현이 많으면 때로는 그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런 연극에 몰입하지 못하면 객석에 앉아있기 힘들어질 것 같다. 학교에서 우리 세대가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것처럼 무대에서 작가와 스태프들이 정해진 감정을 강요하는 것 같다. 그것을 관객들한테 강요하는 구조보다는 관객의 감각과 호기심을 자극해서 자기 방식대로 연극을 느끼고 해석할 수 있었으면 한다.

뜨거운 감정을 전염시키는 연극이 아니라 관객의 뇌를 자극하는 연극을 하고 싶다. 무대에서 인물을 표현할 때 캐릭터가 분명하고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을 많이들 좋아하지만, 상투적이고 재미없는 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분명한 표현을 할 수도 있지만 애매모호하고 베일에 싸여있는 표현을 하면서 불확실하고 궁금한 순간들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어떤 관객이나 평론가는 '표현이 미숙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미숙한 게 아니라 일부러 관객들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 연기와 표현을 선호하는 것이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보는가?

ㄴ 일상적인 연기를 하다 보니 너무 잘생기고 예쁜 배우보다는, 이웃집 사람 같은데 자신만의 매력이 있는 배우를 선호한다. 배우가 가진 조건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좋은 배우는 많이 있는 것 같다. 대본에 대한 지적인 분석이 좋으면서 재미있는 배우가 조금 더 좋은 것 같다. 그래야 서로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작업이나 연습 자체가 재미없어지는 것 같다.

정교한 연출을 하다 보니 작업하다가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도중에 나간 배우는 없는지 궁금하다.

ㄴ 지금까지는 없다. 대부분 내가 작업하는 방식을 알고 있고 좋아해서 같이 하게 된다. 연출가마다 작업방식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기 마련이다. 내 연출 방식도 역시 그 다양한 스타일 중 하나다. 애초에 내가 쓴 대본이나 무대화하려는 희곡 자체가 소재나 스타일도 보통 연극과는 다른, 개성 있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연극을 하다가 이런 스타일의 연극을 하면 좋다고들 한다.

 

 

   
연극 '깃븐우리절믄날' 컨셉사진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유독 작가 박태원에 주목한 것 같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부터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 그리고 '깃븐우리절믄날' 등. 그동안의 연극들을 통해 박태원의 소설, 그리고 박태원을 둘러싼 이야기를 무대에 그려냈는데, 박태원에 주목한 이유는?

ㄴ 작가나 연출가로서 어떤 인물과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이고 운명일 수 있다. 1930년대라는 시대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박태원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됐다. 다른 인물들도 다루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그 시대의 인물들이 다 문제적이다. 백석 시인도 다루고 싶은 작가다.

박태원을 만나게 됐으니 기왕이면 한 인물을 더 파고들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박태원의 캐릭터가 한마디로 딱 떨어지지 않는 애매모호하고 이중적인 성격으로 느껴졌다. 소설의 경향을 봐도 실험적인 모더니즘 소설이 있고 리얼리즘 소설도 있다. 한 작가가 한 가지 경향을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경향을 보인다.

정치적으로도 1930년대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사회참여문학이라는 문학을 하지 않고 사적인 소설을 썼다. 나중에는 역사소설을 쓰기도 했다. 또 굉장히 자유주의자처럼 보이는데 북한에 가서 역사소설을 쓰면서 북한에서 최고의 작가로 군림했다. 박태원의 인생이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수수깨끼들이 호기심을 자아내고 궁금해졌던 것 같다. 박태원의 작품에 담겨있는 서울 방언들도 너무 좋았다. 표준어와 다른 옛날 서울 지역의 말을 다뤄보고 싶었다.

연출뿐 아니라 극작과 번역을 동시에 하고 있다. 성기웅 연출가의 연극은 섬세하고 정교하다는 평을 자주 받는다. 텍스트뿐 아니라 서브텍스트까지 완벽히 기록하는 희곡 베이스를 만든 후에 연출 작업에 들어가나? 아님 현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스타일인가?

ㄴ 아무래도 대본을 쓰면서 서브텍스트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늘 서브텍스트를 너무 세세하게 결정해놓지 않으려고 주의하며 대본을 쓴다. 연출도 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을 열어가며 대본을 쓰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배우와 스태프들과 찾길 원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상은 정해놓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해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희곡을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연은 매번 올릴 때마다 계속 바뀔 수 있다. 여느 연출가가 말한 것처럼 '생물' 같다. 성 연출은 공연 기간 도중에 연출을 많이 바꾸는 편인지, 바꾼다면 기록으로 남겨두는지 궁금하다.

