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다시 관람하기 위한 용기…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출발점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우와!, 그리고 으아…. '아무도 모른다'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서, 반가움에 환호와 두려움에 탄식을 동시에 내뱉어야 했다. 다시 관람하고 싶었지만, 아키라(야기라 유야)의 눈빛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관람할 때엔, 이 소년의 눈빛은 더 슬프고, 더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아키라 가족의 눈망울을 다시 마주 해야 하는 건, '아무도 모른다'를 감명 깊게 봤던 관객일수록 마음 편한 일이 못 될 것이다.
 
   
 
 
이 영화에 관한 관람평 중 가장 공감했던 건, 쿠엔틴 타란티노의 평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장르적으로 교집합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그리고 헤모글로빈의 미학을 창시한 이 천재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이런 평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건 '아키라'의 표정뿐". 말도 통하지 않을 타국의 감독에게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강렬한 이미지를 새기는 데 성공한 했다. 대체 그는 이 영화에 무슨 짓을 한 걸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출발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잘 몰라도, 이 영화들은 들어봤을 수도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혹은 배두나의 출연으로 유명한 '공기인형'. 물론, 이 영화들을 다 모를 수도 있다. 국내에서 일본 영화가 일본 애니메이션이 비해 인지도가 낮고, 더구나 그의 영화는 적은 관에서 상영됐었다. 언급한 영화들의 관객 수는 42,153(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125,32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12,371(공기인형)인데, 이건 많다고 하기엔 부족해 보이고, 대중적으로 성공했다기엔 좀 아쉬운 수치다.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가 국내 드라마 및 영화에 큰 영향을 준 것,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가 '너의 이름은.'으로 화제가 되는 것과 비교할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조용히 왔다가 자취를 감추는 편이다. 하지만 그의 조용한 방문은 늘 큰 태풍을 몰고 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이번 재개봉작이자 2004년 작품인 '아무도 모른다' 역시 잔잔한 흐름 뒤엔, 엄청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근원은 영화로 넘어와서도 유효하고, 그만의 독특한 느낌으로 이어진다. '아무도 모른다'로 예를 들자면, 이 영화는 사회를 향한 문제적 시선에서 출발하고 있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실화에서 시작한 영화라 말하며, 감독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명확히 한다. 이 영화는 방치된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사회와 어른들의 무관심 및 방관자적 태도를 꼬집는다.
 
영화가 선택한 카메라의 시선도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아키라 가족의 시간 중 몇몇을 선택해 보여주는 구성을 선택했다. 영화는 시간의 순서대로 전개되는데, 각 이야기 간의 관계와 인과성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개연성, 작위성의 요소 대신, '자연스러운 시간의 경과'를 편집해 아이들이 세상에 부딪히고 변화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러면서 그들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카메라는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며 아이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렇게 그들의 세계에 침입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아이들의 눈빛을 담으려는 시도 외엔, 자제하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실화 앞에서 보이는 예의이며, 동시에 어른들의 방관자적 시선을 차용해 내 옆의 비극 앞에 무심했던 또 다른 어른, 즉 관객을 더 아프게 하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그 덕에 영화는 묵묵히, 무던히, 아픔과 절망을 꾹꾹 절제하려 함에도 커다란 감정적 파도를 몰고 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법
앞의 언급한 건조한 연출도 돋보이지만, '아무도 모른다' 및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은 아이들의 맨얼굴을 담을 때 있다. 그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들에게 소중한 것, 그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 그들에게 필요한 것, 그리고 절망적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아이의 순수함까지.
 
연기가 아닌, 날 것의 진짜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은 마법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카메라를 두고서 이런 자연스러움이 영화에서 가능하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는 매번 이걸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촬영장에 가서 그 비밀을 알고 싶을 정도로, 이런 연출은 늘 놀랍다.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게 하고, 그걸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회 문제적 현상을 조명하는 그의 날카로운 눈은, 아이들의 맨얼굴과 천진난만한 미소를 만나 따뜻함까지 획득해버린다. '아무도 모른다'를 처음 보는 관객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여주는 이야기와 이 세상의 모습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관람하는 관객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말처럼, 아키라의 표정과 눈빛에 더 몰두할 것이다. 아키라의 눈빛에 보이는 붕괴 중인 한 가족의 세계, 그리고 절망 속에 해탈해버린 소년의 눈빛. 이 때문에 첫 관람 때보다 더 아릴 것이다. 다시 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무도 모른다'에서 정말 엄청난 걸 해냈다. 그 방법을 여전히 알 턱이 없기에, '마법'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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