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처음에 이것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그저 죽음을 앞둔 젊은이의 엄숙한 몇몇 대사로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1년 정도 하면 되겠지…'라고. 그런데, 편집본을 보여줬더니 배급사가 거절했다. 여기 저기를 찾아다녀도 모두들 마찬가지였다. '공감이 가지 않는다. 왜 주인공이 이것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심지어 '이런 걸 왜 만드냐?'며 냉대를 하기도 했다." - 임정하 감독 노트 中
 
1일 개봉 이후, 3일간 한국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임정하 감독의 이야기다. 이 다큐멘터리는 3개월 시한부 말기암 선고를 받은 20대 청년 이윤혁이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뚜르 드 프랑스' 풀코스를 완주하겠다고 결심하고, 완주에 이르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윤혁이 완주에 성공한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는 매년 7월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의 3,500km를 일주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사이클 대회다. 실제 프로 선수도 레이스 중 세상을 떠난 일이 있을 정도로 관계자 사이에선 '악마의 레이스'로 유명하다.
 
그러나 지난 2010년 7월, 27세로 영면한 이윤혁 씨의 숭고한 일주는 영화화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작품의 공식 크레딧에 기재된 감독은 총 4명(임정하, 전일우, 박형준, 김양래)이다. 연출자가 2명인 경우는 종종 볼 수 있고, 옴니버스 영화의 경우 연출 에피소드 수에 따라 감독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영화에 4명의 감독이 나란히 크레딧을 올리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마치 '뚜르 드 프랑스'가 정해진 시간에 코스별로 골인해야 다음 스테이지로 이어갈 수 있는 것처럼, 상업영화들은 기획부터 제작, 개봉까지 짜인 스케줄을 가지고 움직인다.
 
   
 
 
1,000여 시간의 촬영본 편집을 처음 시작한 감독은 프로젝트 총괄로 이윤혁의 '뚜르 드 프랑스' 49일간의 전 일정을 현장 지휘한 전일우 감독이었다. 2009년 '뚜르 드 프랑스' 완주에 도전하려고 하는 이윤혁을 발견하고 이 프로젝트를 최종 성사해, 프랑스행 비행기에 윤혁을 실었다. 하지만 전일우 감독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편집을 진행하지 못했다. 뒤이어 박형준 감독과 김양래 감독이 각 1년여의 편집을 진행했지만, 시간 관계상 완성하지 못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제작자인 임정하 감독이 직접 편집 프로그램을 배운 후, 맨땅에 헤딩하듯 편집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5년 DMZ다큐영화제에 초대되면서 이윤혁의 이야기는 빛을 보게 됐다. 임정하 감독은 왜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을 세상에 내놓았을까? 그리고 이윤혁의 삶은 임정하 감독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임정하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계기는?
ㄴ 2011년 2월에 제작으로 참여하게 됐다. 같이 일하던 박형준 감독님과 사극 액션 영화를 준비 중이었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하자고 제의가 왔다. 사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극 영화를 했던 사람이었고, 그것으로 내 승부를 건 사람이었다. '뚜르 드 프랑스'도 몰랐다.
 
처음엔 찾아보기도 했는데,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는 기획을 어떻게 하는 것보다, 결과물을 어떻게 뽑아내느냐가 중요해서 편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형준 감독님이 편집한 것을 믿고 시작했었는데, 중간에 엎어졌다. 촬영한 소스가 너무 많았고, 필요한 장면이 없는 것도 있어서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때 오기가 발동해서 해보자고 했고, 다 갖춰진 상태였다면 우리에게 왔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실력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뚜르 드 프랑스'를 몰랐다고 했지만, 작품을 준비하면서 실제 선수들의 경기를 봤을 거로 생각한다. 참고한 내용이 있다면?
ㄴ '뚜르 드 프랑스' 출전 선수들은 진짜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했다. 그 사람들이 스테이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진짜 무서운 싸움을 펼친다. 기량이 단순히 뛰어난 것을 넘어서 팀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팀을 잘 배치해서, 다른 팀에게 영향을 주고, 선두를 차지하는 정치적인 면도 있어서 엄청났다. 진짜 보면 박진감 넘치는데, 사이클이 이런 건가 싶었다.
 
윤혁의 레이스는 성격이 다르다. 타인과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와 경쟁을 했다. 시간 싸움도 아니어서 그런 면이 좀 달랐다. 사실 경쟁 상황에서 자신의 역량이 더 나올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 에너지와 집중력을 더 쓰는데, 혼자서 하면 그런 게 쉽지 않다. 잠시 쉬면 되고 그렇다. 자기를 잡아줄 수 있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완주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료들이 있어서였다. 그 사람들이 응원해서 자전거에서 내릴 수 없었다. 누군가가 옆에 있으므로, 자기를 지원해주고, 도와줘서 갈 수 있었다.

