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난 내 삶을 사랑한다. 너도 네 삶을 내 반만이라도 사랑하렴'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고, 스타 중심의 대중음악계를 혐오, 기성 질서의 파괴를 선동하는 음악인 '펑크'는 1970년대 경기침체와 고실업이 만연했던 영국 런던에 열풍을 일으켰다. 단순한 코드, 짧고 거친 음악으로 음악적으로는 높이 평가받지 못했지만,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과 순수발열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펑크를 통해 '런던타운'은 15살 사춘기 소년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성장을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이혼, 매일 쌓여가는 빚, 어린 여동생까지 15살 소년 '셰이'가 감당하기엔 하루하루 지치는 나날이다. 가족을 버리고 런던에 간 엄마가 밉지만, 한편으론 이런 시골구석에 박혀있는 아빠보단 엄마처럼 문명의 도시 런던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엄마가 편지에 보낸 테이프로 펑크 음악을 접하고, 아빠의 심부름으로 간 런던 기차 안에서 비비안을 통해 '셰이'는 펑크에 매료된다. 그 와중에 아빠의 사고로 한순간에 가장 역할을 맡게 된 그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과 펑크를 통한 자유와 저항, 두 삶을 오고 가게 된다.
 
   
 
영화 '런던 타운'은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음악영화로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펑크 음악보다 15살 소년과 그의 가족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약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실망할지도 모른지만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주옥같은 펑크 넘버들은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런던타운'은 갑작스레 가장 역할을 하게 된 '셰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상황 앞에 놓이면서 소년에서 어른으로 한걸음 성장한다. 시골에서 피아노 가게 일을 하는 아버지가 한심해 보이고, 런던으로 꿈을 향해 가버린 엄마가 낫다고 생각했지만, 런던에서 엄마와 지내면서 그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결국 엄마는 가족을 책임지지 않고 떠났고, 가족을 지키고 책임지려 했던 건 아버지였다는 걸 깨닫는다.
 
   
 
또, 사춘기 소년의 풋풋한 첫사랑도 볼 수 있다. 진한 화장, 노란 머리, 과감한 의상의 '비비안'은 시골 마을 '셰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런 그녀로 인해 처음 검은 머리로 염색도 해보고, 클래쉬 콘서트도 같이 가고, 운전도 배우는 등 새로운 것들을 해나가며 조금은 소년에서 남자로 거듭나려 하는 '셰이'의 풋풋한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연한 기회로 클래쉬에 '존 스트러머'를 만나게 되고, 그와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선보이게 된다. 아쉬운 점은 가족이야기, 그리고 소년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존 스트러머와 셰이의 우정이라는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이 우정을 쌓게 되는 사건 없이, 우연한 첫 만남, 또다시 우연한 만남만으로 '존 스트러머'가 마지막에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에 대한 타당성이 약하다는 게 아쉽다. 그러나 197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자유를 외치는 국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펑크와 조화시킨 점은 굉장히 이색적이고 독특하며, 화려하다.
 
   
 
"모두 깨어나세요, 여러분" - 존 스트러머 대사 中
펑크의 공격적이고 거친 사운드로 관객들을 깨워 줄 영화 '런던타운'은 2월 16일 개봉예정이다.
 
문화뉴스 태유나 인턴기자 you@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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