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잘 만든 작품이지만, 너무 늦게 나온 것은 아닐까.

지난 1일 개막해 4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되는 연극 '베헤모스'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함께 창조했다는 너무 거대해 쓰러트릴 수 없는 괴물 '베헤모스'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속 깊이 숨쉬는 '괴물'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드라마스페셜 '괴물'을 원작으로 만든 연극 '베헤모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재벌 아버지를 둔 명문대생 '태석'이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되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이변'은 그에게 자수를 권한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태석'은 심신미약으로 무죄를 받으려 하고, 검찰 내에서 청개구리라 불리는 '오검'은 '이변'에 대한 복수심과 함께 정의 구현을 위해 '태석'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쓴다.

'오검' 역에 정원조, 김도현, '이변' 역에 최대훈, 김찬호, '태석' 역에 문성일, 이창엽, 멀티 역으로 권동호와 김히어라가 출연한다.

   
 

연극 '베헤모스'는 우선 극 자체만 놓고 보면 곧 막을 내릴 '벙커 트릴로지'에서도 빼어난 연출력을 선보인 김태형 연출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크게 호텔방을 포함해 네 가지 정도의 공간으로 나뉘어진 무대는 미니멀리즘한 구성을 바탕으로 세련된 미장센을 선보인다. 관객은 배우들이 마주칠 때 마다 어느 한 장면에서도 눈을 떼지 못할 집중력을 갖고 무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다음으론 흡인력 있는 전개와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 역시 강점이다. 극의 메인 플롯인 '태석'이 벌인 살인 사건의 재판을 두고 밝혀지는 진실들과 함께 인물들의 감정이 입체적으로 변하는 과정이 거듭된다. 종국에는 누가 괴물이고, 누가 괴물이 아닌지 알 수 없게끔 모두의 모습이 변해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연극이 됐다.

   
 

다만 아쉬운 것은 첫 번째로 작품 자체가 힘을 가질 수 있는 시기가 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대중예술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가 '재벌(상류층) 때리기'에서 점차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고, 드라마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현실 속에 사는 지금, 극 속의 '괴물'이 현실의 '괴물'에 비하면 너무 작아 보인다는 점이다.

   
 

다음으론 여성을 피해자로 그린 방식이 지극히 현실적 시각에서 머문다는 점이다. 김태형 연출의 전작 '벙커 트릴로지'의 '아가멤논' 등에서 보여준 세련된 여성 캐릭터는 사라지고, 도구적인 역할에 머문다. 현실이 그렇다고 할 순 있겠지만, 그럴거면 그냥 '실화'를 보여주는 편이 훨씬 더 관객의 감정을 극적으로 뒤흔들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놓인 위치는 절망적이다. 아무 이유 없이 번화가에서 칼에 찔려 죽을 수도 있는 세상이 왔지만, '베헤모스'의 여성은 기능적인 역에 그친 법의관, '이변'에 대한 '오검'의 복수심을 만들어 주는 동기, 억울하게 죽은 꽃뱀 정도로 표현된다.

   
 

연극 '베헤모스'는 분명 잘 만든 작품이다. 독특한 형태의 무대와 그 위에 선 배우들의 열연은 100분이란 시간의 가치를 결코 아깝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 이상의 것을 보여주진 못한다. 김태형 연출은 프레스콜 중 극의 마무리에 관한 질문을 받자 '자신이 보는 현실이 이런 암울한 상황'이라며 답변을 마쳤다.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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