'프로덕션 노트'에 배급사에 편집본을 보여줄 때마다 "이런 걸 왜 만드냐?"는 냉대를 받았다고 쓰여 있었다.
ㄴ 이게 사실 2015년 DMZ다큐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었는데, 편집본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극장 상영 현재 버전이 97분이다. 114분이 되는 버전도 있었다. 지금의 구성에도 러프한 형태는 두고 있지만, 디테일 면에서는 지금과 달랐다. 그걸 보여줬더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있었다. 매력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인가?"라는 비판이 있었다. 별로니까 하지 말라고 투자자 친구들이 만류하기도 했다. 극 영화만 만들고 하면 되는데, 이런 다큐를 왜 하느냐고도 들었다.
 
   
 
총 편집을 제목처럼 49차로 진행했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색채와 '윤혁'의 숨소리가 매우 잘 들렸다.
ㄴ 후반 작업을 지원받아서 했고, 믹싱을 통해 완전히 다듬었다. 지금이야 대사가 들리는데, 그전엔 잘 들리지도 않았다. 자막을 넣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DI(색보정)를 해서 색감을 조절했다. 비율도 16:9에서 1.85:1로 바꿨다. 색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출발하는 장면부터 개선문에서 질주가 끝날 때까지 원색을 위주로 했다. 그 전과 그 이후로는 그레이톤으로 색 보정을 했다. 프랑스 부분의 색감을 좀 더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앞부분의 장면을 새로 편집하기도 했다. 
 
숨소리 같은 경우는 '윤혁의 힘든 모습을 어떻게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했다. 그냥 올라가는 것보다 숨소리를 들려주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피레네 산맥 부분에선 호흡 소리에 많이 집중했다. 다른 잡소리가 있어서 묻혀있었는데, 헉헉하는 소리를 할 때마다 라이딩 중 몸이 흔들리는 게 맞춰졌다. 관객도 함께 산을 오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114분에서 97분으로 상영시간이 짧아졌는데, 아쉽게 편집한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어떤 것이 있나?
ㄴ 러닝타임이 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1시간 40분을 잡고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막판엔 조금 뺐다. 공들여서 편집했던 것이 많았다. 이미 화면에서 이야기된 것이라서 다시 한번 반복한다는 생각이 들어 뺀 것이 있다. 윤혁 씨가 "나는 목표만 보고 왔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옆을 보니 동료들도 있고, 하늘도 너무 예쁘고, 해바라기밭도 내가 그린 것이 있었다. 옆을 보니 같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 윤혁 씨는 앞만 보고 목표를 향해 간다였다. 딱 그것에만 집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있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이미 '미쳤어' 노래가 나오는 몽타주 장면에서 서로 친해지는 과정이 있다. 그래서 눈물을 흘려가며 뺐다.
 
   
 
'미쳤어'가 나오는 장면이 아무래도 관객들도 가장 즐겁게 본 대목이 아닐까?
ㄴ 윤혁 씨가 이렇게 라이딩만 하면 멤버들도 힘들 테니, 음악을 틀어준다. 어떤 날은 재즈 음악도 듣고, 힘찬 노래, 신나는 노래, 조PD의 노래도 듣고 했다. '미쳤어'를 틀었을 때는 윤혁 씨의 체력이 한계를 느끼지만, 정신적으로 서로 익숙해지는 무렵이었다. 윤혁 씨가 정신을 놨다고 해야 할까? '에이, 그냥 해보자'라는 상황에서 윤혁 씨가 긴장도 풀리니 그 노래를 틀었던 것 같았다. 이 부분을 쭉 묶어서 몽타주로 편집하고 싶었다. 음악도 경쾌하고, 어느 정도 갈등이 해소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초중반은 긴장의 연속이다. 계속 주변 인물들이 싸우기 때문이다.
ㄴ 별거 아닌 것 가지고도 싸운다. 들어보면 서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싸운다. 아주 원초적인데,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겠지만 웃기면서 귀여웠다. 현장에선 괴로웠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솔직한 부분을 보여준 것이다.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었고, 왜 나는 힘들게 일을 하는데 칭찬을 하지 않아 주는 거야라는 부분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극한상황에 처하면서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인데, 사랑스러우면서 오글거렸고 좋았다.
 
   
▲ 2009년 이윤혁의 여정에 함께 참여한 이들.
 
