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측부터 다다 역 구도균, 애꾸 역 김영택, 루비 역 나하연, 제인 역 김지원, 퍼그 역 오민석, 멸치 역 문병주

[문화뉴스] 10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되는 연극 '소나기마차'가 9일 프레스콜을 진행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소나기'가 세상을 잠식해가는 시대에 허름한 마차 한 대가 마을에 도착한다.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끌던 퍼그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천막을 두드리며 공연을 준비하라고 외친다. 어기적거리며 마차에서 기어 나오는 애꾸, 루비, 제인, 멸치 다다는 모두 '소나기마차'의 단원들이다.
 
단원들은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퍼그는 공연을 보면서 사람들이 내는 웃음소리가 위협적인 소나기를 멀리 쫓아버릴 거라고, 소나기마차는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떠들어댄다.
 
   
 
2015년 창작산실 대본공모부터 일 년여 동안의 심사와 시범공연을 거쳐 무대에 오르는 '소나기마차'는 오랜 준비 기간 만큼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인다.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작가 신채경과 다양한 작품의 스펙트럼을 소화하고 있는 연출 문삼화가 만난 이번 작품은 두 명의 조합만으로 많은 연극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민석, 김지원, 구도균, 문병주, 나하연, 김영택 등 공상집단뚱딴지와 함께 해온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합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린 전막 시연 이후 '소나기마차'의 문삼화 연출과 신채경 작가가 참여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의 중엔 본 작품의 결말 스포일러가 들어 있다. 

   
 
일여 년 동안 작품을 준비하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ㄴ 신채경 : 데뷔 때 '핑키와 그랑죠'로 문삼화 연출님과 인연이 닿았고 이번에 두 번째로 같이 작품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시간이 길었던 만큼 대본을 쓸 때와 대본을 다시 다듬어나갈 때가 달랐던 것 같다. 첫 번째 초고를 완성할 때는 쇼를 할 것이냐 아니면 사람들이 기피하더라도 이야기를 할 것이냐가 중요한 화두로 다가왔고 대본을 고치면서는 그게 내면으로 깊이 들어왔다.
 
공연이냐 쇼냐의 문제도 있지만 그걸 넘어서 무엇을 전달하려는 사람이 자기 자신도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타인을 설득시킬 수 있겠냐는 질문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대본을 고치고 배우들과 합을 맞춰나갔다.
 
ㄴ 문삼화: 작년 5월에 쇼케이스를 했던 것 같다. 그때도 여러 번 수정을 했는데 이번에 다시 연습에 들어가면서 또 여러 번 수정했다. 극단적인 이야기라서 연습하는데 기가 빨렸고 지친 부분도 있었다. 나쁜 의미로 지치는 것이 아니라 하도 달리니까 지쳤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작가님이 '마차'로 쓰셨는데 무대 디자이너님이 '자전거'라는 아이디어를 냈고 저는 그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제목과 어울리게 하기 위해 자전거로 결정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마차로 갔고 포스터에도 마차가 그려져 있다. 자전거로 바꾸면서 본의 아니게 배우들을 학대하게 된 것 같다. 
 
   
 
배역들이 자신의 내면이나 정체성과 행동하는 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부러 삐걱삐걱하는 것을 의도했는지 궁금하다. 
ㄴ 문삼화 : 어떤 의미로는 의도한 부분이 있다. 저는 그 누구도 정의나 옳음으로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의 민낯, 발가벗겨진 민낯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척 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 알고 봐서 나쁜 사람도 없지만 알고 봐서 정말 좋은 사람도 없다. 극단적 상황이라서 욕망에 더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쁜 년, 나쁜 놈들이 되자는 생각에 삐꺽거리게 간 건 맞다. 어떻게 보면 배우와의 작업에서 전형적인 캐릭터 상이 있는데 거기에 어깃장을 놓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도 낯설어한 부분이 있었다.
 
결국에는 다 죽게 되는데 살아남는 사람이 여성캐릭터인 제인과 루비다. 여성 두 명만이 살아남는 이유가 있는가?
ㄴ 신채경 : 처음에 대본을 제출했을 땐 엔딩이 달랐다. 애꾸가 살아남았고 대신 애꾸는 욕망을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연극에서는 각자 자신의 욕망이 있고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부딪치면서 폭력을 낳는다. 폭력이 대물림되는 구조를 띠게 되면서 애꾸도 욕망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됐고, 그런 성격을 더 넣으면서 결말을 바꾸게 됐다.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이야기를 전하더라도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가장 약한 여성주체로서 미움받는, 극단적인 상황에 있는 여성 2명만 구조선에 태우기로 했다. 폭력의 대물림을 보여주고 싶었고 거기에 휘둘리는 주체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여성이 타게 된다면 거기에 좀 더 희망이 있는 것 같아서 둘을 살리게 됐다.
 
   
 
전작 '핑키와 그랑죠'에서도 아동 폭력에 대해 말했다. 그런 것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가.
ㄴ 신채경 : 거듭되는 폭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 집단에서 누군가 욕망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민주적으로 풀리기보다는 폭력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 내에서나 어디에서나 2명 이상의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맞부딪치는 지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쉽게 폭력으로 가라앉아버리는 상황에 관심이 많았다. 이건 어떻게 보면 '핑키와 그랑죠'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이야기 같다.
 
소나기의 두려움이 아닌 그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ㄴ 문삼화 : 그냥 제 이야기를 하면 당장 죽는다는 건 너무 무서운데 끊임없이 사는 건 더 무서운 것 같다. '불사조'라는 절대 죽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무 끔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배우들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배우들 각자의 두려움이 역할과도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소나기가 제일 무서운 존재인 건 맞다. 소나기가 당장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라면 좀 더 존재론적인 두려움들이 인물들 안에 있다. 그래서 당장 해결이 안 되는 두려움 때문에 더 못나지고 일그러지고 삐뚤어진다고 생각한다.
 
ㄴ 신채경 :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이다. 어떻게 보면 두려움이 이 사람들의 일상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고 두려움이 일상화가 되면 욕망이 자리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욕망을 크게는 소나기, 작게는 마차 안의 관계 때문에 이룰 수 없게 되면서 각자의 관계가 두려워질 것이다. 상대방과의 관계, 그리고 더 이상 통제가 안 되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인물들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소나기라는 상황을 어떻게 떠올리게 됐는지 궁금하다. 
ㄴ 신채경 : 폭우의 이미지가 제일 피할 수 없는 재앙으로 느껴졌다. 비가 쏟아질 때 밖으로 나가면 아무리 우산을 쓰고 꽁꽁 차려입었어도 결국은 젖고 잠식이 된다. 가랑비가 폭우로 지나가면서 온몸이 젖게 되는데 몸이 젖는 것에서 몸이 녹는 것을 떠올리게 됐다. 피할 수 없는 물 안에 서서히 잠겨드는 사람의 이미지가 저한테는 소나기였던 것 같다. 
 
[글] 문화뉴스 김수미 인턴기자 monkey@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이민혜 기자 pinkcat@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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