ㄴ 마음 같아서는 많이 바꿔가고 싶은데 배우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자주 바꾸지는 못한다. 내 공연을 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고쳐서 하려고 한다. 아직 희곡집을 내지는 않았지만 몇몇 작품은 계속 고치기보다는 어느 정도 고정시켜서 출판하려는 생각을 한다. 시기는 내년쯤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새로 준비하고 있는 작업이 궁금하다.

ㄴ 5월에 극단 작업으로 준비하고 있는 초연이 있다. 한국계 미국 극작가 '줄리아 조'가 쓴 'The Language Archive'의 번역극이다. 지금까지는 한국말을 어떻게 무대에서 말할 것인지가 테마가 되어 왔는데 이 작품은 한국어로 쓰인 연극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소수언어를 구하는 보존하는 언어학자가 주인공인데 사라져가는 소수언어와 인공 언어인 에스페란토가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에스페란토를 배운다면 서로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고 언어와 언어 사이의 권력관계도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미국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에스페란토는 그런 게 없다. 모두가 제2언어로서 그것을 쓰기 때문에 서로 대등한 언어다.

이 연극에는 에스페란토가 등장하고 사라져가는 가상의 언어도 나온다. 원래 영어로 쓰인 희곡이지만 에스페란토와 가상의 원주민언어까지 세 가지 언어가 나온다. 늘 한국어 중심으로 생각해왔는데 언어 자체나 소멸되어가는 소수 언어, 인공 언어같이 언어라는 테마를 넓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극장은 선돌극장으로 예정돼 있다.

성기웅 연출가가 연극을 만드는 방식은 '작업'과 '연구' 사이 어딘가가 아닐까 싶다. 오랜 기간 연극을 해온 동력이 궁금하다. 왜 '연극'인가?

ㄴ 극단 이름을 '제12언어연극연구소'라고들 부르시는데 내 작업들이 대단한 연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창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공부를 더 했을 지도 모르겠다. 30년대 일제강점기 문학이나 옛날 서울말을 공부한다거나 연구하고 싶지만, 창작과 연구 중에서 재미있는 창작물을 만드는 게 목표가 되다 보니 대단한 연구를 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연극을 전공하게 됐고 연극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젊었을 때는 큰 욕심이나 욕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이것저것 했던 것 중에 연극이 약간 매력이 있고 재밌는 정도였다. 오히려 힘들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나마 연극이 해볼 만하다 싶은 정도라서 전공하게 됐는데 해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었다. 표현이 과하지 않은 박근형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처럼 내 취향에 잘 맞고 따라 하고 싶은 작품들이나 선배 연극 작가들을 발견하면서 이 길에 오게 된 것 같다.

옛날에는 시니컬하고 부정적이었다면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변했다. 연극하는 일이 즐겁고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은 축복받은 일 같다. 처음엔 극작을 하려고 생각했는데 혼자 작업을 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일하는 게 즐겁다. 또 다른 예술 장르를 공부했다면 거기에서도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할 것 같다. 다른 예술 장르에도 재미가 있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성기웅 연출가와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활동이 궁금하다.

ㄴ 작년에 극단에서 '마음의 회로'라는 신작을 강민백 작가가 연출했다. 대전에서 열리는 '아티언스'라는 과학 관련 융복합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대전 관객들만 만났기 때문에 대학로 쪽에서 개작한 공연을 올리려고 준비 중이다.

다른 극단처럼 1년 내내 공연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조금 느슨하게 모여 있다. 지금까지 주로 한국어를 다루려고 했다면 이제는 언어 전반으로 테마를 넓히고 싶다. 요즘은 다문화사회로 진입해서 다언어적인 감각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언어가 뒤섞이거나 충돌하는 것도 다루고 싶다. 감정이 흘러넘치는 연극은 잘하시는 분들도 많고 다른 극단에서도 많이 하기 때문에 차분하고 이성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 연극과 과학인의 기술을 접목하는 작업도 하고 싶다.

미래의 성기웅 연출가는 어떤 모습일까?

ㄴ 연극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하던 작업에서 조금 넓혀서 다른 일이나 다른 장르도 해보고 싶다. 그동안 극작가로서 조금 게을렀던 것 같다. 연출은 일정이 잡혀있어서 할 수밖에 없고 내가 준비가 부족해도 배우나 스태프들이 해주는 것들을 모으면 작품이 됐다. 하지만 극작은 혼자 해야 하고 때로는 마감이 있지만 당장 기한이 있는 게 아니다. 바쁜 스케줄 속에 연출보다는 극작하는 게 밀려있어서 극작 작업을 더디 해왔다. 이제 희곡을 쓰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 소설을 쓰거나 텍스트 창작, 다른 영상을 위한 대본도 써보면 어떨까 싶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정리] 문화뉴스 김수미 기자 monke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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