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만연했던 폭행,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행'

▲ 고교야구 선수들에게 목동구장은 하나의 꿈과 같다. 그러나 그 꿈을 위해 폭력이라는 희생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학교 교육에서 '사랑의 매'는 하나의 필요 악(惡)으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훈육 차원에서 한 글자라도 더 가르치기 위한 스승의 채찍질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학부모들도 그러한 교육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의 아들/딸을 사람답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체벌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인식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학창 시절에 스승님께서 사람 되라고 주신 사랑의 매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스포츠부는 이보다 더했다. 이른바 '줄빠따(야구 방망이로 선수들을 때리는 행위)'라고 불리는 체벌은 일상이었다. 감독/코치 뿐만이 아니라, 선배들도 '집합'을 시켜 후배들에게 매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 학교의 구타는 군대보다 더 심하여 해당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은 지레 겁을 먹고 운동을 그만두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20~30년 전 대한민국 학생스포츠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했다.

80~90년대 스포츠계의 어두운 단면,
학교 폭력의 '완전한 근절'은 불가능한가?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폭력이 일상과 같았던 군대조차 '선진 병영 문화'를 도입하면서 병사간 폭행 금지, 지휘관 외에 사사로운 집합 명령 금지 등을 시행하였기 때문이었다. 운동부 역시 '선수(인간) 중심적'인 의식이 확산되면서 비폭력 훈육이 지상 과제가 됐다. 이제는 교실을 포함하여 운동장에서도 '매'를 드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됐으며, 오히려 매를 드는 이들이 나타나면, 학교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법의 처분을 받게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 학생 스포츠에서 완전한 비폭력이 정착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필자가 학생야구를 취재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몇 차례 폭행 사실을 접했으며, 폭행 사건에 대한 몇 차례 제보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해 대상자도 꽤 다양했다. 기본적으로 해당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의 폭행 사실이 많아 보이지만, 고학력 선수나 학부모의 가해 사실 역시 의외로 적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폭행을 넘어 피해자에게 인격 모독에 가까운 수치심을 주는 경우도 발견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본 건을 접한 이후 학교측의 대응이었다. 대부분 "좋게 넘어가자. 없던 일로 해 달라."거나 오히려 피해 학생을 전학시키기도 했다. 폭력 사실이 알려질 경우, 학교의 대외 이미지 훼손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학교 폭력 사례가 '숨겨진'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상식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의 경우 전임 감독의 선수 폭행이 문제가 되어 충청북도 교육청 장학사까지 학교에 파견되어 진상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충북 교육청은 최종적으로 해당 감독의 지도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반발한 일부 학부모들을 앞세운 청주고가 다시 전임 감독을 인스트럭터로 임명하여 복귀시킨 바 있다. 학교 스스로 징계가 진행중인 인사를 다시 학교로 불러들이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 지친 일부 선수들은 지역 내 다른 학교 전학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올시즌 청주고에서 에이스 역할을 해야 할 선수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시 주루 코치의 선수 폭행 사건이 터졌다는 데에 있다. 이미 한 차례 폭행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상황에서 또 다시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을 만든 셈이다. 해당 코치는 본 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학교 폭력이 100%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의식 구조의 수직화'와 변화에 대응하는 수평적인 사고 방식의 충돌에서 빚어진 결과라 보는 것이 맞다. 현재 지도자 자리에 오른 이들은 대부분 이른바 '줄빠따 세대'다. 감독, 코치, 심지어는 선배들에게 맞으면서 야구를 했다. 참담한 과거의 유산이지만, 이러한 경험을 지닌 일부 사령탑/코치들이 수직적인 의식 구조를 버리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현역 시절 경험했던 폭행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선수들에게 행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사를 감독 후보군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그렇지 않으면, 감독 스스로 수직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본인은 그렇게 야구를 했지만, 후배들은 절대 폭력 없는 환경에서 즐겁게 야구하도록 해 주고 싶다.'라는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이상이 실현된다 해도 학교 운동부 폭력이 100% 사라지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도 여전히 필자 앞으로 학교 폭력의 제보가 들어오고 있고, 그 중에는 '폭행 대상자는 떳떳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피해자가 오히려 학교를 떠나는', 다소 비상식적인 모습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다 못한 해당 학교 코치는 그 피해학생을 제대로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죄책감 가득한 고백을 해 오기도 했다.

사지(四知)라는 한자 성어는 '두 사람만의 사이일지라도 넷은 알고 있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당신이 안다.'는 것이다. 즉, 폭력을 숨긴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와 같다.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형태로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폭행을 숨기는 것이 학교 명예의 훼손을 막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그래, 우리 학교에서 폭행 사건 일어났다. 그러니 책임자를 밝혀내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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