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소개 기자간담회'가 7일 오후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렸다.

[문화뉴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3월부터 12월까지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르는 시즌 프로그램 10편을 7일 발표했다. 

 
작품들은 예술 검열, 블랙리스트, 예술계 내 성폭력, 사회적 소수자, 전체주의, 박정희 등 한국사회와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사회적 화두를 포함한다. 서울문화재단 주철환 대표는 "저희가 추구하는 것은 시대정신과 실험정신이 있는 작품들을 잘 선별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 시대를 바라보는 많은 시선들에 선물할 수 있는 작품들을 고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은 "남산예술센터에서는 다채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는 작가를 선정해서 관객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한다"고 말하며 "저희들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 올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도에 이어 변함없이 민감한 동시대 주제를 발굴하는 작가들과 손을 잡았고 이러한 작품들이 1년 내내 남산예술센터를 채워줄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먼저 '서치 라이트 2017'은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새롭게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희곡, 창작자의 메모장 속에 잠들어 있는 미완의 텍스트, 극단의 회의 테이블에 머무르고 있는 아이디어, 퍼즐이 맞춰지지 않은 낱장의 장면 등 모든 창작 전 단계, 제작 중 과정에 있는 미완의 콘텐츠들을 미리 공유해 보는, '아직·미정·미확정의 무대'다. 
 
   
▲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미정의 무대 위에는 낭독공연, 짧은 워크숍, 30분 이내의 쇼케이스, 주제 리서치를 위한 전문가 Q&A, 공개토론, 컨퍼런스, 프레젠테이션, 피칭 등 다양한 형식으로 '과정 중 콘텐츠'가 소개된다. 지난 24일부터 공모 접수 서치 라이트를 밝히고 있으며, 12일이 접수 마감이다. 신작을 준비 중인 창작자 개인 및 단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은 3월 남산예술센터 무대에서 관객들과 상호 공유한다.
 
2017년 남산예술센터 시즌을 여는 첫 작품은 연출가 이연주의 '2017 이반검열'이다. 이반은 '일반'에 대한 상대적 명칭으로 주로 동성애자를 이르는 말로 쓰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불온'한 대상으로 낙인 찍혀 검열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지난해 초연 이후 불과 1년 사이 급변한 사회적 환경을 반영하여 검열이라는 주제를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로 확장시키고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질문한다. 
 
이연주 연출은 "올해 재공연을 남산예술센터에서 하게 된 이유는 공공극장 안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들,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희 공연은 대사의 100%가 실제 당사자들의 구술 인터뷰를 통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러한 목소리들을 꺼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의 구자혜 연출이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2015년부터 동시대의 키워드에 천착해 온 구자혜는,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를 통해 2016년에야 비로소 수면위로 떠오른 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무대 위로 소환하여 가해자의 사과와 변명, 자기방어뿐만 아니라 이를 정당화하고 사건화시키지 않는 제도의 묵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공연은 작년 한 해 수면 위로 떠오른 문단, 미술, 서브컬처 등 다양한 예술 장르 내 성폭력 문제를 무대 위로 소환한다. 
 
구자혜 연출은 "실제로 제가 너무나 좋아했던 작가가 있었는데 그 작가가 가해자로 지목되었고 그 작가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조차 가해의 공모자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는 타 장르를 다루기도 하지만 연극무대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까지 도달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2016년 3월, 남산예술센터와 공동제작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개막 당일부터 연일 매진 기록을 세우며 객석점유율 116%를 달성했고, 연극계와 관객들의 추가 공연 요청에 힘입어 1회 특별공연을 추가하는 전례 없는 기록을 남겼다. 관객과 평단의 극찬 속에 전석 매진, 전회 기립박수를 받으며 창작연극의 가능성을 보여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올해 5월, 다시 한번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박근형 연출이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박근형 연출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네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군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년에 공연을 마치고 몇몇 선생님들이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해주셨다. 그런 장면들을 수정, 보완해서 올해 공연을 올리려고 한다. 배우, 스텝의 큰 변화 없이 올해도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인철 연출은 '검열각하'를 준비하던 중, 한 지자체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년이 되는 해로 수억의 제작비가 드는 뮤지컬을 제작한다는 기사를 보게 됐고 오히려 '내가 먼저 박정희 대통령의 삶을 찬양하는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이는 '국부 國父'는 한반도를 둘러싼 거대한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다. 지도자의 신화가 깨진 2017년, 찬양의 말을 빌려 역설적으로 그들은 진정한 국부인지 질문하고자 한다. 
 
전인철 연출은 "'국부'는 작년 '검열각하'에서 '초인'이라는 30분짜리 단편으로 공연됐었다. '초인'은 김재규의 총에 맞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초인적인 보여줬는지에 대한 작품이다. '국부'는 초인에다 김일성의 이야기가 하나 더 겹쳐져서 한반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김일성과 박정희를 찬양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전윤환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5년 '혜화동1번지 가을페스티벌-상업극'에서 공연됐던 '창조경제'는 배우들의 '창조활동'과 '경제활동'을 오디션 방식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교차시키며 각자의 창조적인 실천과 원하는 꿈의 간극, 그리고 내적인 갈등을 보여줬다. 2017년 앤드씨어터는 '나의 창조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한 문장을 공공극장 남산예술센터와 함께 실현해 보려 한다. 
 