작품에서 오르막 구간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그 부분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ㄴ 스테이지 21개 중에 9, 16, 20 스테이지에 집중했는데, 다 산맥을 거치는 것이다. 평지구간에서도 할 말이 많지만, 거기에 집중한 이유는 시각적으로도 모양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피레네, 알프스, 몽방투 지역 모두 산이나 집의 모양이 다르다. 피레네가 에너지가 강한 상태에서 파이팅이 넘친 상황에 오르는 스테이지라면, 알프스나 몽방투는 같이 함께한다는 개념이 생길 때 등장하는 스테이지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지만, 함께 달린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정 중반부에 메케닉 담당인 윤학병 형님이 힘들어서, 윤혁 씨를 놔두고 갈 수 있었다. 영화 '히말라야'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지만, 누가 낙오되는데 놓고 가야 할 때가 있다. 걱정을 많이 했다. 산에 올라갈 때, 윤혁 씨가 자기도 힘들지만, 학병 형님을 받치고 올라간다. 윤혁도 변했고, 사람들도 변했다. 몽방투에서 비로소 자기 성찰에 도달한다. 그렇게 풍족한 프랑스 남부 지역에, 그렇게 척박한 땅이 있다. 마치 델포이 신전을 올라갈 때 보는 돌산의 느낌이었다. 윤혁 씨가 자기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스테이지라 봐서 다른 스테이지를 빼고 집중을 하게 됐다.

편집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ㄴ 윤혁 씨는 농담도 잘하고, 흉내도 잘 낸다. 처음엔 보면서 조금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수술 상처를 가지고 윤학병 형님이 "너 '왕'자가 많아"라고 하자, '비싼 지네 문신'이라고 우스개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놀랍기도 했다. 약간 이상한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아이는 농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병 상황이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질적으로 쿨하고, 자기가 힘든 것을 농담으로 털어버리려고 했다.
 
나중엔 그런 부분이 슬프게 다가왔다. 왜 그런 말이 나왔겠느냐는 맥락을 가늠해보면 좋을 것 같다. 계속 연구하다시피, 공부하다시피 아이를 생각했다. 그 아이가 쓴 일기 등 남겼던 것을 계속 보고 했다. 그리고 인터뷰했던 것을 다시 확인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윤혁 씨가 병상에서 자신의 레이스를 보게 된다. 특히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장면이 들어갔다.
ㄴ 전일우 감독님이 윤혁 씨가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보며, 2주 만에 몇월 며칟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뮤직비디오처럼 담아 편집해서 틀게 됐다. 윤혁 씨의 감정을 보여주는 컷이 있는데, 비행기 안에 있는 장면의 영상 소스(병상 현장 촬영)가 없어서 만들기도 했다. 간성혼수 상태에 있지만, 의식이 잠깐 있었을 때, 윤혁 씨는 "나는 '뚜르 드 프랑스' 때문에 몸이 나빠졌지만, '뚜르'는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꿈이 시작될 때,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 "나 드디어 간다"라고 너무 좋아했던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던 때라고 생각했다. 꿈이라는 것은 과정에 가깝지만, 사실 꿈은 가혹하다. 꿈이 남들이 볼 때는 아름답다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가면 힘들다. 꿈을 꾸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힘든 걸 감수해야 하는 것도 들어있다. 프랑스에서 힘든 과정을 이 친구가 겪는데, 프랑스에 도달하기 직전 비행기에선 꿈을 꾸는 순간이라 너무 좋았다는 생각이 나서 그 장면을 넣게 됐다.

총 4명의 감독이 작품에 참여했고, 언론·배급 시사회 당시 이윤혁 씨의 어머니가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분들은 어떤 말을 남겨줬는가?
ㄴ 감독님마다 조금씩 관점이 달랐다. 뭘 중요시하냐가 있었는데, 대체로 "좋다", "고맙다"고 하셨다. 어머니도 너무 좋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영화의 내용보다는 사실은 아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크셨다. 이제 볼 수 없으니, 매번 시사 때마다 오신다. 거의 다 보셨다. 저렇게 반복적으로 보면 지겹지 않겠냐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보실 때마다 우신다.
 
   
▲ 임정하 감독이 지난해 12월 열린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극 영화 이야기를 했는데, 이 작품 역시 극화를 한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ㄴ 사실 제안도 받아서, 검토 중이다.

마케팅, 프로듀서 등 다양한 영화 활동을 했고, 이번이 첫 연출 데뷔작이다. 첫 연출작 소감이 어떤지도 듣고 싶다.
ㄴ 사실 연출 크레딧을 결정하지 못해 출품 전에도 고민을 많이 했다. 무거웠다. 왜냐하면, 연출자는 책임을 져야 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연출하게 된 이유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되게 부담스러웠고, 인터뷰할 때는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인터뷰하지 않는다고 거절도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서 약 25년의 세월을 영화와 함께했다. 영화인을 꿈꾸는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하지 말라고 한다. (웃음) 각오가 되어있냐고 묻고 싶다. 찾아오면 하지 말라고 한다. 너무 힘들다. 하려면 진짜 각오를 해야 한다. 꿈은 그렇다. 꿈을 꾼다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꿈에는 분명 대가가 필요하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 거기부터 시작해, 다른 과정에서 생기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에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 끝까지 가다 보면 도저히 안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한 발 짝 더 해야 한다. 보통 거기서 그만 가게 되는데 거기서 한 발짝 더 가야 한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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