전윤환 연출은 "혜화동1번지 동인의 캐치프레이즈로 '우리는 상업극에서 벗어난 실험성을 고민하는 극장이 되겠다'고 했을 때 과연 이 시대에 실험성과 상업성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정의 내려져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기조인 '창조경제'가 떠올랐고 배우들의 창조활동이 어떻게 하면 경제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형식을 차용해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서현석 작가, 아트선재센터와 남산예술센터와의 협업은 기존 연극인들에게는 낯선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낯선 만큼 극장의 기능과 기존 메커니즘에 대한 관성적인 사고를 뒤바꿔 줄 전복적인 상상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신작 '천사'(가제)의 주인공은 남산예술센터 건물이다. 연극은 남산예술센터만의 고유한 건축적 특징을 관객들의 인식으로 불러들여 극장 안에서 발생하는 관객들의 감각 그 자체를 작품화한다. 관객들은 폐건물처럼 텅 빈 극장에 홀연히 입장해 김중업이 설계한 건축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 '천사(가제)' 서현석 연출이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서현석 연출은 "혼자 보는 연극을 주제로 하다 보니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중요하게 다가왔다. 작품의 주인공은 극장이라고 할 수도 있고 '남산예술센터'라는 특수한 존재감을 가진 공간, 또 한편으로서는 그 건물이 가지고 있는 텅 빈 무대, 텅 빈 객석들을 모티브로 해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힐링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제목을 붙였고 그런 체험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작품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7년 백수광부의 '오레스테스'에서 작가와 연출로 작업한 바 있는 극작가 고영범과 연출가 이성열은 '에어콘 없는 방'을 통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 '에어콘 없는 방'은 한국희곡에서 보기 드문 '의식의 흐름'에 따른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 흥미로운 작품으로 1906년 하와이에서 태어나 한국, 상해, 미국에서 살았던 실존 인물 '피터 현'에 대한 이야기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아버지의 국립묘지 안장행사를 치루기 위해 해방 이후 30년 만에 한국을 찾은 피터현의 혼란과 분열을 다룬다. 
 
이성열 연출은 "이 작품은 2016년도 벽산희곡상 당선작인 고영범 작가의 작품이다. 당선 당시 '유신호텔 503호'였는데 초고의 제목은 '에어콘 없는 방'이었다. 당선 후에 초고의 제목이 더 좋다는 의견이 많아서 제목을 다시 수정했다"고 전했다. 덧붙여 "하나의 호텔방에서 세 시간대의 이야기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펼쳐진다. 한여름에 찜통 같은 방의 의미적 상황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느껴지지 않나. 부제를 '찜통'으로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 '에어콘 없는 방' 이성열 연출이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10월에는 배우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사물이 주인공이 되는 오브제 씨어터 '십년만 부탁합니다'가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무대 위 주인공이 되는 오브제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마치 사람들과 같이 지난 십 년 동안 각자의 삶의 여정을 보내고 돌아온 이 사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김현진 연출은 "이 공연은 10년 전의 전시, 그리고 그 이전부터 있었던 작가와 작품의 여정으로부터 시작되며 사물들이 주인공이 되는 공연이다. 애초부터 남산극장을 염두에 두고 공연을 생각했고 우연 관장님께서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작년에 파일럿 단계로 프로덕션을 했었다. 올해는 여러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 보완했고 새로운 부분들을 많이 가미해서 다시 올려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이주요 연출은 "저는 극장과 전시장이 완전히 다른 입체라고 생각했다. 이 오브제들이 스토리가 많다. 제가 만들었고 팔리지도 않는 작품이었다. 만든 방식을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 기대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켓에서는 가능하지 않았고 10년 동안 좋다는 사람들에게 맡겼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다 들어있다. 스토리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극장으로 가보자,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서 가지고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 김수정 연출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남산예술센터에서 '파란나라'를 올린다.
 
2016년 남산예술센터가 공동제작한 '파란나라'는 배우들의 학교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일반 학생들이 출연해 권력관계가 판치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받은 응원에 힘입어 올해 11월, 다시 한번 남산예술센터 무대를 장악한다. 2017년의 '파란나라'는 각 상황 간의 개연성을 더욱 섬세하게 구축하고, 관찰자 역할을 통해 비관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부각시켜 한국 교육현장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개인의 자유와 존엄으로 주제를 확장할 예정이다. 
 
김수정 연출은 "'파란나라'는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있는 파란나라를 꿈꾸는 아이들이 파란나라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작년에 공연하고 나서 제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파란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저는 '파란나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 현실을 바탕으로 그다음에 꿈과 희망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라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연출가 박해성은 권여선 작가의 소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희곡으로 각색하여 관객들과 만난다. 소설은 2002년 월드컵 직후, 어느 여고생이 처참하게 살해된 사건에서 시작한다. 끝내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충분히 애도되지 않은' 죽음은 남은 이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그 내면과 삶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이 사회, 이 국가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신의 당위와 선함에 대해 분개에 찬 물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박해성 연출은 작가의 이러한 집요한 시선을 연극의 문법과 극장의 공간이 가진 특성으로 풀어낸다. 
 
   
 
 
박해성 연출은 "죽음 자체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죽음이 만들어 낸 치명적인 파장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극적인 줄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섬세한 상처'를 어떻게 극장적으로 옮겨낼 수 있을지 고민을 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죽음이 있었고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해 애도보다 분노를 먼저 해야만 했다. 이 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해서 조용히 애도하고 성찰을 할 수 있는 '침묵의 기회'가 올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시즌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7일 상반기 공연 패키지 티켓이 오픈됐다. 대상 공연은 '2017 이반검열',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국부 國父',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등 5편이며,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예매할 수 있다. 
 
[글] 문화뉴스 김수미 인턴기자 monkey@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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